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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와 비장애의 경계선

뇌전증을 앓고 있는 나는 장애인인가 비장애인인가

by 김나검 작가

나는 병을 앓고 있다. 병명은 바로 ‘뇌전증’. 사실 이 병에 대해서는 우선 나의 과거 이야기에 대한 글에서 먼저 밝혀 쓰고 싶었는데 어쩌다 보니 그전에 병명을 먼저 밝혀 쓴다. 사실 글을 쓸까 말까 하며 주저한 시간이 길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만 글로 내어 써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이렇게 글을 쓴다.


옛날에는 ‘귀신병’이라 불렀고 사람들이 쉽게 알게 하기 위해 ‘간질’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병이기도 하다. 나 역시도 초반에는 간질이라고만 알고 있었다. 하지만 끊임없이 대체 나의 병명이 무엇인가에 대해 알고자 하다가 의사 선생님을 통해 '뇌전증'이라는 단어를 듣게 되었다.


낯설었다. 사지멀쩡한 내가, '뇌신경'과 관련해서 병을 앓고 있다니. 고작 중학생 때 한 번 쓰러진 이후로 병이 생기다니. 평소에는 아무렇지 않아서 더욱 믿기지 않았다. 다만 어쩌다 한 번씩, 너무 피곤하거나 스트레스받았을 때 순간적으로 손이 떨려 컵을 깨뜨리거나 몸이 움찔거릴 뿐이었다. 나는 이게 꼭 나만 그런 건 아니라고 생각했었다. 다들 피곤하면 흔하게 겪는 증상인 줄로만 알았다.


우리 부모님도 내게 이런 병이 생겼다는 사실에 초반에는 믿지 않는 눈치였고 또 믿기 싫어하셨는데 나라고 그렇지 않았을까. 하지만 한편으로는 호기심이 생겨 계속 내 병에 관심을 가졌다. 그러다가 성인이 되어 뇌전증과 관련된 정보를 찾아보는데 아직까지 이 병에 대해 부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조금 충격적이었다.


그리고 지금의 내가, 나의 모교에서 조교로 근무하면서 장애 학생들의 명단을 공문을 통해 받게 되었는데 그 명단을 확인했을 때 또 한 번의 충격을 받았다. 그건 바로 뇌전증을 앓고 있는 학생들이 꽤 있었다는 것이다. 게다가 그마저도 경증, 중증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뇌전증은 증상만큼이나 종류가 다양하단 건 알고 있었지만, 평소에는 별다른 증상이 없어서 무난하게 사회생활을 하고 있는 나와 또 다른 종류의 뇌전증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에 마음이 쓰였다. 한편으로는 그런 생각도 들었다. 이 학생들은 자신들이 병이 있단 사실을 드러내는 것에 대해 두렵지는 않았을까, 혹은 숨기고 그저 평범한 척하며 살아가고 싶지는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마치 내가 그랬던 것처럼.


나는 내 병에 대해 호기심은 있었으나 그렇다고 해서 겉으로 '굳이' 드러내고 싶지는 않았다. 스스로도 '나는 병이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싶지 않은 것도 한 몫했다. 하지만 그들은 드러내었고 또 그들을 돕고자 하는 사람들이 나서서 이 친구들과 같이 생활하며 도와줄 친구들을 찾아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계속해서 '뇌전증'에 대해 정보를 알아보는데, 뇌전증을 앓고 있는 사람들 중에서도 정도에 따라서 장애인등록증을 발급받는 사람이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다는 걸 우연히 알게 되었다. 나는 한 번 쓰러진 이후로 정기적으로 병원에서 검사받고 꾸준히 약을 먹으면서 별다른 증상이 나타나지 않아서 평범한 척하며 살아가고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많다는 걸 알게 된 것이다. 전부 나와 같지 않다는 걸 깨닫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가장 최근에서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의사 선생님에게 전해 듣기로는 뇌전증을 앓고 있는 사람들은 면허를 따려면 최소 2년 이상 꾸준히 약 처방을 받고 있다는 진단서(?)가 필요하다고 말씀하셨다. 그게 없다면 면허를 딸 수 없다고 하셨다. 내게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다. 뒤늦게 운전면허를 따볼까 하며 준비해 보려는 찰나에 이런 소식이라니.


아픈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싫고 또 약 먹는 게 싫어서 스스로 약 먹기를 중단한 지 꽤 오래되었다. 중고등학생 때 만났던 의사 선생님 중에서는 내가 약은 평생 먹어야 한다고 말씀하신 분이 있었다. 나는 그 말이 듣기 싫었다. 아직 젊은 사람이 벌써부터 약에 의존해서 살아가야 한다는 그 사실이 받아들이기가 싫었던 것이다(물론 성인이 되기 전까지는 잘 챙겨 먹긴 했다).


이 병이라는 게, 내가 계획하는 것에 앞을 가릴 줄은 몰랐다. 이런 순간이 올 거라는 것도 몰랐다. 계속해서 관심을 가지고 가끔씩이라도 정보를 알아보거나 혹은 병원에 다니면서, 의사 선생님께 문의해 보며 알아낸 정보는 종종 나를 씁쓸하게 만들었다.




뇌전증을 앓고 있지만, 나는 장애인증명서를 따로 발급받은 건 없다. 아무렇지 않게 일반인처럼 살아가고 있다. 약도 꾸준하게 챙겨 먹지 않으면서. 그래도 그동안 먹어온 약의 효력이 잔잔하게 남아있는 것인지 어릴 때만큼이나 몸이 떨리거나 하는 경우는 잘 없다. 그저 지나치게 스트레스받거나 흥분됐거나 잠을 잘 자지 못했을 때 순간순간 몸이 움찔거릴 뿐이다.


스스로는 나는 평범하다, 나는 따로 병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며 되뇌지만, 타인의 눈에는 이런 내가 어떻게 보일지 모르겠다. 이런 나는, 장애인에 속하는 건지 비장애인에 속하는 건지도 잘 모르겠다.


"선생님, 뇌전증을 앓고 있는 사람은 대부분 인지 능력이 떨어지나요?"


실제로 내가 의사 선생님에게 질문한 내용이다. 어릴 때부터 내가 남들보다 생각하는 것도, 행동하는 것도 늦고 해서 멍청한 사람이라고만 생각해 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의사 선생님은 미소를 지으시며 내게 뜻밖의 말씀을 하셨다.


아니요.
오히려 뇌전증을 앓고 계시는 분들 중에서
똑똑한 사람이 많습니다.


의사 선생님을 말을 듣자마자 난 순간 머리가 멍-해졌다. 오히려 똑똑한 사람이 많다니. 그동안의 내가 나 자신에 대해 초라하게 느끼고 한없이 부족하다고만 느껴왔던 게 머쓱해지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내가 지금까지 편견을 가지고 살아왔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요즘에는 꼭 몸이 아니더라도 마음이 아픈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인지 정신적인 부분에 대해서도 '장애'란 이름을 붙여 명칭을 칭하는 경우를 종종 본다. 어쩌면 우리는, 단순히 눈에 보이는 장애에 대해서 불편하게 느끼거나 혹은 불편한 시선으로 볼 게 아니라, 그리고 평생 나는 건강하고 멀쩡할 거란 생각으로 살아갈 게 아니라, 서로서로 돕고 이해하며 살아가야 하는 게 아닐까. 그러면 장애와 비장애의 경계자체가 허물어지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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