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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 제일 좋을 때 맞나요?

아무리 책을 읽어도 답이 없는 육아, 어디에서 해답을 찾을 수 있을까?

by 김나현 작가


아이고, 예쁘다. 지금이 제일 좋을 때에요.

아주머니께서 중학생 즈음되어 보이는 아이 옆에서 반찬거리를 고르다 말고 아이들을 보며 말씀하셨다. 아이들을 데리고 다니면 ‘몇 살이에요?’부터 시작해서 항상 듣는 말이 있다. 바로 ‘지금이 가장 좋을 때에요.’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속으로 ‘저는 아주머니가 부러워요. 아이들도 많이 컸고 마음껏 하고 싶은 일을 하실 수 있잖아요.’라고 생각했다. 신기하게 만나는 어른들마다 이렇게 어릴 때가 좋은 거라 말씀하시면서 아이들이 크고 보니 이때가 후회된다고 하셨다.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지금을 절대로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있어.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하고 있고 앞으로도 이 날이 그립지는 않을 거야.’라고 생각했다.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해서 정말 최선을 다했다. 나는 대충 밥을 먹을지언정 아이들은 좋은 식재료로 건강한 음식을 해서 먹이고 샤워를 하고 나서도 내 몸에 로션 바르는 것은 건너뛰어도 아이 몸에 로션 바르는 것을 잊지 않았다. 나에게는 대충 하더라도 아이를 위해서는 최선을 다 했다. 그러다 보니 정성스럽게 만든 반찬을 먹지 않으면 화가 났다. 아이가 로션을 바르기 싫어하면 다 너를 위한 건데 왜 안 바르냐며 도망가는 아이의 맨 살을 찰싹 때리고 우는 아이를 붙잡고 로션을 바르곤 했다. 나는 아이들을 위해서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엄마의 마음을 몰라주는 아이들이 문제라고 생각했다.


정성스럽게 아이를 위한 음식을 했지만 아이들은 매번 내가 먹는 음식에 관심을 가졌다. 그때마다 식판에 있는 반찬이 얼마나 더 맛있는 것인지 얘기하며 먹어보라고 했다. 이런 노력에도 아이들은 내가 대충 먹으려고 끓인 라면이나 김에 싼 맨 밥을 더 먹어보고 싶어 했다.


“엄마가 연우랑 은수 먹으라고 맛있는 반찬 해줬잖아. 그런데 왜 이거 안 먹고 맛없는 거 먹으려고 그래?”

“엄마 밥, 맛이 없어?”

“응, 연우랑 은수 밥이 훨씬 맛있는 거야.”

“그런데 엄마 밥이 더 맛있어 보이는데? 나도 국수 좋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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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아들아, 너는 국수를 정말 좋아하지 ㅠㅜㅋㅋ 딸래미는 워낙 다 잘 먹으니까 ㅠㅜㅋㅋ






IMG_6549.jfif 눈여겨보지 않았을 뿐,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일상에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있다.


친구와 만나서 음식을 시키면 고민 고민해서 메뉴를 시켜도 꼭 친구가 시킨 음식이 더 맛있어 보인다. 친구도 같은 마음인지 우리는 음식을 나누어 먹곤 했다. 내가 친구의 메뉴가 더 맛있게 느껴지는 것처럼 연우와 은수도 비슷한 감정을 느끼는 것이었다. 연우와 은수에게 식판에 담긴 음식보다 내가 먹는 라면이 아이들에게는 더 맛있게 보인 것이었다.


이날 저녁, 아이들 반찬을 따로 만들기 위해 사 두었던 식재료를 전부 사용해서 식구가 다 같이 먹을 불고기를 만들었다. 처음에는 살짝 싱겁게 해서 아이들 것을 미리 떠 놓고 나와 남편이 먹을 것은 살짝 간을 더 했다. 같은 반찬을 같은 식탁에서 먹기 시작했다.


“연우야, 이거 봐라. 엄마도 불고기 먹는다! 와 맛있네!”

“엄마, 이거 봐요! 나도 먹어요! 음~ 맛있다!”


이렇게 대화를 나누면 둘째 은수는 “음~” 하는 것을 따라 하며 고사리 같은 손으로 야무지게 불고기와 밥을 먹었다. 연우가 한참 밥을 잘 먹지 않을 때 들었던 조언이 ‘아이와 같이 밥을 먹으라.’는 것이었다. 나는 정말 아이와 밥을 같이 먹었다. 시간은 같았지만 먹는 반찬은 같지 않았다. 여기서 아이와 같이 밥을 먹으라는 말은 같은 반찬을 함께 먹으면 즐겁게 식사를 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함께 먹을 식사를 준비하니 나도 건강한 음식을 먹어서 좋고 아이들도 부모와 ‘함께’ 식사를 한다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다. 애써 만든 음식을 먹지 않는 아이들에게 화를 냈던 식사시간에서 점점 함께 즐거운 음식을 먹는 식사시간으로 바뀌어 갔다.


