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통적이기에 특별한, 조화의 명작
원더포션의 비디오 게임 <산나비>를 플레이하는 동안, 바닐라웨어의 비디오 게임 <13기병방위권>을 끝없이 떠올렸다. 나는 <산나비>를 <13기병방위권>의 하위호환이자, 동시에 보완판 격에 해당하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산나비>와 <13기병방위권>, 두 비디오 게임은 장르부터 다르기 때문에 단 몇 분만 플레이하더라도 근본적으로 다른 모습을 보이는 작품들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조금 더 깊은, 비디오 게임이라는 분야의 근원으로 파고들었을 때, 우리는 비로소 두 작품은 상당한 관련성을 보이고 있다는 사실 역시 알 수 있다. <산나비>와 <13기병방위권>은 비디오 게임이라는 분야의 본질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플레이와, 이를 따르며 더욱 돋보이게 만들어주는 각본, 즉 스토리라는 두 요소에 있어서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이번 글에서는 바로 그 지점에서 시작하여 <산나비>와 <13기병방위권>의 상호작용을 짚어내는 것으로, 끝내 어째서 <산나비>가 뛰어난 명작 비디오 게임 작품인지에 대한 결론을 내려보고자 한다.
우선, <산나비>와 <13기병방위권>의 각본에는 공통점이 있다. 두 작품의 각본은 뻔한 감성과 이야기를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 유사성을 보인다. <산나비>의 각본은 한국식 감동 가족 서사를, <13기병방위권>의 각본은 일본식 학원 서사 및 SF 서사를 품고 있다. 우리는 그러한 뻔한 감성과 이야기에 주목하여야 한다. <산나비>와 <13기병방위권>은 분명 뻔한 감성으로 뻔한 이야기를 하는 작품들이다. 하지만, 이를 포장하고 꾸며내는 것에 있어서 이들은 훌륭한 작품으로 남게 된다. 여기서 나는 <13기병방위권>의 각본을 조금 더 높게 평가하고 싶다. <산나비>의 각본은 좋은 의미에서 정통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뻔한 감성을 주축으로 하여 전개되는 모험과, 그 사이사이에서 등장하는 비밀의 복선들, 그리고 끝내 드러나는 진실과 감동적인 엔딩. 이처럼 <산나비>의 각본은 뻔한 감성의 이야기를 치밀하게 구성해 낸다는 각본 구성의 정공법을 활용하여 플레이어를 사로잡는다. 그러나, <13기병방위권>의 각본 구성법은 처음부터 끝까지 '새롭게' 다가온다.
그 새로움이란 이야기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13기병방위권>의 이야기는 <산나비>의 이야기처럼 뻔한 감성을 지니고 있지만, 이를 구성하는 방법이 이전의 작품들에서는 보지 못한, 얽히고설킨 시간대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이 13명의 인물들로 이루어진 군상극을 통하여 하나의 공통된 메인 스토리로 짜 맞추어지는 것이라는 점에서 새롭고, 놀랍다. 따라서, 나는 <13기병방위권>의 각본이 <산나비>보다 더 훌륭하며, 결국 <산나비>는 각본적인 면에서 <13기병방위권>의 하위호환으로 남게 되었다고 생각하는 바이다. 완벽한 새로움과 완벽한 익숙함에는 분명 차이가 존재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산나비>의 각본을 비판하는 단계까지 향하지는 않으리라고도, 나는 생각한다. 익숙함에도 불구하고, <산나비>는 소위 신파라고 부르는 억지 눈물 서사가 아닌, 세계관 속에 녹아드는 매력적인 캐릭터들과 그들이 펼쳐나가는 모험 속 비밀들로 끝내 플레이어를 눈물 흘리게 만드는, 탄탄한 감동을 선사하는 훌륭한 각본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작품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지금부터는 그럼에도 어째서 <산나비>는 <13기병방위권>의 보완판으로서 남을 수 있게 되었는지에 대하여 이야기할 차례이다. 이를 위해서는 <13기병방위권>의 게임적 장점과 그럼에도 존재하는 허점에 대하여 이야기해야 한다. 게임의 본질은 플레이에 있다. 따라서, <13기병방위권>의 '게임적' 장점도, 허점도 결국에는 플레이에 있다. 앞서 이야기한 <13기병방위권>의 각본적 새로움은 플레이에도 영향을 미친다. 사건이 일어나는 시간대와 그 주인공을 플레이어가 직접 선택하고, 그 안의 이야기를 어드벤처 장르로서 직접 체험한다는 방식으로 <13기병방위권>은 스토리 중심 게임의 플레이적 방법론을 새롭게 개척하였다. 그러나, 이를 뒷받침하는 전략 디펜스 장르에 있어 <13기병방위권>은 이전의 것들을 답습하는 평범함을 보여주며, 결국 전자와 후자, 두 플레이의 조화에 실패하는 허점을 남겼고, 이는 곧 스토리가 플레이에 선행해 버린다는, 비디오 게임으로서의 정체성을 일부 상실하고 마는 더욱 커다란 허점 역시 남겨버리고 말았다.
