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의 김치찌개
남편은 전기오토바이를 사고난 다음 가슴이 뻥 뚫리는 것 같다고 했지만, 나의 답답함은 다른 곳에 있었다. 숙소에서 지내다가 집을 구하고 난 다음에는 여행의 영역이 아닌 삶의 영역이 시작되었다.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뭐니 뭐니 해도 ‘무엇을 먹느냐?’였다. 매번 집 근처 식당에서 밥을 사 먹을수는 없는 일, 이제 정말 살림을 꾸려 나가기 시작해야 할 때였다.
“엄마! 오늘은 김치찌개 먹고 싶어요! 김치찌개 끓여주세요~ 네?”
“김치찌개? 음....., 알겠어!”
호치민에 온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아이들은 벌써부터 한국 음식을 찾기 시작했다. 찌개 재료를 사야해서 우선 익숙한 한글이 보이는 마트에 들어갔다. 그곳에는 여기가 호치민인지 우리나라인지 모를만큼 우리나라 음식들과 식재료가 그대로 모여있었다. 생각보다 비싼듯하여 물건을 집었다 내려놓았다 하며 신중하게 장바구니를 채우고 난 다음 계산대로 향했다. 삑삑 거리며 가격이 찍히는데 눈덩이 불어나듯 결제금액의 숫자가 커져나갔다.
“200만동입니다.”
‘뭐라고? 이거 조금 샀는데 200만동(우리나라 돈으로 10만원 정도)이나 내야 한다고?’ 내 장바구니에 담겨 있는 것은, 아이들이 먹고싶다는 시리얼과 초코파이, 우유와 밥은 해야 할 것 같아서 쌀 5kg, 김치, 햄, 참기름, 고기, 참치액을 대신할 피시소스 정도였다. 평소 한국에서 보던 비용의 거의 2배 가까운 금액이었다. 우선 당장 밥은 먹어야 하기에 계산하고 나오면서 ‘바가지 쓴 건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베트남 물가가 싸다더니! 이거 조금 샀는데 이 정도면 앞으로 어떻게 먹고 살아야 되는거야? 그냥 손가락 빨아야 하는건가?’ 지출한 금액에 비해 가벼운 장바구니에는 걱정이 무겁게 담겼다.
남편이 돌아오기 전에 부지런히 저녁 준비를 하려고 피시소스에 재워두었던 고기를 냄비에 볶았다. 그런데 그 순간, ‘어? 이게 무슨 냄새지? 이거 지난번 식당 갔을때 남편이 싫다고 했던 냄새인데?’ 당혹스러운 향기가 올라왔다. 아이들도 냄새를 맡았는지 “엄마! 이게 무슨 냄새야?”하면서 코를 부여잡았다. ‘아, 제발! 냄새가 빨리 빠져야 하는데!’ 빨리 환기부터 해야할 것 같아 온 집의 창문을 열고 선풍기를 틀었다. “삐삐삐삐삐” 불안한 그때, 남편이 도어락 비밀번호를 누르는 소리가 들렸다. ‘으악! 어떻게해!’ 당황한 내 얼굴은 일그러졌고, 후각 공격을 당한 남편의 표정도 일그러졌다.
“허업, 이게 무슨 냄새야?”
“아, 미안. 인공지능이 참치액 대신에 피시소스를 쓰면 된다고 해서 그걸로 김치찌개를 끓이려고 했는데 이렇게 냄새가 좀 많이 나네?!”
“......,” 남편은 조용히 방으로 들어가더니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나와서는, “나, 배드민턴 치고 올게.”라고 말하며 집에 온 지 5분도 되지 않아 다시 집 밖으로 나갔다. 배드민턴채를 들고 다시 나가는 남편의 뒷모습을 보며 호들갑스럽게 켰던 주방후드도 끄고, 선풍기도 껐다. 입을 꾹 다물고, 그저 고기를 마저 볶았다. 피시소스 냄새는 온 집안을 휘감아놓고는, 집을 오가는 바람에 실려 언제 그랬냐는듯이 사라졌다. ‘나도 처음이라 그런건데.....,’ 볶아진 고기 위에 김치를 넣고 볶다가 눈물 방울로 김치찌개 간을 했다.
“얘들아! 김치찌개 다 됐어. 밥 먹자!”
아이들이라도 먹으면 된다는 생각에 부지런히 호치민에서의 첫 집밥을 차렸다.
“와! 김치찌개다!”
신나하며 자리에 앉은 아이들도 한 두 숟가락 뜨더니 한국에서 엄마가 해주던 그 맛이 아니라며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아, 맞다! 아까 시리얼 산거 있지? 엄마, 나 그냥 시리얼 말아먹어도 돼?”
“아, 그래? 많이 맛 없어?”
고기 덩어리가 크지도 않은데 자꾸만 목에 걸렸다.
“아니, 그냥. 생각했던 그 맛이 아니라서. 엄마, 화 났어?”
“아니야, 그냥 엄마가 잘 해보고 싶었는데, 생각보다 쉽지 않아서. 앞으로 어떻게 하면 좋을까 고민하느라 그런거야.”
“김치찌개가 막 맛없지는 않은데...., 그냥 나 조금만 더 먹을게!”
“아니야, 괜찮아. 그냥 시리얼 말아먹어도 돼.”
“진짜?”
“응.”
