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애의 근황

재계약도 안 하고 사라진 내 최애는 어디에...

by 나희구

다른 곳엔 눈길도 주지 않았다. 오로지 여행 서적만이 나의 목표였다. 갑자기 한 음악이 서점 안에 울려 퍼지자 들고 있던 책을 잠시 내려놓고 감상했다. 이 노래 진짜 오랜만이다. 눈을 감고 십 대로 되돌아갔다.

그 시절 내가 가족보다 더 사랑했던 베셀 바운스(vessel bounce). 컴백하면 음악방송 1위는 다 싹쓸이했다. 그들의 1위가 나의 100점보다 혈관을 뛰게 했다.


그런 베셀 바운스의 음악을 멀리하게 된 계기는 메인 보컬 현지의 탈퇴였다. 재계약 여부에 관심이 쏠리던 시점, 다른 멤버들은 재계약 소식이 들렸지만 현지만 감감무소식이었다. 현지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멤버, 소위 ‘최애’였다. 타고난 재능이 대단한 가수였다. 안티들도 현지를 실력으로 욕하진 못했다. 한 번은 베셀 바운스가 티 나게 립싱크해서 안 좋은 의미로 화제 된 적이 있었다. 이후 현지 혼자 특별 무대에 서게 되었는데, 기깔 난 라이브 실력을 보여주어 논란을 한 방에 잠재웠다. 노래할 때 가장 아름다운 사람, 그게 바로 현지였다.


하지만 현지는 베셀 바운스 중 유일하게 재계약하지 않고 팀을 탈퇴했다. 그 어디에도 현지는 없었다. 항간에는 결혼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혹은 죽을 때까지 먹고살 만큼 돈을 모아놔서 모든 걸 해결할 수 있는 큰 집을 짓고 산다는 얘기도 있었다. 심지어 마약 루머도 퍼졌다. 사실로 확인된 건 단 하나도 없었다.


어디에서도 현지를 볼 수 없다는 슬픔도 잠시, 각종 시험과 대학 입학에 열중해야 했다. 더 중요한 것에 집중하니 슬픈 감정은 무뎌져 갔다. 대학에 들어간 후엔 아주 가끔 현지를 떠올렸다. 회사에 들어간 후엔 현지를 잊어버렸다.


직장 생활에 지친 나는 긴 휴가를 냈다. 여행지를 정하러 온 서점에서 오랜만에 현지를 떠올리게 될 줄이야. 사인회도 참 많이 다녔다. 마지막 사인회에서 현지에게 여행지를 추천해 주기도 했다. 섬으로 여행 가고 싶다고 하길래 그리스의 시로스섬을 추천해 주었다. 추천했던 이유는 당시 내가 그리스에 가고 싶었는데, 유명한 산토리니섬보다는 현지를 알아보는 사람이 적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거기나 가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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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어이 왔다. 현지에게 추천해 준 시로스섬. 비행기와 배를 연달아 타서 기력이 쇠했다. 뭐라도 입속에 집어넣고 싶었지만, 이상하게 택시가 보이지 않았다. 걸어갈 만한 식당이 있는지 찾아보려는데 익숙한 언어가 들렸다.


“한국인이세요?”


상대는 내 캐리어에 달린 한글과 영어로 쓴 이름표를 가리켰다. 여기 와서 제일 처음 만난 사람이 한국인이라니. 그런데 내가 아는 사람이었다. 아는 사이는 아니었다. 내가 혼자 사랑했던 사람, 현지였다.

말하는 법을 잊은 사람이 되어 고개만 움직였다. 이 얼굴, 이 목소리, 눈 밑 점까지. 팬이었던 내가 헷갈릴 리 만무했다.


“진짜 반갑네요. 어디 가세요?”

“저…… 그냥 아무…… 식당…….”

“특별히 찾아본 데 있어요?”

“아……니요.”

“내가 추천해 줄까요? 타요.”


현지는 어리바리한 나를 조수석에 태우더니 운전대를 잡았다. 조잘거리는 참새가 되어 왜 이곳에 왔냐고 물었다.


“여행 왔어요.”


긴장해서 겨우겨우 한 글자 곱씹듯 내뱉었다. 그에 비해 창문 밖은 푸른 파노라마였다. 조금 진정이 되어가는 듯했다.


“왜 하필 시로스섬에 오신 거예요? 보통 산토리니 많이 가던데.”

“옛날에 우연히 알게 돼서 기억하고 있었어요.”

