레이와는 죽지 않는다. 좀비니까.
2020년대에 이르러 일본 애니메이션은 대격변을 맞았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애니메이션의 본질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작화에 대한 심도 있는 재발견적 탐구가 이루어지기도 하였고, 21세기에 새로이 탈바꿈된 오타쿠 문화가 작가주의와 결합하는 양상을 보이기도 하였으며, 그 일환으로 등장한 여러 작품들은 내 마음을 크게 움직이며 애니메이션이라는 예술을 다시금 생각해 보도록 하였다. 하지만 아무도 이에 이름을 붙이려고 하지는 않았다고 생각한다. 2020년대는 분명 무언가 크게 움직이고 있는 시대이지만, 정작 우리는 아직 이를 정의하려고조차 하지 않았다. 2020년대도 벌써 절반을 지나가고 있는 지금, 우리는 신시대를 어떤 이름으로 정의하여야 할까? 2025년, 나는 늘 그러하였듯이 제27회 부천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의 현장을 찾았다. 그리고 목격하였다. 2020년대에 이르러 그 정의에 대하여 고민을 거듭하던 나에게 분명한 해답을 남겨주는 걸작을. 영화 <좀비 랜드 사가 유메긴가 파라다이스>는 구시대적이다. 하지만 죽지 않으며, 서로를 긍정하고 희망하여 끝없이 살아남아간다. 그 순간 우리는 신시대와 그 정의 위에 이미 도착하여 있다.
누군가 나에게 <좀비 랜드 사가> 시리즈를 한 단어로 정의하라고 한다면 ‘시대’라고 이야기하겠다. <좀비 랜드 사가>는 각자의 시대를 살아내고 죽은 소녀들이 어지러운 신시대에 ‘좀비로’ 되살아나 자신들이 한때 존재했던, 하지만 이제는 지나가버리고 만 구시대를 긍정하고 끌어 안아 새로운 시대 위에서 여전히 살아남아가기 위한 희망을 전하는 시리즈라고 생각한다. 1기 <좀비 랜드 사가>는 헤이세이의 끝에서 새로 찾아올 희망찬 레이와를 기대한다. 거품의 붕괴와 함께 잃어버리고 말 수십 년을 예감하면서 시작된 헤이세이였을지라도, 다시 일어서 보려던 순간 세계 경제의 대침체에 빨려 들어가 버리고 만 헤이세이였을지라도, 결국 거대한 지진과 폭발, 이별의 상처만을 남긴 채로 끝을 맺은 헤이세이였을지라도 살아남아 신시대 레이와를 희망한다. 2기 <좀비 랜드 사가 리벤지>는 기대를 산산조각 낸 역병마저 이겨낼 희망찬 레이와를 기대한다. 기대를 철저히 배신하며 시작된 레이와일지라도 살아남아가며 아직 끝나지 않은 앞으로의 신시대, 레이와를 희망한다. 그 매개체로서 존재하는 좀비와 아이돌의 SAGA, 이것이 바로 <좀비 랜드 사가> 시리즈의 본질이다.
아이돌이란 어느새인가 일본 애니메이션의 큰 흐름에서 탈선해버리고 말았을지도 모르는, 구시대적인 존재인지도 모른다. <러브 라이브!>와 <아이돌 마스터>가 양분하던 아이돌의 2010년대는 어느새 끝이 났고, <BanG Dream!>이나 <걸즈 밴드 크라이> 같은 걸즈 밴드가 약진하는 2020년대가 새롭게 시작되었다. 표면적으로 보면 음악 애니메이션의 주도권은 아이돌에서 걸즈 밴드로 넘어가버리고 말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결코 죽지 않는다. 결국 걸즈 밴드는 아이돌로부터 거의 모든 요소들을 계승한 장르라는 사실 때문이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 좀비는 죽지 않으니까. 아이돌은 구시대적인 존재가 되어버렸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결코 죽지는 않았으며, 여전히 신시대 위에서 살아남아가며 신시대적인 존재들에게 영향을 남긴다. 영화 <좀비 랜드 사가 유메긴가 파라다이스>는 그 사실을 선언한다. 아무리 구시대적인 존재일지언정 신시대의 물결 위에서 결코 죽는 모습을 보이지는 않을 것이라고, 어떤 고난과 역경 앞에서도 희망을 노래하고 전달하는 아이돌은 죽지 않는다고, 애니메이션을 구성하는 모든 요소와 함께 은유적으로 시작하여 끝내 직접 선언한다.
