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천장을 깨니 대나무 천장이 있네요
외국계 회사에서 일한다는 것(7편)
업종마다 다르겠지만 내가 다녔던 외국계 회사는 남성보다 여성근로자가 더 많았다. 여성이 남성과 기본적으로 동등한 대우를 받을 수 있고 남초 직장 (예을 들어 금융, 제조업)의 좁은 문의 현실을 깨달았을 때 나를 받아준 곳, 여성으로서 엄마가 되었을 때의 여러 제약을 그나마 이해받는 곳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외국계 리테일 (예를 들어 화장품, 보석, 의류)은 여성이 확실히 많은데 그래서인지 남성의 경우 역으로 대우받는 경우도 많이 보았다.
예전 회사는 의류회사라 한마디로 옷빨이 잘 받는 예쁘고 잘생긴 직원들이 많았는데 같이 일했던 남자 동기가 보석회사로 이직하면서 유일한 인사팀의 남자로서, 그리고 여성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외모와 매너로 초고속 승진을 하여 인사팀 매니저가 된 경우도 있었다. 남녀 성비 구성이 중요하다 보니 똑똑한 여성들의 다수가 한 자리를 놓고 치열하게 경쟁해야 하는 곳이라는 것이다.
그렇지만 확실히 여성 매니저와 임원의 비율이 한국 회사보다는 많아 양성평등을 잘 실천하는 곳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천국 같은 곳만은 아닌 것이 흔히 말하는 유리천장이 없는 대신 대나무 천장이 존재하는 것을 깨달았을 때 그 좌절감도 꽤 크다.
대나무 천장은 아시아계가 고위관직에 오르지 못하는 현상을 말하는데 유리천장이 성별에 따른 차별이라면 대나무 천장은 인종에 따른 차별이다. 물론 동양권의 외국계 회사라면 다른 이야기이지만 내가 다녔던 미국계와 유럽계의 회사를 보면 본토(본사가 위치한 나라) 출신의 사람들이 글로벌 조직에서 많이 일한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를 이야기하자면 본토 출신 사람들이 당연히 더 오래 일했고 각 나라에 브랜치를 만들 때 본토의 고유문화를 전파하는데 노력한 개국공신쯤 되기 때문이 아닐까.
그런데도 불구하고 내가 대나무 천장에 좌절감을 느끼는 것은 개국공신의 노력은 그렇다 치더라도 본토 출신의 교포, 본토에서 공부해서 그 나라 말을 할 수 있는 사람, 심지어 본토에서 태어난 여자와 국제결혼한 남자들에게 노골적으로 주어지는 특혜 때문이다.
예전에 같이 일했던 본토 출신의 매니저는 "You, Koreans..."라는 말로 대화를 시작하는 경우가 많았다. 내가 국뽕이 넘치는 사람은 아니지만 한국인을 싸잡아서 너네는 이렇더라, 우리는 달라 라고 말하는데 화가 나지 않을 수 없었다. 마치 한국인들은 이러하니까 우리가 절대 높은 자리를 줄 수가 없어로 느껴지기도 했고 우리는 역시 달라의 특권의식이 느껴지기도 했다.
가끔은 도대체 그 사람이 왜?라고 느껴지는 인사발령에서 "그 사람 그 나라 출신이잖아"라는 말에 입을 다물게 되는 것을 보면 나도 어느 정도 포기를 하고 근무를 하고 있는 것이 맞다. 하다못해 직원들 사이에서는 진골, 성골 등의 골품제 이야기가 농담처럼 퍼져 나가고 나도 속으로는 동의할 수밖에 없다.
다행히 요즘은 글로벌에서도 아시안 마켓의 중요성을 알기에 동양인을 채용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하니 그나마 작은 희망을 가져본다. 채용에서의 성차별도 해결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나아지고 있는 것을 보고 있으니 인종차별(국적차별인가?)도 언젠가는 해결되겠지. 또 어떤 차별이 직원들의 마음을 상하게 할지는 모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