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을 만진다. 나는 아이들에게도 말로 잘 표현을 못한다. 식물에게도 나의 사랑의 방식은 비슷하다는걸 알았다. 매일 어스름 만져준다. 다정히. 그렇게 달빛처럼. 그런 은은한 사랑이 좋은가보다. 나도 받고싶은가보다. 그렇게 식물들은 잘 자란다. 해가 잘 드는 집에 살았을때 식물들이 감당못할만큼 잘 자랐다. 몸체가 커져 작은 화분에 있는걸 보면 답답하다고 외치는 목소리가 들리는것만 같아 괴로웠다.그래서 때마다 분갈이를 부지런히 해주었고. 큰 화분을 만날때마다 이것들은 신나게 뿌리를 넓혀갔고, 이제 그 잎들이 집안을 부담스러울만큼 한자리를 채웠다. 몇개만 두어야지. 그래서 지금 화분을 만질때마다 나의 애정으로 또 마구마구 자랄까봐 멈칫 부담스런 맘이 들때가 있다. 셋째를 고민했었다. 귀여운 아기들을 보면 꺄르르 거리며 안아보기도 하는 그런 어여쁜 마음을 가진 아가씨가 나는 아니었다. 그런데 하나둘 낳고보니 아이들이 정말 너무 예뻤다. 이보다 예쁜게 세상에 없는것 같았다. 그러고보니 나는 내 첫애를 안아보기전 아기라는 존재를 한번도 안아보지 않는 인간이었다. 그러니 첫애를 안았을때의 그 생경함에 나는 어쩔줄을 몰라했다. 생경하다는 표현으로는 너무도 부족할만큼 정말 도저히 형언을 할수 없는 것이었다. 그저 아이를 처음 안아본 엄마의 지경이 아닌. 털이 수북한 아가가 이것이 태몽때 보았던 그 맷돼지새끼인지. 움직이는 인형인지. 이것이 사람이란 형상에 가장 최소화된 것인지.인간이 맞는것인지.소중한 존재가 내게 왔구나하고 단순하게 받아들여지는 것이 내게는 아니었다. 정말 준비라고는 하나도 안된 엄마였다. 그와중에 빈수유실에 젖을 무는걸 보고 어떻게 그런 얘와 나를 내버려두고 간호사 언니는 가버리는지를 괜시리 원망하며. 나는 도무지 당황그자체였다. 더 당혹스러웠던것은 이 사내아이는 내 예상보다 훨씬 더 큰 압력으로 젖꼭지를 훅 빠는데. 내 온몸이 빨려들어가는것만 같아서 순간 나는 헉 숨을 내뱉으며 그 조그만 아기에게 무서움을 느꼈다. 그때의 나를 지금 보면 너무 어렸던.정말 준비라고는 없었던 어린엄마였다. 덜렁덜렁 대는 나는 출산준비도 귀찮아서 대충대충 해왔으니 말이다. 그렇게 빈틈많은 덜렁이의 나를 자라게 한 순간들. 정말 무수히 많다. 그래서 너는 부족함이 있을지언정. 나는 대체적으로 천천히 하는 엄마였다. 앞서갈수 없는 엄마였다. 너와 발을 맞춰가고 대게는 뒤에 따라가는 엄마였다. 준비되지 않는 엄마의 장점이겠다. 너를 끌고가지 못하고 따라가는 엄마 말이다. 나 혼자 했던 육아. 그저 보는게 가장 예뻤던 게으른엄마 . 누워있고 싶을때까지 일으키지 않고 먹고싶을때까지 먹이지 않고 말하고 싶을때까지 말하라고 하지않는 엄마. 비가 많이 오는 날에는 어김없이 너무 많이 자던 아이. 아직도 모르겠다. 비가 많이 오면 왜그리 많이 자는 것이었는지. 그리고 비가 오는날에는 그렇게 그림그리는게 더 좋아서 어느날은 그림에 빠져서 신생아가 젖때도 놓치고 아기가 너무 많이 자버려서 땅땅해진 가슴에 깜짝놀라 뛰어가 코밑에 손을 갖다대던. 숨쉬고 있는지 확인하던 정말 철딱서니 없던 엄마였다. 지금도 나는 여전히 크게 변했나 보면 아니다. 할수있는 정도로 한다. 삼시세끼 차려주는게 아직도 그리 수훨하지 않지만 그래도 성실히 하려는 엄마다. 삼시세끼가 나를 때로 옭마매는듯 그것이 수고로운 사람. 그러니 교육은 뭐 더 어렵지. 내가 어떻게해. 너네도 가고싶은만큼가. 하고싶은 방향으로 내딛고싶은 걸음만큼 가. 따라갈께. 그리고 나도 할수있는걸 해줄께.나의 이정도가 때로 너무 미안할때가 많다. 그래도 나의 장점을 살려야지. 나는 적어도 싫은것들을 강요하지 않는. 너희앞에 장애물이 되지 않는 엄마가 될꺼야. 마음껏 걸어가. 가고싶은곳으로 마음껏 걸어가. 그래서 행복해. 자유해. 그랬으면 좋겠어. 어차피 세상살이는 고되더라. 그래도 내가 가고싶은 방향으로 온전히 나다운 걸음으로 가면말이지. 신이라도 나더라. 그림그리는게 참 고되다.힘든것들을 적자면 수두룩빽빽 한숨부터 나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무게를 지고감이 신이난다. 재미있다. 너희들을 낳고 키우는것도 그랬다. 내가 태어나서 단연코 가장 잘 한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