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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나검 작가 Jul 19. 2024

조교 인수인계받은 지 셋째 날

<3> 2024년 7월 19일 금요일

오늘은 인수인계 해주는 전임자가 반차를 써서 오전에만 근무하기로 했다. 출근 후 근무하는 시간은 총 두 시간 남짓. 그 시간마저 좀처럼 잘 갈 것처럼 느껴지지는 않았지만 어떻게든 견뎌보기로 했다.


원래 첫날에 공문 해석하는 걸 다 익히셨어야 했어요.
그리고 어제는 학생들 시간표 짜는 거, 그 이외의 것들을 알려드리려고 했어요.
그런데 아직도 이 공문 보는 걸 제대로 못해서 저는 너무 걱정스러워요.
과연 할 수 있을까 싶은 생각도 들고요.
이 내용들을 공부하고 숙지하셔야 돼요.
학생들이 물어보면 답을 제대로 해줄 줄 알아야 하고요.
혼자 이 업무들을 하실 수 있으시겠어요?


어김없이 날아오는 그녀의 다그침. 어제 수시로 들여다보고 오늘 출근할 때까지도 계속 들여다보며 익히려고 노력했건만, 나는 어김없이 실수를 했고 어김없이 잊었다. ‘아니 나 자신아, 분명 아까 전임자가 말해줬잖아. 왜 그걸 기억 못 해?‘ 나 자신마저 스스로를 그렇게 다그치며 잊었던 것을 어떻게든 기억해 보려 애썼다. 분명 익숙한 용어인데, 분명 익숙한 성함인데… 하면서.




저희 곧 점심시간 다가오잖아요?
그전에 팀장님께서 좀 보자고 하셨거든요.
안내해 드릴 테니까 앞장서세요.


또 팀장님께 불려 가는 것인가. 이틀 연속으로 윗사람에게 불려 가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그래, 이왕 가는 거 나도 할 말은 해야지 하는 마음을 가지고 앞장서서 걸었다.


잠시 후 팀장님이 계신 곳에 다다르자 전임자는 문만 열어준 후 다시 내려갔고 나만 팀장님을 뵙게 되었다. 어제처럼 1:1로 면담을 하게 되었다.


그래, 일해보니까 어때요?
어째할 만한가요?


나는 나대로 솔직하게 대답했다. 보통은 어디서 근무를 하든 매뉴얼을 받았다, 그리고 성향의 차이는 있겠지만 나는 다그치거나 몰아가는 식으로 가르쳐주시면 더욱 긴장을 하게 돼서 익힌 것도 자꾸 잊게 되고 그렇다, 기본적으로 대부분은 어디서든 3개월 정도는 수습기간으로 보지 않냐며 나는 이제 3일째 근무 중인데 버겁다,라고 말이다.


팀장님께서는 나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들어주시면서 그럴 수 있다며 이해해 주셨다. 그리고 다음처럼 말씀하시기도 했다.


사람의 성향이나 또 속도라는 게 다 다르듯이,
그래서 어느 정도 이해는 합니다.
다만 저는 스피드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기본적인 업무들은 잠시 뒤로 미뤄둬도 되는 것이 있을 수 있지만
학생들이 전화로 무언가를 물어봤을 때는
빠르게 답변해 줄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런 부분에서 어려움을 겪을까 봐 저는 그게 좀 걱정이 되네요.
일단은 뭐 한 번 해보시고, 혹시라도 다른 결정 내릴 것 같으면
빠른 시일 내로 말해주면 좋겠네요.


마음이 착잡했다. 가르치는 입장에서나 혹은 윗사람 입장에서는 짧은 시간 내로 얼추 상대방에 대해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지만, 그래도 3일 만에 이렇게 판단하고 선택의 여지를 주는 게 과연 맞는 건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어디까지나 그저 짧은 내 생각일 뿐이긴 하지만 말이다. 그렇게 착잡한 마음인 상태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4층으로 내려갔다.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 조교실 문을 열렸는데 어라…? 문이 안 열린다?


다시 시간을 확인해 보니 그때서야 아차 싶었다. 점심시간이구나. 그런데 나에게는 아무런 말도 없이, 전임자와 다른 조교쌤들끼리만 문을 잠가놓고 점심 먹으러 간 것이다. 하필이면 점심시간일 때 비가 제법 내리고 있었다. 조교실에 내 가방과 내 우산이 있는데…


화가 났다. 화가 나는 감정만 앞서다 보니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저 열을 식히기 위해 1층 로비로 내려가 앉아있었다. 그렇게 조용한 곳에서 혼자라도 있어야 마음이 조금 가라앉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12시 57분. 나는 다시 마음을 다잡고 4층 조교실로 향했다. 당연히 이번에는 문이 열렸다. 전임자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조교쌤들이 모두 있었다.


