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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나현 작가 Aug 07. 2021

정성스럽게 키운 옥수수를 팔아보았다

옥수수 사세요~

"나현아!"

"응! 엄마!"

"엄마 지금 옥수수 따러 왔는데, 혹시 주변에 옥수수 살 사람 있어?"

"응? 무슨 옥수수?"

"이거 찰 옥수수인데, 지난번에 엄마 지인들한테는 많이 팔아서 아직 있다고 하길래. 혹시 너 주변에 옥수수 살 사람 있나 하고"

"응! 그럼 가격은? 지난번에는 몇 개에 얼마에 팔았어요?"

"지난번에, 30자루에 18000원 정도 팔았지."

"아, 여기는 30개를 한 번에 살 사람은 없을 것 같아. 그럼 껍질 까서 올 수 있어요? 껍질 까서 10개씩 6천 원에 올려볼게요. 사진 찍어서 보내줘요. 몇 자루 정도 팔 수 있어요?"

"한..., 100자루? 정도 될 것 같아. 사진 찍어서 보낼게!"


엄마의 사진을 받아서 당근 마켓에 글을 하나 올렸다. 마트에서 산 옥수수와 다르게 바로 딴 옥수수는 정말 맛있다는 글과 함께, 직접 손질까지 다 했으니 '찌기만'하면 된다며 살뜰하게 우리 집 옥수수의 강점을 어필했다. 엄마가 오겠다는 시간이 다 되어 가는데 아직, 옥수수를 사겠다는 사람이 없었다. 마음을 종종거리며 글을 계속 확인하는데 엄마한테 전화가 왔다.


"어떻게? 사겠다는 사람이 좀 있어?"

"응! 있어!"

"몇 명?"

"한, 두 세명 정도 있어. 그런데 엄마, 집으로 들어가기 전에 나도 데리고 가."

"그래? 알았어."


사실, 거짓말이었다. 사겠다는 사람은 없었지만 엄마가 애써 키운 농작물이니 어떻게든 팔아보겠다는 생각이었다. 집 앞 공원에 옥수수를 넓게 두고 장사의 신이 되어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옥수수를 팔아보기로 했다.


옥수수 사세요~ 옥수수 사세요~ 같이 따라온 아이들도 신나게 옥수수를 팔아보았다. 지나가는 사람을 잡고 '이거 오늘 따온 옥수수인데 바로 쪄서 먹으면 진짜 맛있어요!'라는 멘트를 끊임없이 날리며 어떻게든 80개의 옥수수를 모두 팔겠다고 다짐했다. 사러 오겠다는 사람이 없어도 지나가는 사람에게 팔면 되겠다는 생각이었다. 더운 여름, 아이들이 야무지게 '옥수수 사세요~'를 외쳤다. 목청껏 옥수수를 사라고 목소리를 높이는 아이들 옆을 지나치지 못하고 한 분이 옥수수를 30자루 사 가셨다. 첫 손님이었다. '아싸! 이제 70자루만 팔면 된다!' 쾌재를 부르던 순간도 잠시 엄마가 이상하다는 듯이 말했다.


심심한 아이들은 돌을 쌓고 놀기 시작했다

"나현아, 다섯 시 반 이면 오겠다는 사람들이 왜 이렇게 안 와?"

"응?"

"아니, 벌써 6시가 다 되어가는데 왜 안 오나 해서."

"사실은...., "

"사러 오겠다는 사람 없지?"

"아니, 그래도 여기서 이렇게 팔아보면 되지!"

"아고, 됐어 됐어. 이렇게 까지 해서 안 팔아도 돼. 우리 가족 먹으면 되니까 이제 가지고 들어가자. 덥다."

"왜, 내가 좀 더 팔아볼게!"

"아오, 됐다니까는!"


사러 올 사람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 엄마는 부리나케 짐을 정리하셨다. 내가 어떻게든 팔아보겠다고 말해도 얼마나 고집이 센지 (아무래도 내 고집은 엄마를 닮은 게 틀림없다.) 손에 꽉 힘을 쥐고는 그 무거운 옥수수들을 가뿐히 들고 집으로 들어가 버리셨다. 그러고는 주변 지인들에게 옥수수를 나눠줄 테니 퇴근길에 들르라며 전화를 돌리기 시작하셨다.  


"엄마~ 혹시 사겠다는 사람 있을지도 모르는데 막 주겠다고 하면 어떻게 해?"

"아휴, 됐어. 살 사람 있으면 진작에 사 갔지."



그 말을 주고받는데 갑자기 전화가 오기 시작했다.

"여보세요?"

"옥수수 판다는 글 보고 전화했는데요."

"아! 네네!"

"혹시 배달도 해 주시나요?"

"배달이요? 어디신데요?"

"아, 여기가~"



그 전화를 시작으로 갑자기 옥수수를 사겠다는 전화가 물밀듯이 걸려왔다. 친정집에서 우리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배달해드리기로 한 옥수수까지 합쳐 순식간에 남은 70자루가 동이 났다.


