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발디의 사계 <여름> / 조슈아 벨 Joshua Bell
진지하게 생각해보면,
다른 시대의 음악을 듣는 건 사실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만일 비발디Antonio Vivaldi가 살았던 시대로 갈 수만 있다면, 그 당시의 악기로 연주하는 사계Four Season를 듣고, 그 당시 사람들의 반응과 분위기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건 정말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충격적인 경험이 될 것이다.
바로크 시대를 살던 사람들과 지금의 사람들은 사고방식도 가치관도 미적인 기준도 다르기 때문이다. 인권도 경제도, 나이와 신분도,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는 격차를 가진 시대였다.
그 시대의 음악은 악보로 남아 지금의 우리가 듣고 감동한다.
우리는 지금, 과연 비발디가 그린 감성을 느끼는 걸까? 아니면 전혀 다른 감각으로 그 음악을 듣고는 공감한다고 착각하고 있는 건 아닐까?
여러 시대와 시간, 그리고 공간까지 뛰어넘을 수 있는 음악의 생존능력은 정말 대단하다.
과연 우리는 음악을 통해 무엇을 느끼는 걸까?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과 여러분이 생각하는 게 정말 같은 걸까?
비발디와 우리의 생각도 일치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
인간의 생각이 갖는 다양성과 차이점은 우리가 이해하기엔 힘들 만큼의 크기인 것 같다.
2007년 워싱턴 포스트(The Washington Post)가 실험한 지하철 연주자로 등장했던 조슈아 벨Joshua Bell.
4백만 달러짜리 스트라디바리Antonio Stradivari의 악기로 지하철 역사 통로에서 연주하는 조슈아 벨을 사람들은 그냥 지나쳐 갈 뿐 눈길 한 번 제대로 주지 않는다.
10만 원이 넘는 티켓도 구하기가 어려울 만큼 그의 연주회는 인기가 있었고, 10대 초반부터 천재라는 수식어를 달고 살만큼 능력이 뛰어난 연주자였기에, 이 실험은 모든 사람들을 놀라게 만들었다.
이 실험이 사람들은 음악을, 단지 음악만을 듣지 않는다는 걸 증명한 걸까?
아니면 음악회장에서 듣는 포장된 음악이 가짜라는 걸 증명한 걸까?
우리가 지금 듣는 비발디의 음악 역시 우리의 태도에 따라서, 우리의 선택에 따라서, 그 가치가 달라지는 것이다.
하지만,
비발디가 뭐라고 하든지 상관없이,
나는 비발디를 듣는다.
비발디의 사계 가운데 여름의 빠른 연주가,
쏟아지는 굵은 빗방울처럼 소란스럽게,
귀에서 머리를 지나 가슴까지,
여름날,
생명의 성장만큼이나 빠르고 분주한 감각을 일깨워준다.
이게 비발디를 통해 내가 느끼는 전부다.
비발디의 생각이 어떤 거라도 관계없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