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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가레보시 Jul 17. 2023

극장판 소녀 가극 레뷰 스타라이트

끊임없이 다시 태어나라, 내일의 나를 위해서


거두절미하고, 후루카와 토모히로 감독의 영화 <극장판 소녀☆가극 레뷰 스타라이트>는 두 소설 작품을 통해 그 본질을 파악할 수 있다. 요시야 노부코의 <물망초>와, 미시마 유키오의 <금각사>가 바로 그 소설들이다. <물망초>는 작품의 핵심 장르이자 모든 것인 '백합' 장르를 구성하는 틀과 같으며, <금각사>는 그 틀 위에서 노래하고 춤추는 주인공들의 모습에 당위성을 제공한다. 하지만 <물망초>와 <금각사>, 두 소설 작품들만으로 영화 <극장판 소녀☆가극 레뷰 스타라이트>를 온전하게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이 영화는 두 소설들을 원작으로 한 작품이 아닌, 그들로부터 영향을 받은 작품이기 때문이다. 즉, <극장판 소녀☆가극 레뷰 스타라이트>만의 이야기는 존재하는 법이며, <물망초>와 <금각사>는 그 이야기를 아름답게 꾸며주는 도우미이다.


<물망초>: 레뷰

사실 이 영화는 미시마 유키오의 <금각사>의 영향을 더 직접적으로 받은 작품이다. 하지만, 요시야 노부코의 <물망초>를 직접 읽어본 입장에서, <물망초>의 영향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고는 이야기할 수 없을 것 같다. 영화 <극장판 소녀☆가극 레뷰 스타라이트>의 장르는 백합이다. 백합이란, 여성 캐릭터들 간의 동성애 및 유사 동성애를 다루는 장르를 말한다. 이러한 백합 장르를 일본에 정립시킨 작가 요시야 노부코의 대표작이 바로 <물망초>이다. <물망초>의 프롤로그를 읽어보면, 여학교의 학생들에게 레뷰가 유행하고 있다는 대목이 등장한다. 나는 그 대목을 읽으면서 곧바로 이 영화를 떠올렸다. '레뷰와 백합, 두 요소들 간에는 문학사적으로 관련이 있었던 건가'하며. 또한, 레뷰의 등장에 그치지 않고, <물망초>의 주제는 <극장판 소녀☆가극 레뷰 스타라이트>의 주제와 연관된다.


물망초의 꽃말은 '나를 잊지 말아요'이다. 요시야 노부코는 소설 <물망초>에서 이 꽃말을 소녀들이 방황을 끝내고, 사랑을 이루는 방법으로 활용했다. 소녀들은 시련을 겪으며 서로를 멀리한다. 하지만, 마음속에 내재되어 있는, 서로를 사랑하는 마음만은 잊지 않았기에, 끝내 서로에게 되돌아가 사랑을 고백한다. <극장판 소녀☆가극 레뷰 스타라이트>는 <물망초>의 주제를 어느 정도 계승한다. 9명의 소녀들은 다음 무대에 서기 위해, 성장하여 다음으로 나아가기 위해 각자가 사랑하는 사람들에 맞서 싸워 그 주박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그럼에도 사랑은 깨어지지 않는다. 사랑으로부터 독립하여 홀로 나아갔음에도, 소녀들은 사랑하는 사람을 잊지 않았으니까. 소녀들은 서로에게 '나를 잊지 말아요'라고 말하지 않는다. 하지만 독립을 고백하며 서로를 향해 웃음 짓는 순간, 말한 것과 다름없다.

 

아시는가? 물망초의 꽃말은 하나가 아니다. 물망초에는 '진실한 사랑'이라는 의미도 담겨 있다. 소설 <물망초>에서 소녀들은 서로를 잊지 않았기에 되돌아가 진실한 사랑을 이룬다. <극장판 소녀가극 레뷰 스타라이트> 역시 그러하다. 소녀들은 각자가 사랑하는 사람들에 맞서 싸워 이기고, 지며 독립해 새로이 나아간다. 하지만, 소녀들은 서로를 잊지 않았다. 그렇기에 진실한 사랑은 이루어진다. 사실 대부분의 백합 장르가 비슷한 구조를 지니고 있을 것이다. 내가 무척 좋아하는 백합 영화인 야마다 나오코 감독의 <리즈와 파랑새> 속 미조레와 노조미 역시 방황함에도 서로를 잊지 않고 되돌아가 남은 시간을 보내니까. 다만, <극장판 소녀가극 레뷰 스타라이트>는 <물망초>에서 스쳐 지나간 레뷰라는 작은 키워드를 발견하고 극대화했기에, 타 백합 작품들보다 더 지대한 영향을 받았다.


