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밑에 주름이 가득하다. 몸에 피로가 쌓이고 감기까지 오면서 그 수는 급격히 늘어났다. 어느 날 나님은 “며칠 전까지 멋있게 보였는데, 오늘은 주름이 보이네요. 콩깍지가 벗겨진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띵, 충격!! 우리 사귄 지 7개월 만에 콩깍지가 벗겨진 것이다. 뭔가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요산 배출이 충분히 되지 않아 혈관에 유리 결절이 맺혀 피가 순환하는 동안 지독한 통증이 오는, 통풍이 찾아왔다. 하필 통풍에 안 좋다는 굴, 회, 돼지고기, 튀김, 술을 며칠 동안 계속 먹었더니 급발진. 나님은 놀랐고, 하루 종일 통풍에 관한 정보를 찾고 재잘재잘 염려했다. 그리고 어제 “근데 프러포즈는 언제 할 거예요?”라는 나의 물음에 “일단 통풍 관리를 하기 전까지 프러포즈는 ‘보류’하기로 했어요.”라고 대답했다.
이제부터 우리 미래는 어떤 조건 속에 갇히게 되었다. 피로를 쌓아가고 음식 조절을 못해 몸 관리가 안된 내 잘못이 벗겨진 콩깍지와 보류를 만들어냈지만, 서운했다. 섭섭함이 묻어난 말투로 보류 보류했더니 나님은 “건강 관리를 강조하기 위해 협박한 거다.”라고 했다. ‘겁을 주며 압력을 가하여 남에게 억지로 어떤 일을 하도록 함.’이란 뜻을 가진 단어 협박. ‘사랑이란 이름으로 상대를 억지로 변화시키기 위한 협박’이라고 나님의 태도를 비판하기에는 내 몸이 하나 둘 고장 나고 있어 변명의 여지가 없다. 해맑은 미소로 나를 보는 나님을 안고 있으면 건강하게 함께 하고 싶다는 마음뿐이다. 나님의 말을 퉁퉁퉁 튕겨냈지만, 건강과 피부 관리에 온 힘을 쏟아야겠다는 다짐도 불끈, 했었더랬다.
콩깍지가 벗겨지는 건 어쩔 수 없다. 환상에 사로 잡혀 미래를 약속하기보다 상대를 오롯이 경험하고 그 속에서 미래를 상상하는 게 현명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보류’와 ‘협박’은 다르다. 이 단어는 사랑하는 사람을 내 틀 안에 맞추고 구속하는 속성이 짙다. 어떤 맥락에서든 상대를 향해 쓸 단어는 아니다.
사랑의 재발명에 중요한 조건 중 하나는 언어를 섬세하게 사용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내가 일상적으로 쓰는 단어와 문장 속에 억압과 폭력, 차별과 배제의 속성이 내재된 걸 발견하고, 다른 단어와 문장을 사용하도록 노력해야 내 안에 갇히지 않고 사랑을 재발명할 수 있다. 그렇게 사랑을 재발명하고, 그 힘으로 서로와 세상을 뜨겁게 끌어안을 수 있어야 사랑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믿는다. 거친 언어를 사용했던 나도, 특별한 악의 없이 관성처럼 나쁜 단어를 툭 던지는 나님도 우리 사랑을 위해 치열하게 노력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저는 더더더 치열하게 건강을 챙기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