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람 Jan 30. 2016

천재 가수 남인수

왜곡 없는 순수의 목소리

'어떻게 베니아미노 질리Beniamino Gigli가 우리말로 노래를 불렀을까?'


남인수의 노래를 처음 들은 반응은 이랬다.

그때는 남인수가 누군지도 몰랐고 질리의 목소리에 대해서도 잘 몰랐다.


지금의 생각은 이렇다.


'어떻게 남인수는 전설적인 성악가처럼 노래할 수 있는 걸까?'


음역으로 보면 남인수는 테너다. 아주 가늘고 섬세한 소리에 부드러우면서 동시에 강한 힘이 느껴지는 오묘한 톤을 만들어 낸다. 녹음이 전부 모노mono로 되어있어서 이 정도로밖에 평가할 수 없다는 현실이 아쉽다.

남인수 - 황성옛터 (南仁樹, Nam In Soo - The Old Site of Ruined Castle, 1959)

그의 저음은 전혀 부담이 없다. 마치 성대가 인공적인 기계라도 되는 것처럼 정신없는 도약을 쉽게 표현한다. 그러면서도 음정이 정확할 뿐 아니라 선명하고, 모든 음이 고르게 볼륨을 유지한다.


한마디로 본인 마음대로 연주가 가능한 목소리라는 얘기다. 고음도 아주 작게 부를 수 있으며 저음도 얼마든지 크게 소리 내는 게 가능하다.

Beniamino Gigli - La Paloma

이건 그야말로 벨칸토Bel Canto라고 불리는 이태리식 정통 발성법이 지향하는 바다.


메사 디 보체Messa di Voce라는 훈련을 통해 벨칸토 성악가들은 남인수처럼 노래하기를 연습한다. 하나의 음정을 아주 작게-ppp 시작해서 최고로 커졌다가-fff  다시 시작했던 소리만큼의 크기로 끝을 낸다. 이런 훈련을 모든 음역에 걸쳐 반복한다. 아주 자연스럽고 힘들이지 않는 게 중요한 포인트다.

남인수 - 애수의 소야곡 (南仁樹, Nam In Soo - Sorrowful Serenade, 1938)

남인수는 일제 강점기인 1918년에 경상남도 진주에서 태어났다. 해방 이후에 성악가에게 지도를 받았다는 설이 있긴 하지만, 당시 상황을 생각해보면 성악을 제대로 공부한다는 건 특별한 몇 사람 이외엔 불가능한 일이었을 거라 짐작할 수 있다.


천재들의 재능을 볼 때 느끼는 거지만, 기술이나 기능은 반드시 배워야만 하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어떤 지점에서 보면 인간의 기술이란 그런 것 같다. 배운다는 게 두뇌와 신체에 반복적으로 입력하는 행위라고 보면, 타고난 재능을 발휘하는 천재들은 아마도 유전자 속에 어느 정도 완성된 기술-일종의 설계도를 가지고 태어나는 것 같다.


스스로 발견하거나 누군가에 의해서 발견되어지지 못하면 그 선물도 무용지물이 되고 말지만, 남인수와 같은 위대한 가수가 만약 이태리에서 태어났다면 1890년생인 질리의 뒤를 잇는 역사적인 성악가가 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물론 우리나라에 태어나서 트로트의 대가가 된 것도 내겐 감사할 일이다.


그의 노래를 들으면 인위적인 왜곡이 전혀 없는 순수한 음악을 듣는 것 같다.


슬픔도 리듬에 실어 노래하는 남미 음악처럼

죽음도 경쾌하게 표현하는 모차르트Mozart처럼

이별도 춤출 수 있는 노래로 표현하는 아바ABBA의 음악처럼


남인수의 노래도 음악이라는 감정만을 노래하는순수한 소리로 다가온다.

매거진의 이전글 귀 기울이면 들리는 그 불길한 분주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