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사 5년 차가 되었을 즈음 ‘여성의 날’ 행사를 한다는 경영지원팀의 대대적인 홍보가 있었다. 굿즈도 만들고 홍보 영상도 만들며 여직원들의 참여를 적극적으로 유도하는 모습이었다. 이전의 행사는 꽃꽂이나 케이크 만들기 따위의 이벤트성 행사였는데 이번에는 좀 더 의미 있는 기획을 하고 있는 것 같아 내심 기대가 있었다. 연구소에 만 명이 넘는 직원이 있지만 행사에 모인 여직원은 대강당 1층을 겨우 채웠다.
행사는 외국계 보험회사에서 최초의 여자 대표가 된 성공한 왕언니의 강연으로 시작됐다. 자신을 60대라고 소개한 왕언니의 라떼는 그야말로 옛날의 맛이 났다. 왕언니는 꽤나 금수저에 속하는 사람이었고, 시대적 배경을 감안하더라도 그녀가 했다는 노력들이 그다지 와닿지는 않았다. 왕언니는 강연 마지막에 ‘여러분, 포기하지 말고 꼭 여성 리더가 되세요.’라고 말했지만 성별이 여자였을 뿐 성공한 남자의 강연과 별로 다를 것이 없었다.
다음으로는 회사에서 ‘최초 혹은 유일한’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는 여자 임원, 팀장 등의 언니들이 연사로 나와 자신의 이야기를 짧게 전달한 뒤 질의응답을 가지는 시간으로 진행되었다.
“선배님, 아이 키우면서 회사생활 하기 너무 힘이 듭니다. 이 시간을 어떻게 잘 버틸 수 있을까요?”라고 누군가 물었고 언니들은 이렇게 대답했다. “저는 부모님께 부탁을 드렸어요. 부모님이 고생을 많이 하셨죠.”, “저는 남편이 서포터를 해줬어요. 아직 결혼 안 하신 분들은 저처럼 잘 도와주는 남자를 만나세요.”(웃음)
그날 연사들은 대부분 개인의 노력, 개인의 해결방법을 주로 나눠 주었다. 같은 환경에서 일하는 선배로서 좀 더 그럴듯한 답변을 해주길 바랬지만 ‘너희도 나처럼 참고 견뎌보렴’ 정도의 메시지로 들렸다. 나는 그런 언니들의 대답이 대체로 좀 못마땅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언니들의 각자도생을 이해 못할 것도 아니었다. 군대 문화라 불리는 제조업 회사에서 그녀들이 지나온 시간은 지금보다 훨씬 척박했을 것이다. 그들끼리 만들어 놓은 규칙 안에서 살아남기 위해 옆의 동료도 뒤의 후배도 돌아볼 새 없이 자신 하나 지켜내기도 버거웠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도 유일하거나 최초인 길을 계속 만들어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언니들에게 내가 실망을 말할 자격이 있을까.
성공한 왕언니에게 한 선배가 질문을 하다가 리더가 되기 위해 버티는 삶이 너무 힘들다며 울음을 터뜨렸고 왕언니는 그 선배를 무대에서 꼭 안아주었다. 우리는 응원의 박수를 보내며 응답했는데 어쩐지 나는 그 모습이 좀 씁쓸하게 느껴졌다. 내가 아는 그 선배는 팀원들 사이에서 누구보다 당당해 보이기로 (혹은 독하게 보이기로) 소문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 광경을 보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냥 적어도 내가 아는 친구들은 저렇게 모르는 사람 앞에서 홀로 우는 일은 없도록 하고 싶다는 생각. 언니들은 외로웠지만 우리는 외롭지는 않았으면 좋겠다는 그런 생각 말이다.
이 행사가 있을 즈음 나는 파트를 이동해 새로운 업무를 맡게 되었다. 새로운 업무는 공장에서 제품이 강건하게 체결될 수 있도록 설계하는 일이었는데 실험실에서 실제 부품을 조립하는 일이 많았다. 공구를 많이 다뤄보고 다양한 부품들을 접해보는 것, 공장에서 벌어지는 현장의 상황을 잘 이해하는 것이 업무 하는데 도움이 많이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 시기 남자 신입사원도 같은 업무에 투입되었다. 새로운 업무에 있어서는 우리 둘 다 처음인 셈이었다. 둘 다 배워야 할 것이 많았지만 선배들은 나보다 힘도 잘 쓰고 부리기도 더 편한 남자 후배를 더 자주 데리고 다녔다. 몸은 편했지만 마음은 불편했다. 1~2년만 지나도 후배가 나보다 더 스킬이 쌓일 것이란 건 쉽게 예상할 수 있었고 그것은 현실이 되었다.
한참 동안은 실험을 할 때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었다. 대부분의 부품이 대물이라 무겁기도 했고, 숙련이 잘 되지 않아 혼자 하기에는 두려움이 있었다. 실험을 해야 할 때마다 누군가의 도움을 꼭 받아야만 했는데 매번 부탁하는 일이 그렇게 어려웠다. 물론 우리 착한 공대 오빠들은 도움을 요청할 때마다 자기 일처럼 기꺼이 도와주었다. 어느 때엔 박수를 치며 칭찬도 해주었다. “이야, 이제 이런 것도 할 줄 알고 대단하네~” 칭찬인데 이상하게 기분은 좋지 않았다. 동료에게 하는 말이라기보다 여동생에게 해주는 말처럼 들렸다. 남자 후배는 혼자서도 하는 일을 나는 칭찬까지 들으며 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괜한 자괴감이 들었다.
공장에 출장 가는 일도 그랬다. 공장에서는 내가 장비를 들고 걸어 다니기만 해도 눈에 띄는 존재가 되었다. 여자 직원이라고 여러 가지로 배려는 해 주지만 정작 업무 협의를 할 때는 묘하게 제외되는 느낌을 받았다. 다들 공장은 멀고 몸이 힘들어서 피하는데 나는 그곳에 가면 마음이 힘들어서 공장 출장을 피하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스스로 너무 위축되어있었던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새로 시작하는 업무를 빨리 잘하고 싶은 조급함도 있었다. 아직 익숙하지 않아서 그런 것인데 나의 미숙함을 그렇게 핑계 대고 싶었던 마음도 있었던 것 같다.
지금은 어엿한 대리가 된 신입 사원은 나의 가장 든든한 실험 메이트가 되었다. 이제 혼자서 하기 어려운 실험은 당당하게 도움을 구하려 한다. 그것이 더 안전하고 효율적인 방법이기 때문이다. 칭찬은 칭찬으로 들으려 하고, 내 선에서 협의가 어려울 땐 윗사람에게 알린다. 괜히 쫄지 않으려고 노력 중이다.
그리고 이 판을 내 스타일로 지켜내고 싶다. 억척스럽고 씩씩하게 버티는 여성 스타일이 아닌 ‘도움을 구할 줄 알고 협력을 할 줄 아는 그냥 내 스타일.’ 말이다. 아직 현실은 ‘남자를 더 환영’인 관습이 남아 있지만, 차분히 이 판을 지켜내다 보면 이 일을 하는 것에 성별이 더 이상 고려사항이 아니게 되지 않을까. 그렇다면 나처럼 해보기도 전에 쫄보가 되는 사람도 줄어들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