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까지 먹을 수밖에 없는 이유식 비법

책 속의 '지식'이 아니라 삶 속의 '지혜'를 배우다.

by 김나현 작가

돌이 되기 전까지 '아이가 순해요.'라는 말의 의미는 '잘 먹고, 잘 놀고, 잘 자요.'라는 의미다. 이런 뜻에서 봤을 때 첫째는 예민한 아이였다. '잘 먹지 않았고, 짜증이 많았고, 잘 자지 않았다.' 총량의 법칙이 정말 맞는 건지 둘째 신기하게 '잘 먹고, 잘 놀고, 잘 자는' 순둥이였다. 물론 키우는 게 힘들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첫째에 비하면 너무나 수월해서 둘째 같은 아이는 열명도 키울 것 같다.


둘째가 이유식 시작하는 시기에 목표는 단 하나였다. '이유식 맛있게 만들어서 뱃고래(뱃구레)를 늘리기.' 첫째가 워낙 입이 짧아서 이렇게 해도 저렇게 해도 잘 먹지 않았다. 이 와중에도 이유식 단계를 맞추겠다며 고집스럽게 간을 하지 않았고 내가 먹어봐도 맛없는 이유식을 밥 한 그릇 퍼서는 다른 애들은 잘 먹는 다는데 왜 너는 먹지를 않냐며 속상해했다. 나중에는 타고나기를 뱃고래(뱃구레)가 작게 타고났을 거라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그러다 보니 지금도 어지간하게 배가 고프지 않고서는 먹는 양이 적다. 그러다 보니 영유아 검진 때 의사 선생님께서 지금 이 시기에 잘 따라잡아야 한다고 조언을 해 주셨을 만큼 첫째가 또래에 비해 작다. 첫째를 키우며 먹는 것 때문에 전쟁을 치렀던 터라 둘째는 어떻게 되었든 간에 맛있게 만들어서 많이 먹여야겠다고 생각했다.



KakaoTalk_20200320_062004205.jpg 맨 밥에 시금치 미음을 하면 맛이 없을까 봐 구수한 누룽지를 푹 불리고 끓여서 곱게 갈아 시금치 미음을 만들었다. 한 그릇 뚝딱!


한참 이유식을 시작할 즈음 첫째가 발에 큰 화상을 입었다. 병원에 입원해서 치료를 받는 동안 양이 적어도 어떻게든 먹이려 했던 모유가 자연스럽게 끊어졌다. 첫째와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둘째의 이유식은 할머니의 손에 맡겨졌다.






"엄마! 이유식이 왜 이렇게 생겼어?"

"아, 이거 엄마가 머리를 좀 썼지!"


밥솥 운전 30년이 다 되어가는 엄마는 딸보다 훨씬 지혜롭게 손녀딸의 이유식을 만들어 주셨다. 책에 나온 순서대로 재료대로 정해진 방법으로 이유식을 만들어 먹였던 나와 달리 친정엄마는 둘째가 어떻게 만들면 잘 먹는지 어떻게 만들면 잘 안 먹는지 파악하시고는 기똥찬 방법으로 이유식을 만들고 계셨다.


첫째 때도 느꼈지만, 아이들은 고구마나 밤 또는 단호박 같이 달콤하거나 소고기 미역 이유식 같이 조화로운 맛의 이유식을 잘 먹는다. 책에 나온 재료를 순서대로 배합해서 만든 이유식은 아이에게 재료 본연의 맛을 보여주는데 큰 의미가 있지만 내가 먹어도 맛없는 그 밥을 아이에게 '너는 진정한 재료의 맛을 알아야지' 하고 준다는 것이 지나고 보니 너무 큰 욕심이 아니었나 싶다. 순수한 재료의 맛을 느끼게 해 주고 싶다면 핑거푸드퓌레처럼 만들어서 간식으로 주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친정엄마는 이런 사실을 둘째 이유식을 몇 번 만들고는 바로 알아차리셨다. '아이가 좋아하는 이유식이 있고 잘 먹지 않는 이유식이 있다!' 좋아하지 않는다고 무조건 좋아하는 것만 먹일 수는 없을 터.


