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를 맺고 그 과정에서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는 우리는 ‘사람’이다
사람들은 생각보다 타인에게 별로 관심이 없다고들 말한다.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 별로 관심이 없기 때문에 타인에 대해서 별로 할 말이 없다거나 스스로는 거의 말을 하지 않는다고도 말한다. 그런데 그게 과연 그럴까.
관계할 관(關), 마음 심(心)
관계할 관(關), 맬 계(係)
‘관심’과 ‘관계’에서의 ‘관’이란 글자는 같은 한자를 사용한다.
우리 인간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평생 동안 ’관계‘를 맺으며 살아간다. 그 말은 즉, 깊고 얇든, 넓든 좁든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그 과정에서 다양한 대화를 주고받으며 살아간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소문이란 것도 퍼지고 때로는 오해도 하며 타인에 대해 뒷담이라는 것도 하게 된다.
하루에도 몇 개씩 쏟아지는 연예인들의 소식, 그리고 정치인들의 소식들을 보다가 아래에 달리는 댓글들을 보면 참 많은 글들이 보인다. 대부분은 욕하거나 반대로 편들어주는 글들이 많은데 이렇게 사람들은 타인에게 참 많은 관심을 가진다. 때때로 그런 댓글 중에서 ‘연예인 걱정이 가장 쓸데없는 걱정이다’라는 식의 글을 볼 때도 있다. 하지만 그런 댓글을 단 사람조차 유명인사의 소식에 대해 대충이나마 쭉 훑어보고 그러한 댓글을 달지 않았을까 싶은 게 내 생각이다. 그러니까 잠시라도 ‘관심’을 가진 후, 막상 보고 나니 자기 자신과 별로 관련이 없다는 생각이 들어 그런 댓글을 남기는 것이 아닐까 하고 짐작해 보는 것이다.
일 년에 몇십, 몇 백 권씩 쏟아지는 에세이나 소설을 봐도 마찬가지다. 자기 자신이 직접 경험한 것을 토대로 글을 쓴 에세이에는, 자기 자신뿐만 아니라 그동안 만나왔던 사람들의 이야기도 함께 실릴 수밖에 없다. 당연히 직접적으로 이름을 표기한다거나 특정 인물을 지목하진 않지만, 두루뭉술하게 혹은 ‘A’와 같은 추측하기 어려운 방법으로 언급하며 자기가 겪은 사건에 대해 풀어쓰기 시작한다.
허구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소설도 그렇다. 꼭 주인공뿐만 아니라, 등장인물들 간에도 서로에게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면서 감정 변화가 생기거나 사건이 펼쳐지기 시작한다. 그 과정에서 갈등이 생기기도 하고 내적 갈등을 하는 모습도 볼 수 있다. 만약 상대에게 관심이 없거나 자기 자신밖에 모른다면 애초에 이런 관계도 형성되지 않았을 거고 다양한 스토리가 생기지도 않았을 것이다.
모든 것에는 양면성이 존재한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생각보다 사람은 타인에게 관심 없다’는 말도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고 생각한다. 동시에, 그러니까 ‘관심사’라는 단어도 따로 존재하는 게 아닐까 싶다. 내가 관심 있는 사람 혹은 내가 관심 있는 그 무언가가 있기에 결국 타인에게 조금씩 관심을 가지게 되고 그렇게 팬이 되기도 하면서 커다란 네트워크를 형성하기까지 하는 게 바로 사람이고 관계며 관심이라고 생각한다.
우린 결국, ‘사람‘에게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우리 역시 모두 사람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