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를 지으신 부모님 덕분에 어려서부터 야채는 원 없이 먹었다. 아니 사실 야채가 아닌 것을 먹고 싶었다. 나는 어렸을 때 등뼈가 만져질 정도로 많이 말랐었는데, 고기는 물론 비계도 잘 먹는 어린이였다고 한다. 나는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살코기와 비계가 있으면 비계를 먼저 선택했을 정도라고 하는데, 지금 생각해봐도 이해는 잘 안 간다.
시골의 밥상은 별다를 것이 없다. 그날이 그날이고, 김치로 이것저것 변형되거나 비지찌개, 된장찌개, 김치찌개 정도이다. 어린이가 좋아할 만한 장조림, 갈비 등은 생일 때나 맛볼 수 있는 귀한 반찬이었다. 그런데 학교에서 하교해서 집에 오면 어느 날은 냄새부터가 다른 날이 있었다. 언니와 오빠는 아직 학교에서 안 왔고, 엄마는 새참을 해놓고 다시 밭으로 가신 게 분명하다. 시골이라서 딱히 문은 안 잠근다. 아무도 없는 부엌에 가면 내 세상이다. 굶주렸던 하이에나처럼 냄새를 향해 간다.
실제 우리 아부지 아님;;; 퍼온 사진^^
아 맞다! 오늘은 밭에 품앗이를 하러 동네 사람들이 오는 날이다. 농사는 2~3명이서 지을 수 없다. 우리 식구들이 총동원되어도 안 되는 일들이 많기 때문에 동네 사람들끼리 돌아가면서 그 집 밭일을 도와주는 것이다. 그런 날은 우리 집에서 새참과 막걸리를 준비해서 쟁반으로 날라야 한다. 그 메뉴가 제육볶음이나 돼지수육일 때도 있었지만, 내가 제일 좋아했던 메뉴는 "닭똥집"이었다.
농사일을 하는 중간에 간식처럼 먹는 새참이기 때문에 양도 차면서 동시에 막걸리 안주도 되는 간간한 메뉴여야 한다. 그리 넉넉하지 않은 형편이어서 입은 많지만, 양은 넉넉지 않았다. 그래서 빨리 먹는 사람이 임자였다. 엄마한테 들키면 등짝 스매싱이지만, 그때 몰래몰래 먹었던 스릴 넘치던 닭똥집 맛은 잊을 수 없다. 방금 막 해 놓은 적당히 매운 닭똥집을 들키지 않으려고 한 개 먹고 방에갔다가 또 몰래나와서 한개 먹었던 그 맛이 정말 꿀맛이었다. 맛에 스릴이 더해져서 더 맛있었나?
시골에 산다고 해서 모두가 농사를 짓는 것은 아니다. 금은방집 딸도 있었고, 다방 집 아들도 있었으며, 문방구집 아들도 있었다. 부모님들이 농사를 안 짓는 애들은 손에 흙을 묻힐 일이 없었다. 그러나 밭농사, 논농사, 누에 기르기, 각종 가축 키우기 등 안한일이 없으신 우리 부모님이셨기에 덩달아 우리도 일손을 도울 수밖에 없었다.
옛날에는 양조장에 주전자를 들고 가서 막걸리를 사 오기도 했고, 대야나 쟁반에 먹을 것을 담아서 밭이나 논까지 들고 가기도 했다. 어린 마음에 친구들을 마주칠까 봐 전전긍긍하기도 했지만, 뭐든지 노동 후에는 곱절로 맛있는 법이다. 고기가 귀하다 보니 일 년에 한 번 정도 마을에서 공동으로 돼지를 잡아서 고기를 1/n 하는 날이 있었다. 굵은소금간만 한 채 목장갑을 끼고 먹었던 고기가 정말 맛있었다. 빼빼 마른나였지만, 그 누구보다도 많이 먹을 수 있었고, 많이 먹어놔야 했기에 파이팅 넘치게 먹었던 것 같다. 배가 부르면 동네 친구들이랑 조금 뛰어놀면 금방 꺼지니, 아빠 옆에 붙어서 또 고기를 얻어먹었다.
지금은 마음만 먹으면 먹을 수 있는 것이 고기지만, 그때만큼 맛있지는 않은 것 같다. 가난하고 부족한 시절에 가끔 먹을 수 있는 닭똥집과 돼지고기가 지금의 대형마트에서 신용카드로 결제하는 것과 똑같은 맛 일리 없다. 넉넉하지 않은 형편이 늘 아킬레스건이었는데, 지나고 보니 그 결핍으로 나는 더 단단해진 것 같고, 많은 추억을 가질 수 있지 않았나 생각해본다.
엄마 몰래 먹던 새참용 닭똥집과 목장갑을 끼고 호호 불어 가면 먹었던 돼지고기가 참 그립다.
근데 맛이 그리운걸까? 그때 그 시절의 추억이 그리운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