<금각사>: 스타라이트

이제 더욱 핵심적인 것에 대해 이야기해야 할 차례다. 앞에서 나는 <물망초>의 영향을 이야기하며 '소녀들은 각자가 사랑하는 사람들에 맞서 싸워 이기고, 진다'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소녀들은 왜 싸우는가? 미시마 유키오의 소설 <금각사>는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제공한다. <금각사>의 주인공 '미조구치'는 자신의 추한 모습에 대비되어 아름다움을 발산하는 금각에 매료되면서도, 일그러진 증오를 품고 있는 인물이다. 그런 미조구치에게 아름다움의 기준은 언제나 금각이다. 그는 세상의 수많은 아름다움을 금각에 빗대어 왔으며, 결국에는 금각을 애정하며 자신과 금각을 일체화한다. 즉, 미조구치에게 삶이란 곧 금각이었으며, 금각이란 곧 삶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미조구치는 끝내 금각을 불태우고 도망치면서, '살아야지' 하고 생각한다. 우리는 살아야 한다는 생각의 의미를 파헤쳐야 한다.


미조구치가 금각에 매료되어 있던 나날은, 살아도 사는 것이 아니었다. 금각이라는 절대적인 미의 기준에 의하여 미조구치가 발견한 세상의 수많은 아름다움은 그 진정한 본질이 드러나지도 못한 채 퇴색되고 말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미조구치의 금각 방화는 그의 삶에 있어 의미를 되찾아주는 행위와도 같다고 할 수 있다. 금각 방화 이후의 미조구치에게 있어, 추한 외모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다만, 아름다움의 본질들을 이제야 온전히 느낄 수 있으리라. 그렇기에 미조구치는 생각한 것이다. '살아야지'라고. 영화 <극장판 소녀☆가극 레뷰 스타라이트>는 이러한 <금각사>의 내용과 주제에 상당한 영향을 받았다. <물망초>가 백합이라는 장르로서 영향을 주었다면, <금각사>는 영화 전체에 영향을 주었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 정도다. 지금부터 그 영향을 파헤쳐보고자 한다.


이제는 이야기할 수 있다. 소녀들이 각자가 사랑하는 사람들에 맞서 싸워 이기고, 진 이유는, 그녀들에게 있어 절대적인 미란 바로 사랑하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이는 앞서 이야기한 백합과도 관련이 있다. 영화가 <금각사>의 영향을 받은 만큼, 미조구치에게 있어 절대적인 것이 금각이었던 것처럼 소녀들에게 있어 절대적인 것은 각자가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설정된 것이다. 소녀들에게는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 하지만 그 주박에 사로잡혀 있어서는 안 된다. 그녀들은 무대소녀, 자신이 선택하여 영원히 무대 위에서 연기하고, 노래하고, 춤추며 자신만의 미래를 향해 나아가야 하는 운명이기 때문이다. 만약, 그 운명을 거스른 자가 있다면, 그 자는 죽게 된다. 소녀들 스스로가, 메타적으로 등장한 관객들이 운명을 거스른 자에게서 목숨을 거둘 것이라는 사실은 영화 속에 내재되어 있다.


<극장판 소녀가극 레뷰 스타라이트>에는 9명의 무대소녀들이 등장한다. 텐도 마야, 사이죠 클로딘, 츠유자키 마히루, 아이죠 카렌, 카구라 히카리, 호시미 쥰나, 다이바 나나, 이스루기 후타바, 하나야기 카오루코. 소녀들에게는 각자의 꿈이 있다. 하지만, 사랑은 소녀들의 꿈과 미래를 가로막는다. 무대소녀들은 끊임없이 새로운 무대 위에 서는 것으로 꿈과 미래를 향해 나아가야 하지만, 사랑하는 상대를 두고 나 홀로 새로이 나아갈 수 없다는 미련은 소녀들의 마음을 흔들어, 이윽고 죽여버리고 만다. 연출자 다이바 나나는 그런 죽음을 열차 위에서 연출하여, 소녀들로 하여금, 자신으로 하여금 절대적인 미, 사랑을 불태워야만 죽지 않고 무대소녀로서 꿈과 미래를 향해 나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열차는 반드시 다음 역으로. 그렇다면 무대는? 당신들은? 그렇게, 와일드 스크린 바로크가 시작된다.


