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 한 해의 끝에 서면

송년에 즈음하면-유안진

by 소걸음

33. 한 해의 끝에 서면/송년에 즈음하면-유안진


송년에 즈음하면


송년에 즈음하면

도리 없이 인생이 느껴질 뿐입니다

지나온 일년이 한 생애나 같아지고

울고 웃던 모두가

인생! 한마디로 느낌표일 뿐입니다


송년에 즈음하면

자꾸 작아질 뿐입니다

눈 감기고 귀 닫히고 오그라들고 쪼그라들어

모퉁이길 막돌멩이보다

초라한 본래의 내가 되고 맙니다


송년에 즈음하면

신이 느껴집니다

가장 초라해서 가장 고독한 가슴에는

마지막 낙조같이 출렁이는 감동으로

거룩하신 신의 이름이 절로 담겨집니다


송년에 즈음하면

갑자기 철이 들어버립니다

일년치의 나이를 한꺼번에 다 먹어

말소리는 나직나직 발걸음은 조심조심

저절로 철이 들어 늙을 수밖에 없습니다


― 『월령가 쑥대머리』, 유안진, 문학사상사(1990)




유안진 시인의 「송년에 즈음하면」을 읽고 쓴 답시 - 한 해의 끝에 서면


한 해의 끝에 서면


한 해의 끝에 서면

나는 조금 작아진다


몰아치던 파도가 지나간 자리

말수는 줄고 마음은 낮아져

인생이 만져진다


초라한 나로 돌아와

감사라는 말이

신의 이름처럼 떠오르고

이제야 철이 드나 보다


떠들썩한 인사 대신

조용히 숨 고르며

비워진 마음의 갈피마다

새해의 첫 햇살을 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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