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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크대에서 세수를 했다.

설거지를 하다 문득 엄마 생각이 났다.

by 김나현 작가

"밥 다 먹은 거야?"

"응! 이제 다 먹었어. 그만 먹을래 배불러."

"아직 반이나 남았잖아. 그럼 농부 아저씨들이 속상하시지!"

"배불러 안 먹을 거야."

"에이그, 진짜!"


결국 남은 밥을 우격우격 내 입에 집어넣는다. '애들이 남긴 밥 먹지 마. 그러다 살찌는 거야. 엄마는 너네 밥 남긴 거 절대 안 먹었어.' 엄마 말이 문득 떠오른다. 가득 넣은 밥에 목이 메어 물 한잔을 벌컥벌컥 들이켜고 싹싹 비운 그릇들을 모두 모아 싱크대 앞으로 가져간다.


'남긴걸 안 먹은 게 아니라, 우리가 남기는 꼴을 가만 두고 보지 않으셨을 거야.'


어렸을 때 엄마는 정말 무서운 사람이었다. 절대 거역할 수 없는 절대적인 존재였고 '엄마, 오늘 친구들이랑 좀 놀고 늦게 들어가도 돼?'라고 묻는 말에 엄마는 항상 '알아서 해'라고 대답하셨다. '알아서 하라고 했으니까 놀다 들어가야겠다.' 싶어서 늦게 들어가면 집안 분위기가 싸했다. 알아서 하라는 건 진짜 '알아서'하라는 것이 아니라 '알아서 일찍 들어와'라는 뜻이었다.


엄마가 되면서 나는 조금 더 허용적인 엄마가 되고 싶었다. 우리 엄마처럼 너무 규칙에 얽매여서 융통성 없는 엄마가 되기는 싫었다. 아이들의 마음을 조금 더 받아주고 자유롭게 생각하고 원하는 대로 행동할 수 있게 해주고 싶었다.





규칙과 자유


아이를 낳고 키우며 그 경계가 애매했다. 그릇에 담은 밥은 다 먹는 게 규칙이라면 배불러도 끝까지 먹어야 맞는 건지 아이의 배부르면 그만 먹을 자유를 인정해 주는 것이 맞는 것인지. 밥을 먹어야 간식을 먹을 수 있는 규칙을 잘 지켜야 하는 건지, 그냥 오늘은 과자를 먼저 먹고 밥을 먹는 자유를 누리면 안 되는 것인지.


처음에는 아이의 자유를 허락해주고 싶은 마음에 아이가 원하는 대로 다 들어주었다. 그게 아이의 자율성을 키워주고 애착육아를 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울고 있는 아이를 보면 내가 한없이 나쁜 엄마라는 생각이 들면서 빨리 그 울음을 그치게 하고 싶었다.


"과자! 과자 줘! 과자 먹고 싶어요!"

"조금 있으면 저녁 먹어야 하니까, 과자는 내일 먹자. 아님 저녁 조금 빨리 먹고 과자 먹을까?"

"싫어! 싫어 지금 과자 먹을 거야!"

"과자 먹으면 밥을 제대로 못 먹잖아."

"과자 먹고 밥도 먹을 거예요!"

"그럼, 과자 먹고 이따 밥도 다 먹어야 돼!"

"알았어요!"


식사시간 즈음 간식을 먹겠다고 성화인 아이의 말에 결국 지고 말았다. 과자를 꺼냈고 아이는 승리감에 휩싸여 맛있게 과자를 먹었다. 이렇게 과자를 먹었으니 밥을 제대로 먹을 리가 없다. '지금 따라잡기가 중요한 시기예요. 밥은 밥그릇에 2/3 정도 먹고 단백질은...., ' 영유아 검진 때 의사 선생님의 조언이 떠오른다.


"이거 봐. 밥 남겼잖아. 아까 과자 다 먹고 밥 먹는다고 하더니!"

"배불러 그만 먹을래."

"이렇게 많이 남기면 어떻게 해! 아깝게! 다음에는 밥 먹기 전에 과자 달라고 해도 절대 안 줄 거야!"


'쏴'


우 격 우 격 입에 넣은 밥을 씹으며 세면대 물을 튼다. 그릇을 하나씩 닦으며 문득 엄마가 했던 말이 떠오른다.


'애들이 남긴 거 먹지 마.'


설거지를 하면서 엄마가 떠올랐다.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시골 깡촌에서 삼 남매를 키우고 악착같이 부업을 하며 돈을 버셨던 엄마. 하나에 13원짜리인 TV 부속품을 만드는 그 부업을 살뜰하게 해내며 집안일과 아이들 키우는 것 까지 누구 하나 기댈 곳 없이 스스로 해 내셨던 엄마. 그런 환경에서 삼 남매를 키웠던 엄마는 자연스럽게 억척스러워졌고 엄해졌고 규칙을 중요하게 여기게 되었으리라. 그렇지 않으면 당신이 그 삶을 버텨낼 수 없었을 거다.




'엄마는 더 많이 힘들었겠다. 아이 둘에도 이렇게 갈팡질팡 마음이 힘든데.'

'툭'


엄마 생각에 마음이 울컥. 눈 앞이 흐려진다. 세면대 물을 조금 더 세개 튼다. 설거지 소리에 흐느끼는 소리가 묻히도록 일부러 그릇을 더 요란스럽게 닦는다. 라디오에서 나오는 노래까지 슬픈 발라드다. 눈물이 한두 방울로 끝날 기미가 안 보인다. 주룩주룩 흐르는 눈물이 그릇을 닦는 건지 세면대에서 나오는 물이 그릇을 닦는 건지 알 수가 없다.


'어푸어푸'


설거지를 하다 말고 싱크대에서 세수를 했다. 그냥 눈물이 났다는 사실을 닦아내고 싶었다. 힘들지 않고 싶었다. 그릇도 닦아내고 얼굴도 닦아냈다.


"엄마! 나 딸기 먹고 싶어!"

"아까 밥도 절반이나 남겨놓고는! 안돼. 밥 다 안 먹으면 간식 없어."

"싫어! 딸기 먹고 싶단 말이야."

"안돼."

"딸기! 딸기!"

"안돼."


나도 엄마가 되어본다. 밥을 절반이나 남겼으니 배가 덜 찼을 터, 자고 일어나면 아침을 맛있게 먹을 거다. 한 끼 부실하게 먹는다고 클 아이가 못 크는 건 아닐 테니.


자유와 규칙


아이가 원하는 것을 먹을 수 있는 자유는 주어진 끼니를 잘 먹는 규칙을 지키고 나서 누릴 수 있는 것임을, 억척스럽게 우리를 키워내신 엄마의 모습에서 배운다. 자유를 누리기 위해서는 정해진 규칙을 잘 지켰을 때 가능하다는 것을.


"내일 아침 먹고 딸기 먹으면 되지."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딸기를 달라고 우는 아이를 꼭 안아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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