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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꾸바 Jul 12. 2019

소심한 또라이가 복수하는 법

외국계 회사에서 일한다는 것 (3편)

몇 번 이메일을 보내도 답장이 없다. 그동안 보냈던 메일을 다 첨부파일에 붙여서 마지막 이메일을 썼다. 계속 답이 없네, 담당자를 바꿔줬으면 좋겠어.

약 10분 뒤 답장이 왔는데 내게 보낸 메일이 아니다. 자신의 동료에게 내 메일을 포워딩하며 '이 여자 웃기지?(crazy)'라고 조롱하며 쓴 메일을 실수로 나에게 보낸 것이다. 

분노가 가시기 전에 다시 메일이 왔다. 웁쓰, 미안해. 앞에 보낸 메일은 실수야.


화가 났지만 본사 사람들이니 들이받을 수도 없고 소심한 복수를 하기로 결심했다. 구글 번역기로도 알아차릴 수 없게 한국 욕을 여섯 줄이나 써서 5포인트의 작은 크기로 내 이메일 서명란 아래에 붙여 넣기를 했다. 감쪽같다. 그리고 그녀의 이메일에 답장을 썼다. 괜찮아, 하지만 내가 너희 나라 언어를 이해할 수 있어서 다행이야. 난 보통은 정상이지만 아주 가끔 또라이(crazy)야


외국계 회사를 다니는 사람들은 영어 이름을 많이 쓰는데 나는 한국 이름을 고수하고 있다. 내 이름은 외국인들이 발음을 어려워하고 제대로 부르는 사람들이 없다. 그럼에도 내가 영어 이름을 사용하지 않는 것은 약간 삐뚤어진 마음인데 '나 영어로 일하는 거 너무 어려워, 그러니 너희들도 약간은 어려움을 겪어야 하지 않겠니?'라는 생각이 그 배경이다. 


나도 내 성격대로 회사에서 화를 내면 안 된다는 것쯤은 알고 있다. 참고 넘기면서 속이 부글부글 끓기도 하지만 이런 소심한 복수들은 그냥 나만의 만족일 뿐 당사자들은 모를 것이다. 그런데도 멈출 수 없는 이유는 이런 것이라도 해야지 그나마 화가 풀리기 때문이다.


보통 이메일을 쓸 때 마지막에 감사합니다 혹은 Thank you를 붙이는데 난 내가 싫어하는 사람에게는 일부러 오타를 낼 때도 있다. Thnks, 이런 식으로. 이렇게 글로 나의 소심한 복수들을 정리하고 보니 확실히 똘기가 있는 건 맞나 보다. 갑자기 이걸 포스팅해도 될지 소심한 고민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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