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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나현 작가 Jul 31. 2021

우아한 출근을 꿈꾸며

그날은 꼭 오고야 말 거라고 믿으며, 오늘도 아이의 손을 잡습니다.

"연우야, 은수야! 얼른 일어나! 어린이집 가야지!"

"엄마~ 오늘도 어린이집 가는 날이야?"

"응, 연우야. 얼른 준비하자. 우리 늦었거든."

"아~ 왜, 나 레고 블록 만들기 하고 싶단 말이야~"

"지금 그럴 시간이 어디 있어! 얼른 준비하고 나가야 된다니까!"


아침마다 전쟁이 일어났다. 첫째가 멀쩡한 날이면 둘째가 투정을 부렸고 둘째가 예쁘게 준비를 잘하는 날이면 첫째가 이상항 생떼를 썼다. 아이들의 짜증과 울음을 들으며 마음속에 참을 인을 백만 개 즈음 새기고는 출근하는 차에 몸을 구겨 넣었다.


6살인 첫째에게 한글을 가르쳐야 하는 것 아니냐, 수는 몇 까지 셀 수 있느냐며 묻는 주변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이번 여름방학 때 가장 중요하게 잡은 목표는 하루를 시작하고 마무리하는 루틴을 몸에 익히는 것이다. 공부보다 습관이 중요하다는 전문가들의 말 때문이라기보다는, 아침에 사람답게 출근하고 싶은 지극히 현실적인 이유 때문이다.



1단계 : 아이들과 같이 아침, 저녁 루틴 순서 정하기

먼저, 아이들이 아침에 일어나서 하나씩 해야 하는 일을 이야기 나누어 보았다. 글자만 쓰면 알아보기 어렵기 때문에 옆에 아이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그림도 같이 그렸다. 함께 이야기 나누면서 그린 그림 위에 아이들이 마음대로 색칠을 하고 아이들 눈에 잘 보이는 창문에 붙였다.



2단계 : 루틴을 습관으로 만드는 과정에서 엄마가 기억해야 할 것

의식적으로 떠올리고 실천해야 하는 '루틴'이 별 다른 고민 없이 실천하는 '습관'이 되는 과정에서 엄마가 꼭 기억해야 할 것이 하나 있다. 아이들의 성장과 엄마의 성장을 별개로 보지 말 것, 가족의 성장이라는 넓은 틀에서 아이들의 습관을 만들어 나가는 시간을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나도 아침에 일어나면 108배를 하고, 명상을 짧게 하고, 고전을 필사하는 루틴이 있다. 이렇게 나만의 아침 루틴을 다 끝내지 못했는데 아이들이 일어나면 '아니, 시키지도 않았는데 왜 이렇게 일찍 일어나는 거야?' 하며 짜증이 나기도 했다.


하지만, 아이들이 습관을 잡아나가는 동안에는 내가 하고 싶은 일, 해야 할 일이 마무리되지 않았어도 아이의 아침을 함께 맞이하기로 선택했다. 만약 정말 나의 하루 시작 루틴이 중요하다면 아이들이 일어나는 시간 즈음에는 나의 루틴이 마무리될 수 있도록 조금 더 일찍 일어나며 부지런해지는 수밖에 없었다.


엄마의 시간을 '희생'한다는 생각에 억울한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조금 더 멀리 바라보기로 했다. 아이들이 아침을 열고 하루를 마무리하는 습관이 몸에 자리 잡으면 그때부터 '진짜' 엄마의 시간이 생길 거라는 믿음을 가지고 아이들의 '습관' 만들기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3단계 : '루틴'이 자연스럽게 '습관'이 되도록 '환경' 조성하기

인위적인 행동들은 그만큼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 그래서 아침을 열고, 하루를 마무리하는 루틴이 '자연스러울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하고 루틴의 순서를 정했다. 루틴의 순서는 실천해 보면서 '자연스럽다'라고 느껴질 때까지 수정하고 또 수정했다.


아이들은 아침에 일어나면 화장실에 가서 소변을 보고 싶어 했다. 아직은 어려서 화장실에 같이 따라 들어가는데, 볼일을 보고 나오려는 아이의 손을 잡고 세면대로 향했다. 아이는 발 받침대 위에 서고, 나는 그 옆에 서서 세면대에 물을 틀고 꼼지락꼼지락 같이 세수를 했다. 아이가 바를 로션, 오일을 화장실에 바로 두었고 화장실에서 바로 로션, 오일 바르기까지 끝을 냈다.


아이의 손을 잡고 옷장으로 가서 자기 전, 골라두었던 옷을 입고 마음이 바뀌었다면 기꺼이 스스로 고를 수 있도록 한다. 그렇게 옷을 다 입은 아이를 데리고 책상으로 데리고 가서 골라둔 책을 읽어주거나 아이가 고른 책을 한 권 읽어주었다. 여유가 있다면 두 권, 세 권도 읽어주었다. 이때 꼭 엉덩이는 의자에 붙이고 앉도록 했다.


이렇게 루틴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아이의 손을 잡고 엄마가 함께 움직이는 것이다.  엄마가 아이 곁에서 루틴을 하나씩 해 내는 것도, 의식적으로 해야 하는 '루틴'이 자연스러운 '습관'이 되는 과정에서 중요한 '환경'요인 중 하나다.


