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린 시절부터 아끼고 저축하는 것이 최고인 줄 알고 자랐다. 어렸을 때는 세뱃돈과 용돈을 모았고, 직장생활을 시작해서는 월급의 80%를 적금을 붓고 나머지로 근근이 살아갔다. 내가 번 돈을 마음대로 쓰지 못하게 하고, 억지로 적금을 붓게 하는 엄마가 그 당시에는 이해가 안 갔지만, 덕분에 나는 내 힘으로 어학연수를 다녀왔고, 결혼자금도 마련할 수 있었다. 결혼 12년 차인 지금도 알뜰함은 몸에 배어있다. 가계부를 늘 쓰고, 가격을 비교하고, 최대한 아끼며 사니 현명하다고 생각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읭? 아닌가 봐?" 하고 말았다.
나는 마트에서 50원짜리 봉투를 사지 않고 미리 챙겨간 장바구니나 박스를 이용하고, 은행 수수료는 어떻게든 지불하지 않으며, 볼일을 보면서도 30분마다 환승을 함으로써 최소한의 요금으로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을 즐긴다. 적은 돈에는 바들바들 떠는 내가, 큰돈을 쓸 때는 이상하게 과감해지는 것이 궁금했는데 그 궁금증이 풀렸다.
우리는 사소한 일을 선택하는 경우에는 충분한 연습을 통해 올바르게 처리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다. 하지만 주택이나 대출, 직장을 선택할 때는 충분한 연습과 학습을 하지 못함으로써 올바르지 못하게 선택할 확률이 크다.
위 예와 같이 행동경제학이란 전통 경제학에서 벗어나서 심리학을 포함한 다양한 사회과학들을 받아들인 것을 뜻한다. 어렵게 생각할 것 없다. 남자 소변기에 '파리'스티커를 붙이자 조준하려는 심리가 발동하여 여기저기 소변이 튀는 것을 방지해준다는 것은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바로 이렇게 심리를 이용한 것이 행동경제학이라고 보면 된다.
파리 스티커 하나로 깨끗한 화장실이 되다니!
대단히 이성적이고 복잡한 계산도 척척 해내며, 자기 통제의 문제가 없으며, 최선의 선택만을 추구하는 냉혈한 가상의 존재를 '이콘'이라 한다. 반면에 현실 속의 인간은 종종 잘못된 행동을 저지르며, 어리석은 결정을 내리는 존재이다. 나는 웬만하면 과자와 라면을 사지 않으려고 한다. 집에 머무는 시간이 많은 내가 다 먹을까 봐서이다. 남편과 함께 먹는 저녁, 도시락을 싸기 위해서는 요리를 하지만 혹시라도 남편이 회식을 하고 온다거나, 점심때 나 혼자 집에 있을 경우에는 귀찮아서 요리를 하지 않게 되는 경우가 많고 어김없이 라면으로 때우기 십상인걸 알기 때문에 자제할 능력이 없는 나는 과자와 라면은 되도록 사지 않는 편이다. 이콘으로써는 절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지만, 우리는 결함과 열정을 갖고 있는 인간이기에 어리석은 짓을 저지르도록 유혹하는 요소를 아예 없애버리는 것을「서약 전략」이라 한다.
외식을 많이 하는 편은 아닌데, 요즘은 배달의 민족의 노예가 되어버렸다. 말복이라고 5,000원짜리 쿠폰을 뿌렸고 1,100원에 3,000원 할인권을 5매 구매해놨으니 나도 모르게 대기모드로 변한다. 그런데 서버가 마비되어 난리가 났다. 접속도 안되고 항의글이 여기저기 SNS에 올라옴에도 불구하고, 다른 일에 집중 못하고 계속해서 들어가 본다. 결국 1시간이 넘어서야 서버가 정상화되었고 16,000원짜리 닭강정을 7,000원에 결제했다고 뿌듯했으나 우리는 이미 배가 고파서 밥을 먹은 상태였다. 최대한 늦게 테이크아웃을 해왔지만 맛만 보고 냉장고에 보관할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닭강정은 보관했다 먹어도 꿀맛이지만) 7,000원의 금액이 크지는 않지만 벌써 몇 번째 시키는지 모르겠다. 살을 빼고 싶어서 헬스장에 가서 2시간을 힘들여 땀을 빼고 왔지만, 쿠폰을 받은 이상 사용하고 싶은 소비자의 심리를 꿰뚫은 배달의 민족의 승리라고 할 수 있겠다.
아파트 주민 15명으로 이루어진 카톡방이 있는데, 매월 8일이 되면 도시가스비를 인증하고, 25일이 되면 관리비를 인증한다. 처음에는 그냥 재미로 했는데 어느덧 경쟁 구조가 되었다. 물론 선의의 경쟁이다. 평수도 다르고, 가족수도 다 다른데도 불구하고 어떻게 하면 적게 나오는지 정보를 공유하기도 하고, 다른 집에 비해 월등히 많이 나온 집들은 자발적 반성을 하기도 한다. 입주 1년이 지난 지금 월등히 많이 나오던 집들도 의식적으로 아끼게 되었고(필요 이상으로 온도 높이지 않기, 쓰지 않을 때 물 틀어놓지 않기 등) 전체적으로 줄어들고 있는 추세이다. 만약 카톡방에서 공유를 하지 않는다면 그냥 나오는 대로 요금을 내고 말았을 것이다. 그러나 친한 사람들끼리 다른 세대는 얼마 정도가 나오는지 공유하고 비교함으로써 자연스럽게 공과금을 줄이는 효과를 보고 있는 것이다.
사람은 감정의 동물이다. 우리는 이콘이 아니기에 예측 가능한 실수를 종종 아니 자주 저지른다.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 방식으로 사람들의 선택에 영향을 미치는 행동경제학이 필요 없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사람의 심리와 경제적 원리를 잘 조합해서 이해한다면 더 이상 멍청한 선택을 하지 않고, 사소한 것에만 목숨을 걸지 않게 될 것이다. 똑똑한 삶을 위해 꼭 필요한 행동경제학을 맛볼 수 있는 「똑똑한 사람들의 멍청한 선택」에는 갖가지 법칙들이 나오고 경제학 용어들이 나와서 나에게는 조금 어려웠다. 하지만 지은이가 무엇을 얘기하는지는 감을 잡았다. 조금 더 행동경제학에 대해 공부를 하고 난 후 다시 한번 읽어봐야 할 책으로 킵해놔야겠다. 다수를 무조건 따르지 말고, 다른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똑똑한 소비자가 되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