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는 어디서 허기를 채우는가

범재는 왜 천재의 삶을 갈망하는 걸까

by 나희구

이번에 입학한 신입생 김향분 님은 단번에 기대주로 떠올랐다. 향분 님을 가르칠수록 이분의 인생이 내 일처럼 아깝다. 머리가 비상하고 배운 것 그 이상으로 흡수하는 분이지만, 초등학교만 졸업한 채로 살아오셨다. 이곳을 졸업하신 후 대학도, 대학원도 가능하지 않을까? 향분 님의 미래가 얼마나 멋질지 감히 예상하고 싶지 않다. 나의 모자란 상상력 이상을 해낼 수 있는 사람임을 확신했으니까.


“저렇게 비상하신 분이 어쩌다 초등학교까지만 나오신 거래요?”

“뻔한 얘기죠, 뭐. 오빠들 학비 대려고 어릴 때부터 일하셨대요. 그런데 오빠들이 영 공부에 두각을 못 나타내

서 고등학교도 겨우 졸업했다고 하더라고요. 차라리 향분 님을 뒷바라지하는 게 훨씬 나았을 텐데.”


모두가 한마음으로 향분 님의 학문 매진을 응원했다. 학생에겐 강력한 동기부여와 모범이 되고, 교사에겐 기대감을 잔뜩 심어주는 학생이었다. 우리는 향분 님에게 늘 천재 같다, 왜 이제야 나타나셨냐 등의 말을 했다. 그럴 때마다 향분 님은 허기가 충족된 듯 충만해 보였다. 그 허기를 채워주는 사람은 나라는 확신이 들었다. 향분 님을 대학에 보내고, 나도 인정받을 수 있을 거란 기대를 키워 갔다.




웬만하면 이런 실수를 하지 않는 나지만, 엄마에게 SOS를 쳤다. 엄마가 집에 두고 온 학습자료 USB를 챙겨 와 준 덕분에 아무 지장 없이 수업을 진행할 예정이었다.


“나 수업하는 모습 궁금하지 않아?”


한 번쯤은 엄마에게 나 이렇게 일 잘하고 있다며 보여 주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늘 내 걱정을 하는 엄마에게 어엿한 사회인의 모습을 보여 주어 근심을 덜어주고 싶었다. 결국 엄마는 나와 함께 교실로 들어갔다. 맨 뒤에 앉은 엄마에게 잠시 눈길을 주고는 바로 수업을 시작했다.


엄마의 반응은 나쁘지 않았다. 엄마의 올라가는 입꼬리만큼 나의 자긍심도 비례해서 올라갔다. 그런 엄마의 표정이 한순간에 심각해진 건 나의 질문에 향분 님이 답했을 때였다. 향분 님이 틀린 답을 내놓았는데 내가 맞다고 했나? 틀린 지식을 전달했다면 엄마는 바로 알아챘을 터였다. 우리 모녀는 대학 전공이 영어영문학이라는 공통점이 있기 때문이다. 갸웃하는 엄마를 볼 때마다 나의 기분도 같이 처졌다. 괜히 참관하라고 한 것 같다. 엄마여도 부족한 모습을 보였을 때 자존심이 상하는 건 마찬가지였다.


엄마를 배웅하러 가는 동안 우리 모녀는 한 마디도 나누지 않았다. 엄마는 뭐가 그렇게 심각한지 내내 불편한 표정을 지었고, 난 부끄러워서 아예 얼굴을 들지 못했다.

문을 열고 나간 엄마가 갑자기 뒤돌아 나를 보았다. 할 말이 가득한 낯빛이었다.


“엄마, 할 말 있어?”

“저기…….”


무언가를 말하려는 엄마의 시선이 내 뒤에 꽂혔다. 그러더니 엄마 팔을 잡은 내 손을 뿌리치며 집에서 얘기하자고 했다. 엄마의 어두운 표정을 보며 내 수업이 그렇게 별로인지 자책했다.




퇴근하자마자 안방으로 끌려 들어갔다.


“오늘 네가 질문할 때 혼자 대답했던 사람 이름이 뭐야?”


공부 다시 하라며 한 소리 들을 줄 알았는데, 향분 님한테 관심을 보였다.


“김향분. 왜?”


엄마는 이마를 짚더니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걔가 왜 거기 있어?”

“그분 초등학교만 나오시고 계속 일하느라 공부할 기회가 없으셨어. 고등학교 졸업장 따고 싶다고 오신 거야. 엄마 향분 님 알아?”

“김향분 초등학교만 나온 거 아니야.”

“그게 무슨 말이야… 혹시 초등학교도 안 나오셨어? 엄마가 그걸 어떻게 알아? 부끄러워서 우리한테 거짓말하셨나?”


물론 초등학교를 나오지 않은 분들도 있다. 학교에 다녔든 안 다녔든 그건 문제 되지 않는다. 공부를 시작한 지금만이 중요하다.


“그런 말이 아니야.”


엄마는 들고 있던 두꺼운 책을 펼쳤다. 단호한 손짓으로 표시해 둔 부분을 찾더니 내 앞에 들이밀었다.


“… 이게 뭐야?”

“김향분 졸업 사진이야.”


학사모를 쓴 젊은 향분 님의 사진이었다. 사진 밑엔 ‘김향분’이라고 선명히 쓰여 있었다.


“이거 엄마 대학 졸업 앨범 아니야?”

“그러니까 놀란 거야. 김향분 내 같은 과 동기야. 대학 졸업한 애가 왜 거기 있는 거야?”


아무리 엄마라도 어떻게 저런 말을 한 번에 믿을 수 있겠는가. 동명이인을 의심하기도 했다. 하지만 향분 님에게 두 오빠가 있다는 것과, 나고 자란 동네를 엄마는 기억하고 있었다. 머리와 마음이 밤새 싸워서 잠을 이루지 못했다. 사실 앨범을 본 순간 알 수밖에 없었다.

다음 날, 향분 님은 처음으로 무단결석을 했다. 전화도 받지 않았다. 학칙 상 교사가 향분 님을 찾아가야 했다.




우린 향분 님의 집 식탁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았다. 책장엔 책들이 가득했다. 그것도 영어 원서가 특히 많았다. 엄마 책상에서 본 전공 서적도 있었다.

향분 님에게 꽤 많은 기대와 정을 주었다. 그래서 제발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에 타당한 이유가 있길 바랐다. 학교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는 사람을 놓치고 싶지 않은 게 솔직한 심정이었다. 우린 서로에게 좋은 파트너라고 생각했는데. 향분 님은 잠시 눈을 감고 생각에 잠기더니 결심한 듯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이야기가 이어질수록 조마조마했다.



향분 님은 동네에서 제일 영특한 아이였다. 부모님은 공부하기 싫어하는 오빠들 대신 향분 님만 학교에 보냈다. 평생 똑똑할 줄 알았지만, 문제는 대학교였다.


“전국 단위로 겨루고서야 알았던 거죠. 내가 천재라는 건 다 허상이었구나.”


작은 동네 한정이었더라도, 한평생 천재 소리를 듣고 자라온 터라 모자람을 쉽게 인정할 수 없었다. 괴로운 마음으로 대학교를 졸업한 후에도 범재 인생의 연속이었다.


“난 그게 제일 미칠 것 같았어요. 나에 대한 기대가 없는 거. 난 남들의 기대로 먹고살았던 사람인데.”


그러다 우연히 학력 인정학교를 발견했다. 이곳에선 다시 천재 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쌓아온 학력을 버리는 건 하나도 아깝지 않았다.

천재를 갈망했던 범재의 담담한 절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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