아이들은 아무말 없이, 무표정으로 김치찌개를 먹는 엄마의 눈치를 살피며 냉장고에서 우유를 꺼냈다. 쿨한 척 대답했지만, 김치찌개가 꼭 내 처지 같아 코끝이 찡해졌다. 정성껏 끓여냈으나 아무도 반기지 않는, 호치민의 덥고 습한 공기 속에 어울리지 못하고 겉도는 불청객이 된 것 같았다. 짤그랑 소리를 내며 떨어지는 초코맛 쌀알 시리얼을 우유에 말아 한끼 식사를 완성하기까지 딱 10분이 걸렸다. 김치찌개를 끓이려면 어떤 재료가 필요한지 검색하고, 어떻게 요리하면 될지 찾아본 다음 재료를 손질해 찌개를 완성하기까지 하루종일 걸렸는데, 결국 나 말고는 아무도 먹지 않는 김치찌개가 되었다. 아이들이 남긴 찌개와 밥을 내 쪽으로 끌어당겨 꾸역꾸역 입 안에 넣었다.
아이들 식판에 있는 김치찌개까지 다 먹어가는데도 남편은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양치를 하고 다같이 침대에 누웠는데, 한가득 밀어넣은 찌개와 밥이 속에서 부대꼈다. 금방 잠든 아이들과 달리 쉽게 잠들지 못했다. 그렇게 늦게 잠들었는데도 다음날 아침이 되어서야 다시 남편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식탁 위에는 초코파이 부스러기가 흩어져 있고, 설거지통에는 우유에 시리얼을 말아먹은 그릇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부스스 일어난 남편을 보자마자 톡, 쏘아 붙이며 말했다.
“식탁 치우고 난 다음에 뭐 먹고나면 깨끗하게 닦고 정리해두면 좋겠어. 단거 있으면 개미가 꼬인단 말이야. 그리고, 어제는 나도 그럴줄 몰라서 좀 당황했어. 처음이니까 실수도 할 수 있고, 잘못할 수도 있어. 그래도 처음에만 좀 냄새가 났지, 끓이고 나니까 나쁘지 않아.”
“나도 새로운 직장에 적응하느라 긴장하고, 하루종일 힘들었어. 집에 와서 조금 쉬고 싶었는데, 그 냄새가 나니까 확 화가 났어. 집에 계속 있으면 짜증낼 것 같아서 나름 생각하고 나간거야.”
“....., 어. 그래.”
더 이상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았다.
“배고픈 사람은 먹어.” 식탁위에 남은 시리얼과 우유를 올려두었다. 남편 몫으로 남겨두었던 김치찌개를 냉장고에서 꺼냈다. 싸늘하게 식어버린 찌개에 찬밥을 말아 우적우적 나 혼자 먹었다. 차마 입 안에서 데워지지 못하고 차게 목구멍으로 넘어가버린 찌개와 밥이 몸 뿐만 아니라 마음을 싸늘하게 식혔다. 푹푹 찌는 호치민에서의 아침에 딱 맞는 조식이었다. 아이들은 어제 저녁에도 시리얼을 먹었는데 오늘 아침에도 시리얼을 먹을 수 있다며 신난듯 보였다. 남편도 아무말 없이 시리얼을 말아 먹었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었다. 그저 베트남의 피시소스가 우리의 익숙한 참치액을 대신할 수 없었던 것처럼, 우리의 삶도 이 덥고 낯선 도시에 스며들기 위해서는 절대적인 '시간'이 필요했을 뿐이다. 억지로 한국의 맛을 흉내 내다 체하기보다는, 조금 서툴고 배가 고프더라도 천천히 이 도시의 맛을 알아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우유에 퉁퉁 불어가는 초코 시리얼을 보며, 나의 뾰족했던 서운함도 그쯤에서 슬며시 녹여 내리기로 했다.
감정은 녹여내도, 200만 동(무려 10만 원!)을 들여 장을 본 식재료와 내 노동력이 들어간 이 ‘눈물의 김치찌개’만큼은 도저히 그냥 보내줄 수가 없었다. 남편과 아이들이 바삭한 시리얼로 아침을 해결하는 동안, 나는 냄비 바닥에 남은 마지막 김치 조각까지 싹싹 긁어 입에 넣었다. 입안에서는 여전히 낯선 피시소스의 향이 진동했지만, 홧김에 버리기엔 이 찌개의 단가가 너무 높았다. 꾸역꾸역 찌개를 삼키며 나는 속으로 조용히, 그러나 단단하게 칼을 갈았다. ‘그래, 오늘의 김치찌개는 실패야. 하지만 내일의 식탁까지 내줄 수는 없지.’ 비록 피시소스의 역습에 무참히 패배했지만, 이대로 ‘시리얼 인생’에 안주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이 낯선 식재료들이 내 손 안에서 가장 맛있는 요리가 될 때까지, 나의 주방 실험실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김치찌개를 담았던 냄비와, 시리얼을 말아먹은 그릇을 닦으며 다짐했다. 조만간 남편과 아이들이 한 입 먹고는 눈이 번쩍 뜨여 “엄마, 이거 뭐야? 왜 이렇게 맛있어!”라고 외치며 밥그릇을 내밀게 만들고 말겠다고 말이다.
그래.....
네가 무슨 잘못이겠니
너를 제대로 못쓴 내 탓이지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