영화 <좀비 랜드 사가 유메긴가 파라다이스>는 여러 위기로부터 사가를 구해 온 좀비 아이돌 프랑슈슈가 이번에는 외계인의 침략으로부터 맞서 싸워 사가를 구하게 된다는 말도 안 되는 오프닝으로 시작된다. 하지만 그녀들이 걸어온 7년 동안의 발자취를 모두 따라왔다면 이 말도 안 되는 이야기 속에 담긴, 분명하게 작품을 지지하고 있는 아이돌이라는 존재를 분명하게 발견하며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아이돌, 우상의 힘으로 프랑슈슈는 사가를 규합하고 지켜왔다. 그녀들이 이번에는 히어로가 되어 외계인에 맞서 싸운다고 한들 전혀 이상하지 않다. 지킨다는 것은 애초에 프랑슈슈의 사명이었기 때문이다. 멸망의 저주를 받은 사가를 구하기 위한 일환으로 모든 사람들이 사가의 존재를 영원히 기억하도록 만들겠다는 사명으로 활동하는 프랑슈슈가 아이돌이라면, 사가를 침략한 외계인으로부터, 이들을 몰아내기 위하여 사가에 미사일을 발사하겠다는 세계로부터 사가를 구한다는 것 역시 아이돌 활동임이 틀림없다. 만약 그녀들이 정말로 그러할 수 있다면 사가를 넘어, 일본을 넘어 전 세계가 사가라는 이름을 영원히 기억하며 사명을 이루어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지점에서 애니메이션은 그려지기 시작한다. 프랑슈슈가 전대의 모습으로 외계인의 침략으로부터 맞서 싸우기 시작하는 순간 그녀들은 헤이세이와 쇼와에, 저 멀리 현대 일본의 원류인 메이지에까지, 구시대에 장대하게 고별하기 시작하지만, 동시에 죽지 않기에 전부 끌어안으면서 함께 신시대의 사가를 구해낸다. 그 절정에 해당하는 배틀 장면은 그 아름다운 은유라고 이야기할 수 있다. 메이지의 유우기리가 쇼와의 거대한 문화적 아이콘 중 하나였던 <스타워즈>를 오마주 하는 장면이나(<스타워즈>도 사무라이에 영향을 받았으니 재미있는 점이다), 우상적이고 아티스트적이었던 쇼와의 아이돌 콘노 준코와 오타쿠 문화의 영향으로 실시간으로 소통하는 헤이세이의 아이돌 미즈노 아이가 정반대의 두 시대를 모두 포괄했던,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존재하는 특촬물 전대의 모습으로 하나가 되어 외계인에 맞서 싸우는 장면 등이 그러하며, 결정적으로 모든 것은 레이와의 화면 위에 그려진다. 프랑슈슈는 구시대에 존재하는 타에를 데리고 돌아가기 위하여 신시대를 인지한다. 그 자체가 구시대에 대한 작별이지만, 결코 죽는 것은 아니기에 시대들은 함께 하나가 된다.
과거적이면서도 여전히 현재에 이어져 오는 이미지, 전대와 아이돌은 그다지 다르지 않다. 누군가의 영웅이 되어, 누군가의 우상이 되어 누군가를 시대의 흐름에 관계없이 여전히, 함께 구해내는 존재이니까. 좀비는 이에 애니메이션적 요소를 반영한다. 애니메이션이기에 공포의 좀비는 모에 소녀로 대변신해 아이돌로 되살아날 수 있다. 좀비 아이돌이 되어 펼치는 슬랩스틱 코미디나 배틀들은 각각 실사였다면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수위와 감성의 존재들이었을 테다. 그리하여 좀비 아이돌 프랑슈슈는 외계인의 침략으로부터 사가를 구해낸다. 그 순간 줄곧 은유적이었던 아이돌의 존재는 드디어 가시화되고, 사가 아레나에 시청각적으로 그려져 강림한다(이 역시 애니메이션적인 감성의 존재이다). 이제야 레이와는 희망의 시대인 것인가? 그것은 알 수 없다. 2025 오사카-칸사이 만국 박람회가 폐회하자마자 2025 사가 만국 박람회로 공개된 영화 <좀비 랜드 사가 유메긴가 파라다이스>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흐르고 있는 시대를 만국 박람회라는, 희망적이었던 시대의 아이콘과 함께 희망하면서 그려진다. 애니메이션이 아니라면 절대 그럴 수 없다고 외치듯이.
처음으로 되돌아가보도록 하자. 2020년대에 이르러 일본 애니메이션은 대격변을 맞았다. 아직 완전하게 정의할 수 없지만 그 사실만큼은 분명하다. 하지만 아무도 이에 이름을 붙이지 않았다. 그래서 프랑슈슈는 붙인다. 우리는 이미 그 이름을 알고 있다. 레이와 시대.
레이와는 죽지 않는다. 좀비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