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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홀로길에 Sep 23. 2024

네? 이게 저라고요? -1st

비아프랑카 델 비에르소 - 라 라구나 23.6km

밤만 되면 천둥번개가 쳐댔다. 그 소리에 잠에서 깬 나는 바로 잠들지 못하고 이리저리 뒤척였다. 침대에서 삐걱거리는 소리가 나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한참 동안 다시 잠들지 못하고 결국 거실로 나와 소파에 앉은 채 빗소리를 들었다. 창밖으로 보이는 좁고 긴 골목의 희미한 가로등 불빛을 보고 있으니, 영화 ‘라디오 스타’에서 박중훈이 불렀던 ‘비와 당신’이란 노래가 떠올랐다.



아침에는 비가 그쳤으면 좋겠다는 바람은 물거품이 됐다. 간밤 잠에서 깼을 때 봤던 가랑비는 아침이 되자 이런! 폭우로 바뀌어 있었다. 난 판초 우의와 인터넷으로 구입한 비닐로 된 휴대용 장화를 꺼냈다. 혹시 비가 너무 많이 오면 필요할까 싶어서 사 갔던 비닐장화였지만, 줄곧 배낭 안에서 잠자고 있었다. 무게가 가벼워 가지고 있었는데, 몇 번이고 버릴지 말지를 고민했던 물건이었다. 하지만 비를 한 방울도 맞지 않겠다는 강력한 의지로 가지고 다녔었다.



세찬 비바람과 물웅덩이에도 비닐장화는 제 몫을 톡톡히 해주었다. 신발을 신은 채 착용하는 비닐장화는 고무로 된 밑창 덕에 미끄럽지가 않았다. 길을 걸으며 만난 사람들이 나의 비닐장화를 신기한 듯 쳐다봤다. 자기 옷과 신발은 이미 다 젖었다며 울상이 된 사람도 있었다. 고갯길에서 흘러 내려오는 물줄기로 인해 젖지 않고는 걸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버리지 않고 가지고 있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바람 때문에 속도가 나지 않았다. 두 시간쯤 걸었을 무렵 마을이 나타났다. 이곳에서 커피를 마시며 잠시 쉬고 있는데, 느닷없이 구름이 걷히더니 해가 났다. 다들 우의를 벗어 물기를 탁탁 털어 배낭 뒤에 걸쳤다. 나도 판초 우의를 벗어 물기를 털어내고 건너편 난간에 널어놨다. 오늘 가는 ‘라 라구나’는 ‘비아프랑카’에서 800m를 더 올라가야 하는, 해발 1,300m에 위치한 고지대였다. 비가 그쳐서 다행이었다.



그사이 다 말라버린 판초 우의와 비닐장화를 배낭 안에 접어 넣고 다시 길을 나섰다. 하지만 비는 얼마 안 가 다시 내렸고, 나는 마침 고가도로 아래를 지나고 있었기에 그곳에서 잠시 비를 피하기로 했다. 점심 무렵까지 이런 상황은 반복됐고, 슬슬 피로감이 쌓여가고 있었다. 내리막이라곤 하나 없이 계속 오르막길인 데다가 비까지 오락가락하니 체력이 급격히 떨어져 가고 있는 게 느껴졌다.



고속도로 휴게소 같은 곳이 보였다. 오락가락하는 비 때문에 유난히 걷기가 힘들었다. 난 잠시 휴게소에서 산 음료수를 마시며 밖에 있는 의자에 앉아 쉬고 있었다. 내 앞에 커다란 버스 한 대가 주차를 하고 문을 여니 사람들이 우르르 내리기 시작했다.

“어머 한국인이세요?”

나는 고개를 들어 반가운 한국어로 인사하는 분을 올려다봤다.

“네”

“어, 그거 뭐야. 뭐라 하지? 아! 맞다. 순례길. 그거 하는 거예요?”

“네, 맞아요. 순례길.”

“얼마나 걸어요?”

“어디서부터 걷기 시작했어요?”

“혼자 왔어요?”

“어디까지 가요?”

“이거 왜 하는 거예요?”

“힘들어요?”

버스에서 내린 사람들이 순식간에 나를 에워싸고 질문을 쏟아냈다. 이 한국인 단체 여행객은 버스를 이용해 스페인 곳곳을 다니고 있다고 했다. 지친 몸이었지만, 그들의 질문 하나하나 에 나름대로는 친절히 답변을 해주었다. 궁금증이 풀린 사람들은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자신들의 목마름을 해결하기 위해 사라져 갔다.



다시 시작된 오르막길. 조금 전 휴게소에서 만났던 사람들과의 대화를 곱씹어봤다. 나는 왜 이 길을 걷고 있을까? 계속된 질문 속에서도 아직 답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답답한 마음이 들었다. 분명 난 이 순례길을 오고 싶어 했는데, 그 이유가 뭔지 알 수 없었다. 그저 호기심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문득, 그 질문의 답은 끝내 찾을 수 없을지라도, 이 길을 걷도록 하신 하나님의 뜻은 알 것만 같다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순례길을 오기 전 난 사람들과 어울리는 걸 꺼렸다. 혼자 있는 게 편했고, 아주 즐거웠다. 책을 읽고, 글을 쓰며, 붉게 물든 노을 사진을 찍는 데 다른 사람들은 오히려 방해될 뿐이었다. 이 여행을 준비하면서도 혼자 와서 혼자 걷다가 혼자 한국으로 돌아갈 거라고 당연히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얼마 남지 않은 지금 나를 돌아보면, 멋진 풍경들은 이미 기억에서 희미해지고 있었다. 오히려 길에서 만난 사람들과, 그들과 나누었던 그들만의 삶의 이야기가 선명하게 남아 나에게 힘이 되어 주고 있었다.



나는 느끼지 못하고 있었지만, 다른 사람이 보기에 난 외향적인 ‘E’ 성향이었다. 그들이 본 나는 한국인이든 외국인이든 먼저 말을 걸었고, 항상 대화의 주도자였다. 누군가가 ‘이 길의 끝에서 나를 만난다’고 했던 말이 떠올랐다. 돌아보면 서울을 떠나 속초에서 생활했을 때도 그랬었다. 밤새 혼자 운전하며 편안함을 느끼던 내가, 속초에서 사람들과 어울려 지내는 것을 행복해했다. 그 당시는 서울 생활에 찌든 나에게 바다가 주는 행복이라 생각했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사람들과의 소통이 주는 행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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