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도서관은
월요일에 휴관이다.
직장인이었던 시절에도
월요일은 참 별로였지만,
퇴사인이 된 지금도
썩 좋아지진 않는다.
일요일밤까지 같이 놀던
나의 전우들은
아침이 되면
귀신같은 몰골을 하고
일터로 떠난다.
나는 혼자 남아
괜히 책을 다 꺼내놓고
페이지를 넘겨보다가
의미 없이 텔레비전 채널을
999번까지 돌려본다.
역시나 재미가 없다.
꼭 문 닫은 도서관에
가고 싶어 진다.
출근하기 괴로워
월요병에 걸리던
그때처럼,
혼자 있기 외로워
월요병에 걸린다,
굳이 자발적으로.
그러던 어느 월요일,
하나뿐인 여동생이
회사에서 밀리의 서재
구독권이 나왔다며
나에게 로그인 정보를 알려왔다.
남편과 살기 전,
나는 세탁기를 돌려본 적이 없는
장녀였다.
장녀를 강조하는 이유는
딸만 둘 있는 집안에서는
장녀를 장남처럼 대우해서
키우기도 한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나는 우리 집의 첫째 딸이자
첫째 아들처럼 자랐다.
그래서 내 손으로
속옷을 세탁해 본 적도
설거지, 청소 등의 집안일을
해본 적도 없었다.
시키지도 않았을뿐더러
엄마는 늘 나에게 시집가면
지겹도록 할 테니 하지 말라고 하셨다.
그렇다면
나의 동생도 같은 기억을
갖고 있을까?
정말 많은 시간이 흐른 후,
내가 하지 않았던
집안일의 대부분은
바쁜 엄마를 대신해
동생이 모두 해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동생을 만나기로 한 날.
얘는 항상 엄격한 표정을 짓고 있다.
'햇빛이 눈부셔서 그래.'
라고 말하지만,
반가운 마음을 잘 표현하지 못하는
아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해맑게 인사하는
장녀와는 다르게
기쁨을 잘 표현하지 못하고
슬픔과 서운함,
원망과 아쉬움도 먼저 드러내지 못한다.
하나뿐인 피붙이에게
나는 어떤 존재였을까.
나에게 밀리의 서재
구독권을 건네던
그날에도
동생은 회사에서
너덜너덜해진 후였다.
하얗고 말랑한 동생의 손을
가만히 잡아본다.
어쩐일로 순순히
약 1분정도 손을 내주다가
이내 덥다며 빼버린다.
그럼 그렇지.
도도한 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