“저는 누가 추천해 줘서 알게 됐거든요. 어쩌다 보니 아예 눌러앉아 살고 있네요.”


그 사람이 바로 나잖아. 여기 살 줄 알았다면 안 알려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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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는 식당 주인에게 대신 주문해 주곤 사라졌다.


“음식 나왔습니다. 맛있게 드세요.”


갑자기 앞치마를 맨 현지가 주방에서 음식을 갖고 나왔다.


“사실 제가 일하는 식당이에요. 한국인 입에 맞을 만한 음식이니까 드셔보세요.”


눈이 휘둥그레졌다. 무대 위 현지는 한국에 버리고 온 듯했다.

다 먹고 계산하려 하자 현지가 식당 주인에게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무어라 말하더니 대신 계산했다. 현지가 내 밥값을 내준다니 정말 오래 살고 볼 일이었다.


“저, 밥값을…….”


현지가 말을 끊고 웃으며 물었다.


“이제 어디 가요?”

“일단 숙소를 찾아보고 짐 두고 돌아다니려고요.”

“숙소 예약도 안 했어요? 우리 집은 어때요?”


상상도 못 했던 일들이 연속으로 터져서 어지러웠다. 정신 차리니 현지 집이었다. 직접 안내해주겠다며 여행 내내 동행했다. 덕분에 갈리사스 해변, 에르무폴리 시내뿐 아니라 현지인이 아니면 모를 구석구석을 편하게 볼 수 있었다. 현지에게 내가 팬이었단 사실은 계속 얘기하지 않았다.


여행 마지막 날 함께 현지네 집 앞 바에서 와인을 마셨다. 그곳에서 현지의 속내를 들을 수 있었다.


“저는 도망쳐 왔어요. 가끔 후회도 해요. 한국에서 일을 바로 그만두지 말고 휴식 기간을 가져볼걸. 모아둔 돈은 많아서 여기서도 괜찮을 줄 알았는데 만만치 않더라고요. 제가 한국에서 씀씀이가 컸거든요. 여기 섬이라 물가 더 비싼 거 아시죠? 금방 돈이 바닥났어요. 이번에 승아 씨랑 있으면서 다시 한국 갈까 싶었어요. 그립기도 하고, 일이 나랑 맞았던 것 같단 생각도 들고.”


끝까지 조금의 부담도 주고 싶지 않았다. 다시 한국에 온다면 언제든 환영이라고 마지막 잔과 함께 마음으로 삼켰다.


다음날 아테네로 가는 배가 출항하기 직전, 현지는 수줍게 봉투 하나를 건넸다. 혹시 연락처? 설레는 마음으로 봉투를 열었다. 그 안에는 정갈하게 정리된 리스트가 들어 있었다. 그동안 집에서 묵은 숙박비, 가이드 비용, 주유비, 첫날 현지가 결제했던 식당 음식값까지 1유로 단위로 꼼꼼하게 적힌 명세서였다.


"현금 부족하면 한국 가서 송금해 줘도 돼요. 계좌번호 밑에 적어놨어요."


항구를 향해 철썩이는 파도가 어쩐지 짜게만 느껴졌다. 나는 깔끔한 '영수증 이별'을 마치고 배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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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일상으로 돌아온 어느 날이었다. 업무를 위해 경제 기사를 보고 있는데 현재 시로스섬의 경제 사정 및 물가에 대한 기사가 났다. 기사를 읽으며 찝찝한 마음으로 계산기를 두드렸다. 기사에 적힌 숙박비 평균은 내가 낸 금액의 절반 수준이었다. 세 달 후 더 경악스러운 소식이 찾아왔다.


현지는 에세이 작가로 한국에 돌아왔다. 섬살이를 책으로 써서 출판했다길래, 출간하는 날 바로 서점에 갔다.

글에 의하면 현지는 봉사활동을 하며 지냈다. 가끔 심심하면 친구의 가게를 봐주기도 했고, 주로 명상과 산책을 하며 지냈다. 막상 여유롭게 살자 바빴던 한국 생활이 그리워졌단다. 때마침 한국인을 만나게 되었고, 그 사람이 넌 여기 있을 사람이 아니라고 설득해 고민 끝에 한국에 돌아왔다는데.


내가 언제 현지를 설득했지? 현지 입에서 봉사의 봉 자도 못 들었다. 명상과 산책은 비슷한 거 하는 모습도 못 봤다. 식당 사장과도 절대 친구 관계 같아 보이진 않았다.

나는 다 읽은 후 중고 서점에 가서 반값에 현지를 정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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