처음에는 아침과 저녁 습관을 함께 계획하고 나면 아이들이 무얼 해야 하는지 알았기 때문에 '알아서' 할 줄 알았다. 큰 오산이었다. 처음부터 '알아서' 하는 아이는 엄마의 상상 속에서만 존재한다. 습관이 몸에 익숙해질 때까지 '알려'줘야 한다. 아이 몸에 습관이 익숙해질 때까지 아이의 손을 꼭 잡고, 곁에서 같이 그 행동을 해야 한다.



4단계 : 저녁 루틴과 아침 루틴 연결 짓기

아침에 가장 중요한 것은 일어나자마자 기분 좋게 아침을 시작하는 것이다. 그러려면 푹 잘 자야 하고 전날 취침시간이 너무 늦지 않도록 조절하고 기분 좋게 잠드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첫째 아들이 유난히 양치하는 것을 싫어했다. 나도 아이의 짜증을 듣기 싫으니 미루고 미루다가 자기 직전에 울며불며 양치를 끝냈다. 그렇게 우는 아이를 데리고 침대로 향했다. 첫째는 짜증을 부리고 부리면서 실컷 울어재낀 다음에야 잠이 들었다. 나도 기분이 별로 좋지 않은 상태로 잠이 들었다.


저녁 시간은 엄마가 화를 내기 딱 좋은 때다. 아이의 에너지도 고갈되고 엄마의 에너지도 고갈되어서 둘 다 에너지가 바닥이니 둘 중에 한 사람이 짜증이 폭발하면 걷잡을 수 없이 커지는 시한폭탄이 되어 버린다.


완전히 에너지가 고갈되기 전에 힘들고 어려운 일 들을 마무리 해야 했다. 그중에 하나가 '양치질'이었다. 원래 저녁을 먹고 나면 바로 설거지를 하거나 부엌 뒷정리를 했는데 이 일을 뒤로 미루었다. 저녁을 먹고 기분이 좋은 상태에서 바로 양치질을 하는 것이다.


싫어하는 일이고 짜증을 부릴 수도 있지만, 빠르게 그 고비를 넘기고 나면 남은 저녁 시간은 평화로웠다. 그 시간 동안 식탁을 치우고, 설거지를 했고 아이들은 짧지만 굵게 저녁시간의 자유를 즐겼다.


잠을 자러 가기 30분 ~ 40분 전, 어질러진 거실을 함께 정리하고 한 두 권의 책을 함께 읽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침대로 향했고 자기 전, 하루를 마무리하는 기도를 한 다음 잠이 든다. 최근에 하고 있는 루틴이 하나 더 있는데 바로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해주는 것이다.


연우야, 은수야.
너희는 존재 자체가
엄마 아빠에게 큰 선물이야.
우리 잘 때는 잠만 자자.
푹~ 자고 내일 아침 또 만나자.
사랑해.

 

처음에는 울다 잠이 든 아이 머리맡에서 하기 시작한 말이다. 이것도 내가 같이 잠들지 않았을 때나 해 줄 수 있는 말이었는데, 이렇게 이야기하고 나면 신기하게 잠귀가 예민한 아이가 깨지 않고 푹 자는 것이다. 몇 번 이런 경험을 한 다음에는 아이가 잠들기 직전이나 침대에 누워서 몸도 마음도 차분히 가라앉았을 때 이 말을 꼭 해 준다. 평화롭게 잠이 들면서 아이도 나도 수면의 질이 좋아졌다.


 

'습관'에 집중한 이유, 불필요한 감정 소모를 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여름방학 때 본격적으로 습관 프로젝트를 시작한 이유는, 아이에게 '빨리'를 강요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마음에 여유가 있기 때문에 조금 늦어도 조금 서툴러도 아이에게 스스로 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줄 수 있다.


이렇게 습관이 몸에 배이면 불필요한 감정 소모를 하지 않아도 된다. "이거 하면 저거 해야지~ 저거 했으면 그다음에는 이거 해야지!" 하면서 하나하나 알려주지 않아도 몸에 '시스템'화 되는 것이다. 이렇게 아이와 엄마의 삶 속에 규칙이 생기면 매번 아이를 설득하고 달래느라 옥신각신했던 시간을 줄일 수 있다. 그러면 그 시간과 에너지를 오롯이 나를 위해 쓸 수 있게 된다. '진짜' 엄마를 위한 시간이 시작되는 것이다.


늦잠을 잔 어느 날 아침, 아이가 뒤척이는 소리에 눈을 떠서 정신을 차려보니 물소리가 들린다. '어???? 어!!!!!' 손을 잡고 함께 하지 않았는데 아이가 스스로 세수를 하는 순간이었다. "자기야!! 자기야!!! 일어나 봐!! 연우가 혼자 화장실 가서 세수했어!!!!! 아, 세수하는 모습이 이토록 사랑스러울 줄이야!" 그동안 애쓴 시간이 의미 있었다고 잘했다고 선물이라도 받은 듯하다.


다음 날, 그렇게 예뻤던 아이는 어디 가고 세수하기 귀찮다며 짜증을 부리는 아이가 내 앞에 있다. 그래도 나에게는 믿음이 생겼다. 어느 날, 다시 엄마의 손을 잡지 않고도 화장실에 가서 세수를 할 거라고 스스로 옷을 입고 책상에 앉아 엄마를 기다리며 책을 읽고 있을 거라고.


우아한 출근을 꿈꾸며,
다시 아이의 손을 다정하게 잡아본다.



매주 토요일,

브런치 먹기 좋은 시간

서툴지만 조금씩 성장하는 엄마의 일상을 기록합니다.

'선생님도 엄마는 처음입니다'

다음 주 토요일에 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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