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꾸바 Aug 29. 2019

직원도 고객만큼 소중해요

리테일 회사에서 일한다는 것 (2편)

아무리 지원부서라 할지라도 문 하나만 열고 나가면 고객들을 만날 수 있는 매장이 있는 건물에서 일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플로어 근무를 할 기회가 많다. 더군다나 우리 회사는 당직 매니저라는 시스템이 있는데 한 달에 서너 번은 당직 매니저가 되어서 그날 매장의 책임자로 일을 하게 될 기회가 생겨 고객을 만나는 일들이 많다.


고객 컴플레인은 전담하는 부서가 있지만 때론 "가장 높은 사람 데려와!"라고 했을 때 출동 전화를 받는다. 난 나잘난 맛에 사는 사람인데 고객 컴플레인을 해결하면서 사실 '여자'로서, '젊은 사람'으로서 얼마나 말발이 먹히지 않은 약자인지를 많이 깨닫게 되었다.


서열을 메기자면 남자 외국인 매니저가 1위다. 컴플레인 해결까지 대략 1분. 외국인 매니저가 영어로 이야기를 시작하면 분명 우리 직원이 했던 이야기인데도 수긍하며 돌아간다. 2위는 여자 외국인 매니저, 단 파란 눈이어야 함  (아시아계는 안된다). 그다음 3위가 한국인 남자, 컴플레인 해결까지 가장 시간이 많이 걸리는 것은 마지막 서열인 한국인 여자이다.


한 번은 중국에서 온 매니저와 당직 매니저를 했는데 고성을 지르며 난동을 피우는 고객이 대뜸 영어를 쓰는 그녀에게 미국에서 왔냐고 물어봤다. 난 속으로 제발 그렇다고 대답하길 바랬지만 그녀는 솔직하게 자신이 중국인이라고 말했고 결국 그 고객은 목소리를 낮추지 않았다.


이탈리아 남자였던 오후 당직 매니저에게 인계를 할 때 이 사건에 대해 이야기를 해 주었고 그날 저녁에 그 고객이 다시 방문해서 또 소리를 질렀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이탈리아인 매니저는 다음날 나에게 "컴플레인 해결은 말이야, 아주 쉬워. 고객의 말을 잘 들어주면 금방 해결돼."라며 내 속을 긁었다. 스킬의 문제가 아니라 네가 백인 남자로서의 혜택을 누린 것이라며 말하고 싶었지만 참았다.


내가 다니고 있는 회사에서는 여성으로서의 차별을 느끼지 못하다가 매장에서 고객을 만나면 현실을 깨닫는다. 예전에 비해서는 아주 많이 나아졌지만 아직도 매장에서 일하는 직원들을 하대하는 고객들도 있다. 다행히 감정노동자에 대한 법률도 생기고 서비스직군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한 문구가 편의점, 매장 계산대에 의무적으로 부착되고 있다.


인사팀에서 산업안전에 대한 책임도 지고 있다 보니 이 부분에 있어서 나도 굉장히 민감하다. 직원들이 매장에서 일하는 환경이 육체적으로 안전하지 못할 가능성이 사무직보다 높고 정신적으로도 그러하다. 그래서 감정노동자인 직원들을 위한 휴게공간이나 명상공간 등을 만들지만 사실 후처리를 회사에서 담당하는 것보다 그 일이 발생하지 않게끔 선조치를 하는 것이 더 중요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난 리테일에서 일하는 것이 좋고 아마 앞으로도 리테일에서 일하게 될 것이다. 인사팀에서는 직원도 내부고객이기에 나는 우리 직원과 고객이 동등해 지길 바란다. 직원과 고객이 누구 하나도 저울에서 내려가거나 올라가지 않고 수평을 유지했으면 좋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저는 월요병이 없어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