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곡 없는 순수의 목소리
'어떻게 베니아미노 질리Beniamino Gigli가 우리말로 노래를 불렀을까?'
남인수의 노래를 처음 들은 반응은 이랬다.
그때는 남인수가 누군지도 몰랐고 질리의 목소리에 대해서도 잘 몰랐다.
지금의 생각은 이렇다.
'어떻게 남인수는 전설적인 성악가처럼 노래할 수 있는 걸까?'
음역으로 보면 남인수는 테너다. 아주 가늘고 섬세한 소리에 부드러우면서 동시에 강한 힘이 느껴지는 오묘한 톤을 만들어 낸다. 녹음이 전부 모노mono로 되어있어서 이 정도로밖에 평가할 수 없다는 현실이 아쉽다.
그의 저음은 전혀 부담이 없다. 마치 성대가 인공적인 기계라도 되는 것처럼 정신없는 도약을 쉽게 표현한다. 그러면서도 음정이 정확할 뿐 아니라 선명하고, 모든 음이 고르게 볼륨을 유지한다.
한마디로 본인 마음대로 연주가 가능한 목소리라는 얘기다. 고음도 아주 작게 부를 수 있으며 저음도 얼마든지 크게 소리 내는 게 가능하다.
이건 그야말로 벨칸토Bel Canto라고 불리는 이태리식 정통 발성법이 지향하는 바다.
메사 디 보체Messa di Voce라는 훈련을 통해 벨칸토 성악가들은 남인수처럼 노래하기를 연습한다. 하나의 음정을 아주 작게-ppp 시작해서 최고로 커졌다가-fff 다시 시작했던 소리만큼의 크기로 끝을 낸다. 이런 훈련을 모든 음역에 걸쳐 반복한다. 아주 자연스럽고 힘들이지 않는 게 중요한 포인트다.
남인수는 일제 강점기인 1918년에 경상남도 진주에서 태어났다. 해방 이후에 성악가에게 지도를 받았다는 설이 있긴 하지만, 당시 상황을 생각해보면 성악을 제대로 공부한다는 건 특별한 몇 사람 이외엔 불가능한 일이었을 거라 짐작할 수 있다.
천재들의 재능을 볼 때 느끼는 거지만, 기술이나 기능은 반드시 배워야만 하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어떤 지점에서 보면 인간의 기술이란 그런 것 같다. 배운다는 게 두뇌와 신체에 반복적으로 입력하는 행위라고 보면, 타고난 재능을 발휘하는 천재들은 아마도 유전자 속에 어느 정도 완성된 기술-일종의 설계도를 가지고 태어나는 것 같다.
스스로 발견하거나 누군가에 의해서 발견되어지지 못하면 그 선물도 무용지물이 되고 말지만, 남인수와 같은 위대한 가수가 만약 이태리에서 태어났다면 1890년생인 질리의 뒤를 잇는 역사적인 성악가가 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물론 우리나라에 태어나서 트로트의 대가가 된 것도 내겐 감사할 일이다.
그의 노래를 들으면 인위적인 왜곡이 전혀 없는 순수한 음악을 듣는 것 같다.
슬픔도 리듬에 실어 노래하는 남미 음악처럼
죽음도 경쾌하게 표현하는 모차르트Mozart처럼
이별도 춤출 수 있는 노래로 표현하는 아바ABBA의 음악처럼
남인수의 노래도 음악이라는 감정만을 노래하는순수한 소리로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