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때부터인지 고등학교 때부터인지 나는 아빠의 양육 방식에 불만이 쌓였다. 아빠는 나를 사랑한다는 이유로 그리고 내가 행복하길 바란다는 이유로 나를 제어했다. 친구들과 놀기로 약속을 번번이 취소해야 했고 집에서 책을 읽거나 공부를 해야 했다. 고등학교 때까지 통금시간이 일곱 시였다. 나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무언가를 강요하는 것이 과연 사랑인가를 고민했다.
교사가 되어서도 마찬가지의 고민을 이어갔다. 나는 종종 학생들에게 무서운 분위기로 말을 하고 이거 못하면 쉬는 시간을 주지 않겠다는 협박을 종종 하게 되었다. 그리고 나의 이런 행동이 아이들의 행동 수정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미칠까를 고민했다. 혼이 나거나 협박을 하면 그 순간 행동 수정이 즉각적으로 일어나지만 학생들의 근본적인 행동을 바꾸기는 어렵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었다. 그런데 나는 왜 협박을 하는 것일까? 첫 번째는 내가 그렇게 자라왔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불안감 때문이다. 내가 협박하지 않으면 학생들이 내 말을 듣지 않거니 행동이 수정돼 않을 것 같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가 어제 협박을 했다.
보류를 하겠다는 건 나의 협박이었다. 처음에는 걱정이었는데 걱정이 커져 불안을 형성했다. 6년 동안 고치지 못했던 생활습관을 과연 고칠 수 있을지 불안해졌다. 협박을 하면 배하나가 고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어제오늘 배하나의 말을 듣고 글을 보면서 생각한다.
나의 불안으로 배하나에게 어떠한 위협을 주었구나! 내가 아빠에게 느꼈던 사랑을 포장하고 있는 폭력을 배하나에게 행했구나! 배하나에게 말하고 싶다. 정말 미안하다고.
협박을 하는 건 배하나에게 당장의 즉각적인 변화를 불 수 있겠지만 나는 배하나와 일이 년을 살 것이 아니기 때문에 협박으로 배하나의 행동을 바꾸게 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고 위협적인 행동이었는지를 깨닫는다. 그리고 내가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한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배하나를 믿고 배하나가 건강하게 살 수 있도록 끊임없이 지지하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인 것 같다. 변화한다는 것은 그동안 쌓아온 관성을 뒤집는 일은 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에 노력을 하다 지친 배하나에게 힘을 주는 일이 나의 몫인 것 같다.
여러모로 미안했고 오늘은 배하나를 지지하고 응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