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ymphony No.5 D major / Vaughan Williams
한국식 정열이 있고 영국식 정열이 있다. 정열을 갖는 것, 정열을 표현하는 것, 그 정열을 정의하는 것 모두 문화마다 조금씩 다르다는 생각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느끼는 정열은 보통 속도가 빠르고 급격한 상승 에너지를 동반하는 것 같다. 영국인들은 그 속도가 느려서 전체적인 상승에 걸리는 시간이 훨씬 길게 느껴진다.
급격한 상승 에너지가 얼마나 빠른 속도로 정점을 향해 가는가?
문제는 속도일까?
어쩌면 인종의 차이에서 오는 건지도 모른다. 뛰어난 탄력을 갖고 있는 흑인들은 우리나라 사람들보다 속도가 더 빨라 보인다. 조금 춥고 겨울이 긴 지역의 영국인들에게는 상대적으로 그 속도가 느려지는 게 당연할지도 모른다. 영국인들이 감정을(여기서는 열정을) 표현하는 방식이 그만큼 여유로워 보이는 것도 그런 이유가 있을지 모르겠다.
물론 이건 과학적인 근거는 전혀 없는 상념일 뿐이다. 국가나 민족을 기준으로 뭔가를 일반화하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기도 하고, 추운 러시아 사람들의 음악은 반대로 더 격한 게 사실이니까.
그렇다고 이런 상념이 누군가에게 해가 되는 것도 아니니까 이왕 시작한 김에 조금 더 나가보자.
영국에서 태어나고 공부한 사람이 베를린에서 독일인에게 배우고, 파리에서 프랑스인에게 배운다면 어떻게 될까?
본 윌리암스Vaughan Williams는 1872년 영국에서 태어나 공부하고 베를린에서 막스 브루흐Max Christian Friedrich Bruch를 사사한 뒤 파리에서 모리스 라벨Maurice Ravel에게 다시 배운다.
영국의 민요를 연구해서 자기 음악의 바탕을 만들어가기로 한 그는 그렇게 독일인과 프랑스인에게 공부하며 긴 숙성의 시간을 갖는다. 35세의 나이에 늦게 데뷔한 그는 1958년, 86세에 죽을 때까지 열정이 식지 않았다.
걸작이라고 불리는 교향곡 제6번 e단조는 그의 나이 76세인 1948년에 발표되었고, 그 이후에도 9번까지 3개의 교향곡을 더 썼다. 9번 교향곡은 그가 사망한 1958년에 초연한다. 이 시기에 발표한 다른 작품도 적지 않다.
열정이라는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본 윌리암스는 죽음의 순간까지 강렬한 에너지를 보여준 음악가라고 할 수 있겠다.
누군가 성공이란 포기하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 본 윌리암스에게 있어서 성공이란 바로 그의 인생 전체를 묘사하는 것이 아닐까?
다분히 영국적이며, 열정이 서서히 강렬하게 끓어오르는, 언제 들어도 세련된 영화음악을 연상케 하는 본 윌리암스의 교향곡 5번 D장조, Symphony No.5 D major.
BBC Proms 2012, 앤드류 맨츠Andrew Manze가 지휘하는 The BBC Scottish Symphony Orchestra의 연주다. 연주시간 40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