와일드 스크린 바로크가 펼쳐지는 동안, 소녀들은 각자의 사랑 앞에 당당히 마주 서서 진심을 토해내기 시작한다. 엇갈린 미래를 두고 싸우는 후타바와 카오루코, 불가능을 알고 있음에도 발버둥 치는 쥰나와 그런 발버둥에서 아름다움을 찾는 나나, 무엇이든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자신에게 채워 넣으며, 자신을 뛰어넘을 자를 상대하는 마야와 그녀의 욕망을 꿰뚫어내 보이고자 하는 클로딘. 그녀들의 관계는 사랑으로 얽혀있다. 사랑하기에 엇갈린 미래를 두고, 불가능과 발버둥의 미를 두고, 욕망과 까발림을 두고 싸우는 것이다. 그런 사랑싸움은 끝이 나야 한다. 그래야만 무대소녀들은 다음 무대로 향할 수 있다. 여기서 우리는 알 수 있다. 지금까지 열거된 소녀들은 절대적인 사랑에 의해 자신들의 꿈과 미래를 유예시키고 있었을 뿐, 나아갈 곳을 정해두지 않은 것은 아니라는 분명한 사실을.


그렇다면 츠유자키 마히루와 아이죠 카렌, 카구라 히카리는 어떨까? 앞서 나는 츠유자키 마히루에게는 꿈이 있다고 이야기하였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그녀의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 그 이유는, 마히루와 카렌, 히카리의 사랑은 삼각관계이기 때문이다. 카렌과 히카리가 레뷰를 시작한 이유는 서로에게 있다. 카렌은 히카리의 초대로 감상한 연극을 보고 감명받아, 연극을 그만두려 했던 히카리는 자신의 초대로 감명받은 카렌에 의해 연극을 재시작했다. 이윽고 그녀들은 약속한다. 운명의 무대에서 함께 만나자고. 그 운명이 바로 두 사람의 금각, 아름다움, 사랑인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질문할 수 있다. 그렇다면, 운명의 무대가 끝나버렸을 때, 카렌과 히카리는 어떻게 될 것인가? 두 사람을 살려온 운명의 무대. 그 꿈같은 무대가 종막하는 순간, 무대소녀의 목숨은 결국 거둬지는 것이 아닐까?

 

마히루는 그런 의문에 대답한다. '그렇다'라고. 동시에 마히루는 히카리를 와일드 스크린 바로크에 불러내면서, 카렌으로부터 도망친 그녀의 잘못을 질책하고, 카렌과의 운명의 무대가 끝나더라도 무대소녀로서 다음 무대에 서야 한다는 사실을 가르쳐준다. 그 질책과 가르침이 설령 지금까지 사랑해 왔던, 카렌이라는 미를 불태워야만 작동할 수 있는 것이라고 해도, 마히루는 자신의 꿈과 미래를 향해 나아가기 위해서라면 그래야 한다는 것을 알기에, 자신을 위해, 그리고 친우인 히카리와 카렌을 위해 기꺼이 반동인물을 연기한다. 그리하여 카구라 히카리는 운명의 무대로부터 벗어나, 새로운 무대를 향해 나아가기로 결심하며 토마토를 베어문다. 동시에 자신이 사랑하는 상대인 카렌에게도 그 사실을 가르쳐주기 위하여, 카렌과 함께할 수 있는 마지막 무대가 될지도 모르는 레뷰에 뛰어든다.


카렌은 무엇이든 완전히 좋아하지 못하는 아이였다. 재미있게 즐기던 공주님 게임기도 모두가 즐겼기에 따라 했던 것이었다. 그런 카렌은 히카리의 초대에서 사랑하게 될지도 모르는 것을 발견했다. 히카리 역시 그러했다. 그녀는 연극을 그만두며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지만, 카렌의 반짝임을 보고 되살아나며 다시 한번 사랑하게 될지도 모르는 것을 발견한다. 하지만, 그 사랑은 무대일까, 서로일까? 애초에 사랑하기는 했을까? 히카리는 카렌과 운명의 무대에서 만나자고 말했지만, 자신이 운명이라는 미에 도달할 수 있을지 모르기에 두려워하며 도망쳤다. 그러나, 마히루와의 레뷰에서 무서웠다는 진심을 고백하며, 두려움에도 사랑하는 사람에게 도달하기 위해, 새로운 무대로 나아가기 위해 줄곧 회피해 왔던 운명의 무대에 오르려 한다. 그렇다면, 우리의 주인공 아이죠 카렌의 진심은 어떨까?


