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여행_배하나

우리의 첫 여행에서 무엇을 남길 것인가?

by 나하나

나님과 나의 생일이 3일 차이 나는데 설날이 끼어 있어서 함께하지 못하기 때문에 생일 전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지리산을 가긴 했지만 함께 계획을 세우고 떠나는 첫 여행이었다. 여행의 장소는 모슬포. 모슬포는 내가 이별을 하고 누군가를 떠나보내는 의식을 했던 공간이다. 나님은 그 말을 듣고 모슬포를 사랑의 공간으로 바꾸겠다며 거침없이 모슬포로 확정 지었다. 누군가와 여행을 떠나면 늘 갈등의 순간이 찾아오기 마련인데, 최대한 나를 내려놓고 가자는 심정으로 신나게 출발했다. 비록 도착하자마자 우진해장국으로 향하며 살짝 충돌했지만, 기다렸던 이 순간을 무의미하게 보낼 수 없다는 마음이 둘 다 들었던지 서로 미안하다는 말로 극적으로 화해하고, 이별의 공간을 사랑으로 채워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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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에 도착하고 나님과 나는 서로 바빴다. 나님은 우리 두 사람의 얼굴이 그려진 케이크를 준비한 것 외에 'HAPPY BIRTHDAY'라고 적힌 금색 풍선을 나 몰래 장식해야 했고, 나 역시 준비한 커플티를 나님께 짜잔 하고 줘야 했기 때문에 각자 노심초사였다. 처음으로 맡는 서로의 생일을 챙겨주고 싶은 마음이 가득한 방이었다. 비록 짜자잔하고 성공하진 못했지만, 서로의 정성과 사랑을 느끼며 축하 가득한 밤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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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우리는 뒤뚱거리는 배를 타고 마라도에 가서 유재석이 간 중국집에서 짜장면과 짬뽕을 먹고, 아픈 역사가 가득한 올레 10길을 걸으면서 차가운 바람과 맞섰다. 어쩔 수 없이 들어간 스타벅스에서 쑥떡이 들어간 프라푸치노를 먹었는데 정말 맛있었다. 그리고 식도락 여행의 하이라이트!! 처음 먹어본 방어회는 크기와 신선도 그리고 나님과 소주 한 잔이 곁들여지며 최고의 맛이었다. 늘 꿈꿨지만 내 몸 때문에 자주 하지 못했던 '시끌벅쩍한 곳에서 소주 한 잔에 둘 만의 이야기'를 드디어 한 것이다. 분위기가 무르익으면 그동안은 소주를 이어가려고 했을 텐데, 나님과는 함께 읽은 책을 공유하면서 삶을 나누고, 영화를 보면서 여행을 꿈꿨다. 아름다운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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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마지막 날. 나님은 옥돔 식당에서 보말 칼국수를 먹지 않으면 이번 여행에서 크게 후회할 것이라고 누누이 말했고, 우리는 첫 번째 손님이라는 기록을 세우며 칼국수를 먹었다. 맛집은 맛집이라는 이름만 존재할 뿐 맛은 없다고 생각했는데 옥돔 식당은 마치 옥돔이 칼국수에 들어가 푹 고아진 것처럼 국물이 진하고 맛있었다. 방어회가 크기와 분위기로 나를 압도했다면 보말칼국수는 깊이로 나를 끌어안았다. 그리고 이어진 카페 찾기 과정은 무거운 짐을 지고 돌아다니는 우리에게 좋았던 제주도의 기억을 다른 방향으로 전환시키는 복선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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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시간을 헤매는 동안 나님은 어깨에 진 짐의 무게 때문에 살짝 신경이 날카로워졌다. 다행히 찾은 망고주스 집에서 우리는 엄청 뜻깊은 시간을 보냈는데, 무려 2020년 계획을 세운 것이다. 건강을 위해 채식과 운동하기, 여행 가기, 책 읽고 토론하기, 함께 살기 위해 몸을 만들기 등의 중요한 계획을 세우고 생일날 빠져선 안 되는 미역국을 먹기 위해 가게에 갔는데 'Closed'. 사주기로 한 한라봉을 간신히 구해서 나님의 손에 쥐어주긴 했지만, 계획했던 대로 일이 풀리지 않을 때 화가 나는 나님의 속은 안정적으로 보이는 겉과 달리 엄청 요동치고 있었다. 그리고 나님은 여행을 위해 샀던 모자와 내가 생일 선물로 사준 장갑 한 짝을 잃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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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모자를 찾긴 했지만 장갑은 끝끝내 찾지 못했고, 나님은 잃어버린 장갑에 대한 아쉬움과 짜증을 냈던 자신에 대한 후회,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는 다짐을 반복하면서 요 며칠을 보냈다. 엄청 감동적인 순간도 있었고, 늘 맛났던 시간이었고, 즐겁고 의미 있는 시간을 보냈음에도 제주도 여행을 다녀온 후 남은 건 아쉬움과 후회, 그리고 반성과 다짐으로 모아지는 게, 참 아쉽다. 이 과정을 통해 나님이 부정적인 감정을 가질 수 있는 일이 생겼을 때 어떻게 부정을 더 쌓아나가는지 직접적으로 경험하고 있다.


제주도 여행은 지나갔는데 떨쳐버려야 할 이상한 감정이 남아있다. 나는 우리의 첫 여행이 이렇게 마무리되어선 안될 것 같다. 이별의 공간이 사랑과 웃음으로 변했던 그 순간들을 더 곱씹고 싶다. 만약 잃어버린 것에 대한 감정이 더 쌓인다면 사랑으로 변했던 모슬포를 생각하면 다시 슬퍼질 것 같다. 나님이 말한 것처럼 다음 여행에서는 힘든 순간 이동할 때는 잠시 쉬든지 택시를 타든 지 해야 할 것 같다. 그리고 내가 말한 것처럼 잃어버린 것과 집착하지 말고, 부정적으로 쌓아가는 감정의 패턴을 멈췄으면 좋겠다. 5년 후, 한쪽 장갑을 보면서 모슬포가 너무 사랑스러웠다고 기억할 수 있게 함께 이야기하자요! 제주에서처럼 힘껏 날아오르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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