처음에는 새로운 재료를 넣어 재료 본연의 맛도 느껴보는 이유식을 도전! 아이가 그 맛이 지루할 즈음 좋아하는 이유식을 이어서 먹인다면 아이도 배부르게 먹을 수 있다는 방법을 찾아내신 것이다.



KakaoTalk_20200320_063241242.jpg 노란색 부분이 아이가 잘 먹는 이유식, 연두색 부분이 새롭게 시작하는 이유식

그렇게 탄생한 할머니표 이유식이 바로 2층 이유식이었다. 이유식은 보통 한 번에 많이 만들어서 얼려두었다가 녹여서 먹이는 경우가 많다. 이때 잔뜩 만들어 두었는데 아이가 잘 안 먹으면 애써 만든 이유식이 아무짝에 쓸모 없어지면서 허무할 때가 많았다. 그래서 잘 먹는 이유식을 아래에 깔고 새롭게 도전하는 이유식을 윗부분에 올려 2층짜리 이유식을 준비하면 윗부분은 아이가 처음 맛보는 것이니 호기심에 몇 숟가락 먹는 것을 이용해서 후다닥 맛보도록 하고 아이가 그 맛에 지루할 즈음 후딱 아래층에 있는 맛있는 이유식으로 아이가 집중해서 먹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친정엄마의 기똥찬 이유식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이유식을 만드는 방법도 신박했다. 이유식을 할 때 채소와 쌀이 익는 시간이 달라 채소는 다 익었는데 쌀이 익지 않아서 계속 불 앞에서 주걱을 들고 들러붙지 않게 저어주느라 한참 불 앞에 서 있었다. 친정엄마는 이것을 한방에 해결하셨다.


바로 밥솥으로 먼저 진밥을 만든다.

채소를 육수에 달달 볶다가 익어갈 즈음 진 밥을 넣는다.

육수를 더 부어 쌀알에 육수와 채소의 맛이 고루 베어 들어가도록 잠깐만 더 주걱으로 저어준다.


이렇게 두 가지나 세 가지의 이유식을 뚝딱 만들어 내고는 먼저 아이가 좋아하는 맛있는 이유식을 아래에 부어주고 좀 식은 다음 그 위에 새롭게 도전하는 이유식을 부어 주었다. 그렇게 완성된 2층 이유식으로 둘째는 남김없이 이유식을 다 먹었고 지금도 밥을 참 잘 먹는다. 친정엄마의 이런 이유식을 만드는 지혜는 30년 넘는 밥솥 운전경험에서 나온 것이 아닐까.


"책 아무리 읽어봐라. 다 소용없어. 그대로 될 거 같지? 안된다니까!"

"그래도 열심히 읽어서 공부를 해야지. 그래야 애를 제대로 키우지 않겠어?"


첫째를 임신하고 열 달 내내 입덧을 하면서도 주야장천 육아서를 읽었다. 아이를 잘 키우고 싶은 욕심에 닥치는 대로 많은 책을 읽었고 아이가 나올 즈음 어깨에 자신감이 '어깨뽕'처럼 붙어 있었다. 친정엄마는 이미 알고 계셨던 거다. 책 속의 이야기대로 아이를 키운다는 건 어렵다는 걸. '책 아무리 읽어봐야 소용없다'는 말은 어쩌면 이런 말이 아닐까.


딸아, 너무 그렇게 애쓰지 마. 괜찮아.
처음이니까 실수도 할 수 있어.
꼭 책에 나온 대로 아이를 키우지 않아도 괜찮아.
엄마도 참 부단하게 책에서 정답을 찾으려 노력했는데,
책 속의 이야기는 정답이 아니더라.
너랑 연우 그리고 은수만의 이야기를 만들어 가렴.


이유식 달인이 되었던 엄마의 모습에서 아이를 키우는 '지식' 이 아니라 삶 속에 녹아있는 '지혜'를 배웠다. 어쩌면 그 누구보다 나를 키웠던 우리 엄마가 책 속의 전문가보다 어떻게 하면 아이를 잘 키울 수 있을지에 대해 더 잘 알고 계시지는 않을까.


"엄마, 있잖아~"


오늘도 엄마의 지혜를 배우기 위해 휴대폰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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