"아휴, 이거 나눠주기로 했는데 막 그렇게 팔겠다고 하면 또 어떻게 해?"

"지금 우리 먹으려고 찌는 거 나눠주면 되지! 우리 냉동실에 많이 있으니까!"

"그래, 알았어. 참 희한하네. 그렇게 사라고 할 때는 아무도 안 사더니."

"그러니까, 내가 다 팔 수 있다고 했죠?"

"그런데, 배달하는 데는 어디야?"

"아, 여기."

"여기? 여기 완전 먼데!"

"나랑 애들 데려다주는 길에 잠깐 들러서 가면 되는 거 아니야?"

"완전 뱅 돌아서 가야 돼. 한참 가야 되는데~"

"그래도~ 30자루 산다고 하셨으니까 들렀다 가자~"

"아휴, 거기 들렀다가 가는 택시비도 안 나오겠다."


그렇게 시커먼 봉지를 가득 채워 들고 이리저리 바쁘게 뛰 다니며 옥수수를 팔았다. 하나에 600원인 옥수수를 다 팔고 번 돈은 6만 원.


옥수수 하나를 키우기 위해서 모종판에 알이 좋은 옥수수를 골라 심고, 싹을 틔우고 모종을 옮겨심기 전에 밭을 일구고, 옮겨 심고, 중간중간 잘 자라고 있나 봐주고, 순을 고르고, 옥수수가 너무 익지 않은 적절한 때에 따고, 껍질을 까고, 손질을 해서 그걸 배달하기까지 수많은 품이 들었는데 그 옥수수 가격이 하나에 600원이었다.


아, 맥주 안주로 사는 아주 작은 과자도 천 원인데 그것도 못 사는 가격이었다.


문득, 옥수수 하나에 600원이라는 가격은 누가 정한 것이며 왜 그렇게 정해질 수밖에 없었는지 많은 생각이 들었다. 잠자리에 누워 남편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데 옥수수를 배달 갔던 내 이야기를 듣고는 화들짝 놀라며 '거기 배달 다녀오는 택시비도 안 나오겠다!'라는, 아버지랑 똑같은 말을 했다. (친정아버지께서 택시 운전을 하셔서 '택시 운전비'랑 자꾸만 비교하게 되었나 봅니다.)  


택시를 15분에서 20분 정도 타면 약 만원의 택시비를 낸다. 옥수수를 키우는 데 수많은 날이 걸리고 더 많은 품이 드는데, 옥수수 하나는 600원이다.


뭔가,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에게 억울한 듯 이야기하며 이런 식으로 우리 농업이 잘 버틸 수 있을 것인지, 먹는 것이 이렇게 중요한데 왜 이렇게 가격이 낮은지 열변을 토했다.


"그래서, 그럼 농민들을 위해 농작물 가격이 막 오르면 어떻게 될까? 우리 장바구니에 담을 수 있는 게 과연 몇 개나 될까?"

"....., "


그렇게 물어보니 또 어려워졌다. 나름 탄소발자국을 신경쓰고, 몸에 좋은 음식을 먹겠다며 한살림에서 장을 볼 때도 솔직히, '비싸다'라고 생각했다. 가격이 부담스러워서 덥석덥석 집어 들지 못하고 이걸 살지 말지 한 참을 생각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래도, 그래도 이건 좀 불공평한 거 아닐까?"

"농사를 짓는 사람들은 땅이 있는 사람들이야. 어쩌면 우리보다 더 부자일 수도 있어.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될지도 몰라."

"그럴까?"


뭔지 모르겠지만 마음이 조금 불편해졌다. 엄마의 옥수수를 판 이후, 마트에서 물건을 팔려고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들이 전과 다르게 보였다. 꼭 그 물건을 사지 않더라도 그냥 오지랖 넓게 '힘내세요!' 한 마디를 던지고 싶었다. 마음은 굴뚝이었는데 쑥스러워서 진짜로 입 밖으로 내뱉지는 못 했다. 팔아본 사람이 되어보고 나서야 팔려고 애쓰는 사람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마트 진열대에 오른 농산물들에 들어간 농부들의 품값이 정말 저 값이 맞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내 밥상에 올라온 수많은 종류의 음식과 재료가 얼마나 많은 이의 손과 땀방울을 거쳐온 것인지 한번 더 생각하게 되었다.


불편한 마음 한켠에 비집고 들어온 댓글이 하나 있었다. 옥수수가 맛있다고, 잘 먹겠다는 댓글 하나에 힘들고 속상했던 마음이 눈 녹듯이 사라졌다.


아! 내가, 지금 당장 실천할 수 있는 것 하나는 '감사하는 마음'이었다.

이 밥상이 내 앞에 오기까지 땀 흘린 수많은 사람들에 대한 감사하는 마음.

밥을 먹기 전에 꼭 한 마디씩 하기로 다짐한다.



이 음식이 내 앞에 오기까지
 애쓰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매주 토요일,

브런치 먹기 좋은 시간

서툴지만 조금씩 성장하는 엄마의 일상을 기록합니다.

'선생님도 엄마는 처음입니다'

다음 주 토요일에 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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