밥 먹는 시간이 즐거워지니 식사 후 자연스럽게 남매가 기분 좋게 놀게 되었다. 나중에는 아침을 먹으며 점심에는 무엇을 먹고 싶은지 얘기 나누고 아침을 먹고 같이 재료를 사러 나가기도 했다. 점심을 먹고 나서는 저녁에 무얼 먹을까 이야기 나누었고 그날 저녁에는 다음날 아침에 무엇을 먹을지 이야기 나누었다. 이렇게 하면서 전쟁 같던 식사시간이 조금씩 즐거워지기 시작했다.


하루 세 번, 밥을 먹는 그 시간과 식사를 준비하는 시간만 행복해도 그날 하루가 참 행복하다. 아이는 제대로 밥을 먹었기 때문에 에너지가 넘치고 여유가 있다. 그 모습을 보고 엄마인 나도 오늘을 조금 더 행복하게 보낼 수 있다.







물놀이를 하고 싶다는 아이의 말에 욕조에 따듯하게 물을 받았다. 목욕시간이 가장 힘든 이유는 다름 아닌 로션을 발라야 하기 때문이다. 아토피가 있어 피부가 예민한 연우는 로션 바르기를 유난히 싫어했다. 악을 쓰며 울기까지 했는데 그런 아이의 맨 살을 찰싹 때리며 로션 바르게 가만히 있으라고 소리친 적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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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왜 이렇게 로션 바르기를 싫어하는 거야. 로션이 뭐가 아프다는 거야!' 생각하며 나도 그 로션을 발라 보았다. 살짝 화한 느낌이 들면서 많이 건조했던 부분은 따끔 거리기도 했다. ‘아! 이래서 연우가 로션 바를 때 아프다고 했구나! 그동안 로션이 뭐가 아프냐면서 혼냈는데……. 어떻게 하면 안 아프게 발라줄 수 있을까?’


내 몸에 실험을 해 보았다. 물기가 있는 상태에서 발라 보기도 하고 다 닦아내고 발라보기도 했다. 가장 좋았던 방법은 순한 오일을 온몸에 먼저 부드럽게 바르고 그 위에 로션을 바르니 훨씬 촉촉하고 화한 느낌도 덜했다. 몸에 바르는 순서상 로션을 먼저 바르고 오일을 바르는 게 맞지만 연우에게는 반대로 하는 것이 덜 아팠다.


욕조에 물을 받고 신나게 목욕을 한 어느 날, 오늘은 웃으며 로션을 발라 보겠다는 실험정신으로 오일과 로션을 준비했다. 그리고 그 옆에 비장의 무기도 준비해 두었다. 연우가 좋아하는 우유. 우유를 참 좋아하는데 아토피가 있어서 잘 먹이지 않았다. 크게 알레르기가 있거나 소화를 못 시키는 것도 아니어서 먹고 싶다고 할 때 가끔 주었는데 이날 우유를 빨대 컵에 담아 준비해 두었다.


“나 로션 안 바를 거야! 엄마~ 나 로션 따가워서 바르기 싫어 안 바를래.”


이렇게 이야기하는 아이에게 ‘그래 안 바를게’ 하고 거짓 안심을 시키지 않았다. 그 대신 빨대 컵에 담긴 우유를 주었다. 목욕을 했으니 갈증이 났던 연우는 “우유다!” 하면서 한 모금 들이마시더니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솔직하게 연우에게 얘기했다.


“연우야, 엄마가 연우 몸에 로션을 바르는 이유는 연우 피부가 많이 건조해서 로션을 안 바르면 가렵기 때문이야.”

“그런데 로션 바르면 따갑단 말이에요.”

“응 엄마도 알아. 엄마도 발라보니까 연우가 왜 따가운지 알겠더라고. 그런데 엄마가 오일 먼저 바르고 로션 바르니까 별로 안 따갑던데 한번 발라볼까?”


이렇게 말하며 내 손은 이미 오일을 바르고 있었다. 아이는 우유를 마시면서 기분이 좋았고 그 틈에 후다닥 로션 바르기까지 완수할 수 있었다. 이렇게 울지 않고 로션 바르기를 성공했다. 어떻게 하면 힘들고 어려운 상황을 해결할 수 있을까 고민하고 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시도했다.



아이들이 어린 지금이 가장 좋을 때예요.

이 말은 아이가 어리기 때문에 지금 행복하다고 얘기하는 것은 아닐 거다. 그보다 지나간 과거에 자신이 하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되는 일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아이들이 성장하고 내가 자유로워지면 그때 진짜 나의 행복이 찾아온다고 생각했다. 먼 훗날의 그날을 위해 오늘을 그저 무사히 지나가는 하루로 보내기에는 나의 인생도 아이의 인생도 큰 후회가 남을 것 같았다. 오늘을 행복하게 살아야 내일을 행복하게 살 수 있고 그래야 하루하루가 모여 다가올 미래의 내 모습도 행복한 사람일 수 있다. 아이들이 어려서가 아니라 오늘이 행복하기 때문에 지금이 가장 좋을 때다. 오늘을 행복하게 사는 엄마가 되고 나니 지금이 가장 좋을 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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