점심은 드셨어요?


네가 생각해도 내가 먹을 수 있었겠냐. 우산조차 꺼낼 수 없어서 밖에 비도 오고 해서 나갈 수가 없었는데. 편의점에만 가려고 해도 나가야 하는데. 조금 늦게라도 문이 닫혀 있어서 들어가지를 못하고 있다는 말을 카톡으로든 전화로든 했었어야 하는데, 나는 바보같이 그렇게 하지를 못했었다.


제가 속이 좀 불편해서요.


말 한마디라도 덜 섞고 싶어서 나는 이렇게 대꾸했다. 어차피 곧 가라고 할 것 같은데.


“아, 오늘은 제가 반차를 써서 오전만 근무하고 갈 거라고 말씀드렸는데 기억하실까요?“


“네”


“그럼 오늘은 일찍 퇴근해 보세요.”


전임자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다른 조교쌤이 그녀에게 음료는 건넸다.


“야, 고맙다. 역시 너밖에 없다.”


그들은 끝까지 나만 따돌렸다. 음료도 딱 자기네 인원수에만 맞춰서 사 온 것이다.


“네 그럼, 퇴근해 보겠습니다.”


“혹시 혼자 근무 가능하시겠어요? 대답 듣고 제가 제 일정을 조율해야 될 것 같아서요.”


“솔직히 말해 아직 배운 게 공문 보고 해석하고 발송하는 것 정도고 나머지는 아직 배우 지를 못해서 자신이 없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그럼 그렇게 알고 있도록 하겠습니다.”


감정이 먼저 앞서면 안 되지만 끝까지 감정적으로 올라와서 빠르게 조교실에서 나왔다. 그때서야 겨우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자꾸만 자신 없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내가 그렇게 많이 부족한가, 나는 행정 업무를 익히는데 정말 소질이 없는 사람인 건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마음이 착잡해서 오랜만에 학교 온 김에 바뀐 도서관 구경이라도 할까 싶어 도서관으로 향했다.




어 준이(가명)야, 잘 지내지?
다른 게 아니라 교수님으로부터 네가 그전에 조교 일을 해본 적이 있다고 들어가지고.
그래서 너에게서 조언 좀 듣고 싶어서 연락했어.


어젯밤에 교수님이 연락을 하셔서 잠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는데 익숙한 이름을 말씀해 주셨다. 다만 같은 이름을 가진 학생이 두 명이라 헷갈리기는 했지만 왠지 내가 아는 그 친구이지 않을까 싶어서 연락을 해본 것이다. 만약에 맞다면 조언을 듣고 싶었다. 먼저 해본 입장에서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어어, 난 잘 지내지.
아니 근데 그 친구가 너한테 그렇게 한다고?
와… 개구리가 올챙이 적 시절을 기억 못 하는 게 아닐까 싶다.
내가 급하게 그 친구를 후임으로 뽑을 수밖에 없어서 뽑긴 했는데
그렇게 해서 내가 그 당시 후배들에게 너무 미안했거든.
평판이 너무 안 좋은 친구를 후임으로 뽑아서.
그 이후로도 대부분의 학생들이 그 친구를 싫어했고
학과 내에서도 꽤 유명해진 걸로 아는데…
그 당시에 함께 근무했던 동기들도 지금 네가 해준 얘기 들으면
아마 웃지 않을까 싶다.

다만 어딜 가든 빌런은 있기 마련이니 이참에 이런 사람에 대해
공부한다 생각하고 며칠 같이 있어보고
다음에 우리 만날 기회 있을 때 썰 풀어주라.
어차피 그 친구는 곧 나갈 친구다이가.

그리고 원래 빈 수레가 요란한 법이라고 하잖아.
그 친구 말에 네가 기죽을 필요가 전혀 없다고 생각해 난.
넌 충분히 할 수 있는 친구라 생각하거든.
어떻게 3일 만에 사람을 판단해.
지금 내 밑에 들어온 후임도 8개월 차인데
이 친구가 일 년 넘어서는 얼마나 더 일 잘할지에 대해서는
나도 아직까지도 모를 일인데.

그러니까 너무 신경 쓰지 마.


이 조교일을 계속해보는 게 나은 건지, 아니면 일찍이 관두는 게 좋은 것인지에 대해 자꾸만 고민하고 갈팡질팡하고 있던 내게, 친구의 조언은 나를 다시 가슴 뛰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친구의 나에 대한 믿음은 더욱 나를 견고하게 만들어주었다. 주눅 들어있던 내 태도와 마음에 활기를 불어넣어 주었다. 친구의 조언을 들으면서 ‘아, 그래도 내가 인생을 너무 헛살지는 않았구나’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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