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단길 2-강연호
비단길 2
잘못 든 길이 나를 빛나게 했었다 모래시계는
지친 오후의 풍광을 따라 조용히 고개 떨구었지만
어렵고 아득해질 때마다 이 고비만 넘기면
마저 가야할 어떤 약속이 지친 일생을 부둥켜 안으리라
생각했었다 마치 서럽고 힘들었던 군복무 시절
제대만 하면 세상을 제패할 수 있을 것 같았던
내 욕망의 신록이 지금 때절어 쓸쓸한데
길 잘못 들수록 오히려 무모하게 빛났던 들끓음도
그만 한풀 꺾였는가, 미처 다 건너지 못한
저기 또 한 고비 신기루처럼 흔들리는 구릉이여
이제는 눈 앞의 고비보다 그 다음 줄줄이 늘어선
안 보이는 산맥도 가늠할 만큼은 나이 들었기에
내내 웃목이고 냉골인 마음 더욱 시려오누나
따숩게 덥혀야 할 장작 하나 없이 어떻게
저 북풍 뚫고 지나려느냐, 길이 막히면 길을 버리라고
어차피 잘못 든 길 아니더냐고 세상의 현자들이
혀를 빼물지만 나를 끌고가는 건 무슨 아집이 아니다
한때 명도와 채도 가장 높게 빛났던 잘못 든 길
더 이상 나를 철들게 하지 않겠지만
갈 데까지 가보려거든 잠시 눈물로 마음 덥혀도
누가 흉보지 않을 것이다 잘못 든 길이 지도를 만든다
― 『비단길』, 강연호, 세계사(1994.06.01)
나의 예의
잘못 든 길이라 부르기엔
그 길에서 나는 환히 타올랐다
길을 잃은 듯한 어제조차
한때는 나의 깃발이었다
북풍이 발자국을 지워도
되돌아갈 지도는 처음부터 없었다
눈물 젖은 가슴 안고
끝까지 가보는 것이 나의 예의였다
길은 나를 속인 적 없고
다만 내가 나를 재촉했을 뿐
어디쯤에서 다시 길을 잃더라도
이 지도는 아직, 자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