<산나비>는 바로 이 허점을 보완하는 작품으로서 훌륭하게 남았다. <산나비>의 플레이는 <13기병방위권>과는 다르게 언제나 스토리에 선행하고 있으며, 스토리는 그러한 플레이의 존재를 더욱 돋보이도록 만드는 일종의 촉진제로서 기능하고 있다. 사슬 액션이라는 플레이를 보다 재미있게 만들기 위한 맵이나 적의 기믹들은 스토리와 설정으로부터 파생되어 탄생하고, 플레이어를 더욱 즐겁게 만든다. '불새'와의 전투를 대표적인 예시로 들 수 있는데, 주인공이 탑승해 있던 기차를 지형지물로 활용하기 위해 마리에게 지시를 내리며 기차의 존재가 새로운 기믹으로 변화하는 플레이가 바로 그것이다. 이외에도 다양한 기믹들이 각본의 영향 속에서 등장하고, 재미를 선사한다. 이처럼, <산나비>는 비디오 게임의 정통적인 구성을 훌륭하게 따르는 작품이다. 재미있고 흥미로운 플레이와, 그러한 플레이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함과 동시에 다채롭게 꾸며주기도 하는 스토리의 조화. 그러한 구성 덕분에 <산나비>는 <13기병방위권>의 보완판으로서 명작이 될 수 있었다.
<13기병방위권>은 스토리 열람의 플레이화라는 파격적인 시도를 익숙한 전략 디펜스와 조화시키는 것으로 정통성을 확보하고자 했으나, 답습의 평범함으로 인하여 분명 놀라우리만치만큼 새롭고 훌륭하지만 끝내 조금은 아쉬운 작품으로 남고 말았다. <산나비>는 이를 보완하는 작품이다. <산나비>는 분명 많은 작품들로부터 영향을 받은 지점이 보이고, 뻔한 감성의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후자를 아름답게 꾸며낸 다음 전자에 영향을 미치도록 하는 방식으로 두 요소를 조화시켜 내는 데에 성공하였다. 그리하여 <산나비>는 원초적인 재미를 선사하는 플레이로서도, 눈물 섞인 감동을 선사하는 각본으로서도, 이들이 조화를 이루어 끝내 탄생한 '비디오 게임'으로서도 인상적인 명작으로 남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정통적인 작품이라는 것은 때때로 시시하게 다가올지도 모른다. 익숙한 맛일수록 그 진가를 알아보는 것은 어려운 법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알고 있지 않은가? 익숙한 맛에 포인트를 주면 특색은 드러나고 끝내 인상적인 맛을 남기는 법이다.
<산나비>는 바로 그런 작품이었다. <산나비>는 사슬 액션 플레이로서 끝없이 도전하도록 만든다. 다음에는 더 완벽한 모습으로 스테이지를 통과하고 말겠다는 도전 의식은 비디오 게임을 향한 몰입을 위하여 플레이어로 하여금 반드시 유발해야 할 감정이라는 점에서, <산나비>의 플레이는 인상 깊게 다가올 수밖에 없다. 또한, 각본은 플레이어가 모험하는 세계의 비밀을 조금씩, 감동적으로 풀어나감과 동시에, 때로는 플레이에 개입하기도 하며 몰입을 위한 플레이어의 도전 의식을 더욱 자극해 낸다. 이것은 분명히 익숙한 맛이다. 하지만, 끝내 드러나는 플레이와 시나리오의 감동적인 조화라는 포인트로부터 익숙함 속의 특색은 드러나고, 끝내 <산나비>는 특별한 작품이 된다. 이야기가 길었다. <산나비>를 여러분들께 추천드린다. 언젠가 2020년대가 지나갔을 때, 나는 <산나비>를 <13기병방위권>과 함께 2020년대의 대표작으로 기억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겠다. 그만큼, 원더포션의 비디오 게임 <산나비>는 나의 인상 속에 깊이 남은 훌륭한 작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