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투쟁의 연속이다. 다들 살아가기 위해 애쓴다. 그 꼴은 하나가 아니고 지구에 있는 사람들의 합보다 많다. 그 모양새 중 정답은 없다. 답이 정해지지 않은 삶은, 그렇기 때문에 흥미롭고 고되다.
삶은 ‘나’로 출발해 수많은 것들과 관계 맺으며 형성된다. ‘나’를 고민하는 것도 힘든데, 너와 우리의 관계까지 고심해야 한다니 숨이 덜컥 막힌다. 숨이 막힌 상태로 나를 내버려 두면 결국 (사회적으로) 죽음을 맞기 때문에 우리는 고민하고 고심하고, 또 투쟁이다.
출발점인 나. 오롯한 나로 서려면 내가 어디에 서 있는지 확인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러려면 또 주변을 살펴야 하는데 내 곁에 가장 가까이 있는 이가 나님이다. 나님과의 관계가 어떤지 들여다보고, 나님과 어떤 관계를 맺어갈 건지 상상해보는 게 나란 사람의 뿌리를 찾는 초입일 것이다.
나님은 조곤조곤하고 민주적인 가족(회의)을 꿈꾸고 있는 듯하다. 나도 그러길 간절히 바라지만, 과연 그게 말처럼 가능한 일인가??
우리 둘은 3, 40년 가까이 각자 나름의 기준을 가지고 삶을 유지하기 투쟁해왔다. 그렇게 살아온 우리가 7개월 전에 만나 하나의 무대를 만들었다. 우린 지금 그 무대를 어떻게 채워나갈지 상상하며 투닥투닥 꽁냥꽁냥 중이다. 힘의 균형이 한쪽으로 쏠리지 않는 민주적인 관계를 꿈꾸며, 나의 개성이 상대방의 삶을 긍정적으로 변화시키길 기대하며, 사랑을 고백하고 서운함에 삐지고 끊임없이 보고 싶고 평생을 함께하고 싶은 마음에 미래를 상상하고, 있다.
민주적인 건 서로의 성질이 잘 서 있는 상태다. 그 차이, 다름을 확인하고 인정하는 건 투쟁 없이 불가능하다. 그 과정이 고성이 오가는 형태든, 조곤조곤 설득하는 형태든 정답이 없을뿐더러 옳고 그름도 없다. 나는 모두의 개성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삶을 살고 싶다. 나와 사는 모양새가 다르다고 해서, 언어의 세기가 차이 난다고 해서 그를 배척하거나 멸시하는 것만큼 비민주적인 건 없다.
역사적으로 봤을 때 ‘민주’가 들어간 모든 행위는 투쟁의 과정이었다. 결과물로 성립될 수 없는 이 단어는 어딘가로 향하는 방향이다. 우리는 민주적인 방향을 향해 토론하고 합의하고 행동해야 한다.
여기까지 ‘나’의 이야기.
지금부터 ‘우리’의 이야기.
앞서 말한 것처럼 ‘민주’는 토론하고 합의해서 방향을 잡고 행동하는 실천의 문제다. 이제 우리는 서로의 삶에 들어왔고, 하나의 무대 위에 서 있다. 어떤 형태로든 방향을 잡아야 하는 시기다. 그래야 ‘함께’ 살아갈 수 있다. 나님은 상대방이 소리 지르면 몸과 마음이 경직된다고 했다. 그런 사람인 걸 아는데 소리 지르는 건 폭력이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폭력을 가할 만큼 잔인한 사람은 아니기에, 최선을 다해 조곤조곤 논의하고 합의해 방향을 잡아나갈 것이다.
이렇게 쓰고 나니까 내가 엄청 소리 지르는 사람 같은데, 토론하고 합의하는 과정에서 목소리가 높아질 수도 있다는 걸 길게 설명하는 것이다. 아울러, 다짐했지만 때때로 목소리가 높아질 수도 있다는 걸 알아달라는 말이다. 그리고
나님도 하나정도 나랑 노력해줬으면 좋겠다. 나랑 공부하고 토론하고 살아가면서 조금 단단해졌을 때 소리 지르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오롯이 들어주는 노력을 해보면 어떨까. 그들이 소리 지르는 이유가 분명 있고, 그 세기만 빼면 나와 다르지 않은 상태라는 걸 알 수 있을 것이다. 조금 오래 걸리겠지만 함께 (소리 지르는 나를 포함해) 그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단단한 마음을 만들어보자. 그래서 언젠가 나님도 마음껏 소리치며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날이 오길. 때론 화 내고 소리 지르는 게 쌓인 감정과 문제를 해결하는데 더 빠른 방법일 수 있다는 걸, 체감해보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