'보지 않기. 듣지 않기. 알아보지 않기.' 운명의 무대에서 만날 그날까지 카렌은 히카리와의 세 가지 약속을 지키는 듯 보였다. 하지만, 그 약속을 완전히 지킬 수는 없는 법이다. 언제나 자신의 앞에서 달려 나가고 있는 히카리에게, 사랑하는 상대에게 조바심을 느끼지 않는 것이 이상할 것이다. 카렌은 그런 조바심 속에서도 운명의 무대라는 약속 하나로 살아왔다. 그런 카렌의 앞에 운명의 레뷰가 다가오며, 이윽고 그녀는 깨닫는다. 자신의 삶을 지속시켜 온 것은 운명의 무대이며, 그 무대가 끝나는 순간 무대소녀였던 자신은 텅 비어 죽음을 맞이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심지어 카렌은 그 사실을 깨닫자마자 운명이라는 아름다움에 의해 가려져 있던 무대의 공포를 느끼며 죽고 만다. 그런 카렌의 내막을 알고 있는 히카리는 죽음을 슬퍼하면서도 다음 무대로 나아가기 위하여 그녀를 재생산시킨다.


그리하여 카렌은 히카리와 같은 깨달음을 얻는다. '열차는 반드시 다음 역으로. 그렇다면 무대는? 당신들은?' 이제 카렌은 질문에 대답할 준비가 되었다. 그녀는 운명의 무대에 서서 자신의 모든 것을 비우고 새로이 채워 넣어야 한다. 그렇다면 자신의 진심을 외쳐야 한다. '나도 히카리에게 지고 싶지 않아.' 아름다운 운명 속에 숨겨져 있던 진심, 그것은 사랑하는 히카리에게 뒤처질지도 모른다는 조바심과 무대의 공포였다. 진심을 담은 마지막 대사 끝에 카렌은 히카리에게 패배한다. 동시에 두 사람의 운명, 아름다움을 구성하고 있던 도쿄타워는 반으로 쪼개진다. 그리하여 <금각사>의 영향은 완전히 드러난다. 카렌과 히카리는 운명의 무대라는 아름다움을 도쿄타워라는 구조물로 형상화했다. 즉, 운명의 무대란 두 사람의 미의식이며, 도쿄타워는 그 미의식을 형상화한 금각과도 같은 것이다.


그런 도쿄타워가 반으로 쪼개졌을 때, 카렌과 히카리는 비로소 살아갈 수 있다. 운명의 무대, 혹은 사랑이라는 것은 무척이나 아름다운 것이었지만, 동시에 꿈과 미래라는 또 다른 아름다움을 방해하는 것이기도 했다. 따라서 도쿄타워는 불타버린 금각사처럼 반으로 쪼개져야만 했다. 그 쪼개짐은 아이죠 카렌과 카구라 히카리, 두 소녀들의 것만이 아닐 것이다. 텐도 마야, 사이죠 클로딘, 츠유자키 마히루, 호시미 쥰나, 다이바 나나, 이스루기 후타바, 하나야기 카오루코. 나마지 소녀들에게도 각자의 도쿄타워가, 금각이 있다. 사랑은 아름다운 것이다. 영원히 손에 쥐고 싶을 것임이 틀림없다. 하지만, 아름답게 반짝이는 빛(히카리)만을 영원히 바라본다면, 눈은 영원히 멀어버리고 만다. 그렇기에, 때로는 사랑으로부터 눈을 돌려야만 한다. 금각을 불태우고, 도쿄타워를 쪼개야 한다.


레뷰 스타라이트

그렇다면 9명의 무대소녀들이 이루었던 아름다움의 총체인 사랑은 영영 사라지고 마는 것일까? 답은 '아니다'이다. 사실 이 답은 이미 정해져 있던 것이기도 하다. <물망초>를 기억하시라. 물망초의 꽃말은 '나를 잊지 말아요'와 '진실한 사랑'. 즉, 불태워진 금각을 상징하는 스타라이트가 종막 했음에도 소녀들은 각자가 사랑하는 사람을 기억하고 있다. 따라서, 소녀들은 각자의 꿈과 미래를 향해 나아갔음에도 여전히 사랑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물망초>와 <금각사>의 영향은 서로 합쳐진 끝에 새로워진다. <극장판 소녀가극 레뷰 스타라이트>. 이 영화가 새로운 이유는 영향을 받았음과 동시에, 그 영향을 조화시켜 내었기 때문이다. 끝내, 헤어질 수밖에 없지만, 재회할 수밖에 없는 이야기는,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이전으로부터 작별하여 새로 태어나야 한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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