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비 맥퍼린 Bobby McFerrin
한 사람이 음악가로 살아가게 되는 이유와 과정은 참 다양하다.
부모님의 권유로, 친구가 하니까, TV의 영향으로, 억지로 하다 보니까, 반대를 무릅쓰고, 격려와 칭찬 속에서, 가난한 삶을 운명으로 여기며, 돈이 필요해서, 돈을 벌기 싫어서, 명성을 얻기 위해서, 달리 할 일이 없어서……………
하지만 모든 음악가들에게 공통된 점이 있다면 '음악이 나를 관통한 날'이 있었다는 게 아닐까?
어떤 사람은 기억하고 또 어떤 사람은 기억하지 못할 뿐, 음악은 그 사람을 '관통'해서 얼어붙게 만든다.
물론 음악가만 그런 건 아니다.
그렇게 가슴을 뚫고 지나가는 음악을 만나고 나면 대체로 사람들은 음악을 평생 친구로 생각한다. 그리고 거기서 위안을 얻는다. 잔소리하지 않는 유일한 친구라서 그럴지도 모르지만.
반대로 음악을 만나지 못한 사람들은 그만큼, 음악의 무게만큼 덜 행복할지도 모른다. (별걸 다 연구하는 세상에서, 누가 이런 건 연구를 하지 않나 모르겠다)
바비 맥퍼린Bobby McFerrin은 많은 사람들 가슴에 음악을 '관통'시키는 사람이다.
클래식 성악가의 아들로 시작된 그의 음악인생은 재즈로 성장하고, 장르를 따지기 힘든 음악가로 세상에 우뚝 선다. 장르를 따지기 힘들기 때문에, 사실 그와 같은 연주가는 이 세상에서 찾아보기가 힘들다.
'1인 아카펠라'라고 소개하기도 하지만, 아카펠라는 단지 반주 없이 노래한다는 점에서 그와는 다르다고 생각한다.
베이스기타와 드럼, 퍼커션, 코러스, 가끔씩 특별한 세션에선 별별 악기를 다 동원하고, 동시에 보컬까지. 이 모든 걸 동시에 소화한다.
마치 손가락이 4개뿐인 피아니스트 이희아를 연상하게 한다. 어쩌면 그보다 더 어려운 일이기도 하다. 인간의 성대는 아주 짧은 근육이다. 보통 1.5~3cm에 불과한 이 기관이 공기의 흐름에 진동을 하면서 특정한 음정을 만들어 낸다. 한 번에 한 음씩.
그러니까 다양한 파트를 동시에 소리 내려면 한 음정에 머무는 시간이 거의 0.x초대라는 얘기다. 놀라 자빠질 만큼 빠른 속도로 음정들을 오고 간다.
하지만 청중의 귀엔 그 분주함이 들리지 않는다. 원곡의 템포대로 느린 곡은 느리게 빠른 곡은 빠르게 들릴 뿐이다.
그렇게 빠르게 음정을 오고 가다 보면 속도 때문에, 음정과 음정 사이의 차이 때문에, 또 노래를 하면서 긴장되는 근육의 작용으로, 정확한 음정을 내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자신의 음역만을 노래하는 대부분의 가수들조차 정확한 음정을 내는 게 쉽지 않다. (미묘한 음정의 차이를 보정해주는 오토튠Auto Tune같은 기술이 등장한 걸 보면, 정확한 음정으로 노래하는 게 얼마나 쉽지 않은 일인지 알 수 있다)
바비 맥퍼린은 4옥타브나 되는 음역을 쉴 틈 없이 빠르게 움직이며 정확한 음정을 노래한다. 바비 맥퍼린에게 절대음감은 그저 기초에 불과한 기술이다.
그리고 그런 기술을 사용해서 청중과 하나 되는 특별한 연주를 한다. 자신이 반주하고 청중이 노래하고, 자신의 노래에 청중이 코러스가 되기도 한다.
바비 맥퍼린의 무대를 보고 듣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감동적인데, 이런 무대에서 그와 함께 소리를 내어 화음을 이루고 나면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충분히 가슴을 관통당하고 만다.
음악을 당신 가슴에 배달하는 60대 젊은 아저씨. 바비 맥퍼린은 우리 모두를 행복의 길로 인도하는 사람이다.
•눈물 나게 재미있는 로시니G.Rossini의 윌리엄 텔 서곡Overture, Opera Guilliaume Tell은 바비 맥퍼린이 지휘하는 바비 맥퍼린 식 연주다.
•마지막 영상은 바비 맥퍼린이 젊은 시절(1988년) 뮤지컬 오즈의 마법사Wizard of Oz를 혼자서 9분짜리 메들리로 만들어 연주한 영상이다. 이 뮤지컬이 생활 속에 자리 잡은 미국 청중에게는 멜로디가 전부 익숙해 보인다. 우리에겐 생소한 것들이 많아서 공감이 덜하긴 하지만, 역시 웃음과 감동이 있는 영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