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더 좋은 회사에 다닐 자격이 있다
Q.
4대 시중은행 중 한 곳을 다니고 있는 3년차 직장인입니다. 제 원래 성격은 다이빙이 취미인 만큼 활동적이고 긍정적이었어요. 그런데 회사에 다니면서 눈치를 너무 많이 봐서 그런지, 점차 소극적으로 변하고 있는 것 같아요. 다른 사람에게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잘 말하지 않게 됐고요. 남들이 다 좋다고 하는 회사니까 그럭저럭 다니고는 있는데, 요새 자주 행복하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정말 하고 싶은 일을 찾아서 회사를 그만둘까, 생각해봐도 다들 미친 짓이라고 얘기하고요. 이곳을 그만둔다면 나에게 맞는 회사는 어디인지도 잘 모르겠고요. 무기력하게 회사에 다니는 게 맞는지 답답합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 회사에서는 아무 말 안하고 가만히 있으면 중간 이상은 가거든요”
제가 얼마전에 1:1 커리어 코칭으로 만났던 분이 했던 이야기에요. 그분 역시 남들이 다 좋다고 하는 회사에 다니고 있었는데요. 회사에서 눈치를 너무 많이 봐서 성격이 변했다고 하는 이행원님의 이야기를 들으니 그분 생각이 나네요. 회사에서 아무 말 안 하고 있으면 중간은 간다니, 또 회사에서 눈치를 너무 많이 봐서 내성적으로 변했다니. 우리나라 대기업의 경직된 기업문화가 바뀌려면, 아직 갈 길이 먼 것 같아요.
잠깐 시간을 돌려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을 준비하던 때로 돌아가 볼까요. 취업이 목표였을 때, 가장 이상적이라고 생각되는 선택지는 솔직히 1) 대기업 2) 공기업 3) 고시 4) 공무원 5) 기타였던 것 같아요. 중고등학교 때는 오로지 대학에 가는 게 목표였고, 대학에 오고 나니 취업이 목표가 되었죠. 내가 뭘 좋아하는지, 잘하는지 깊게 생각해볼 여유가 없었고, 그런 시간을 갖는 것이 사치로 느껴지기도 했고요.
장기적인 커리어를 생각하기보다 ‘당장 취업’이 급하던 때, 불확실성을 극복하는 것은 ‘스펙’이라 생각하고, 스펙 쌓기에 더 몰두했죠. 토익 990, 중국어 HSK 5~6급, 각종 자격증에 공모전 섭렵, 드디어 취업. 그런데 막상 회사에 와 보니, 내가 이러려고 그렇게 '빡세게' 취업 준비했나 싶으시죠. 커리어 사춘기는 회사 생활 1~3년 차에 가장 심하게 오는 것 같아요.
특히 이행원님의 경우, 활동적인 사람이었기 때문에 회사가 더 답답하게 느껴질 수도 있어요. 아마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가 모두에게 나쁜 회사는 아닐 겁니다. 좀 더 짜임새 있는 일을 원하고, 체계적이고, 보수와 안정을 추구하는 분들에게는 좋은 회사죠. 그런데 이행원님의 성격에는 새로운 일을 해볼 만한 틈이 없어 보이는 회사가 답답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죠.
그 회사를 평생직장으로 생각하는 로열티 높은 상사와 동료들 사이에서, 회사를 그만두는 게 맞는지 고민되실 것 같아요. 요즘같이 모두가 어렵다는 시기에 내 복을 내가 차버리는 것은 아닌지 걱정도 될 것이고요.
일단 회사를 무작정 그만두기 전에, 본인이 무엇을 해보고 싶은지, 잘할 수 있는지를 냉정하게 한번 생각해보세요. 그리고, 성장, 연봉, 워라밸, 의미, 재미, 인간관계 여섯 가지 키워드 중, 회사 생활에서 본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지도 한번 따져보세요. 연차휴가를 끌어모아, 생각할 시간을 물리적으로 확보해서 제대로 고민해보세요.
저의 경우, 첫 직장을 4년간 다니다 그만두고 대학원을 갔는데요. 그때 제게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성장’이었습니다. ‘이대로 계속 회사에 다니면 나중에 바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대로 아는 것은 없는데 주먹구구로 일하느라, 실력이 쌓인다는 생각이 안 들었던 것 같아요. 이직의 여섯 가지 체크리스트(성장, 연봉, 워라밸, 의미, 재미, 인간관계) 중 무엇이 본인에게 가장 중요한지 생각해보시고, 이것을 채워줄 수 있는 회사가 어디일까 고민해보세요.
회사 안에서 부서를 이동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또 다른 대기업만 보지 말고, 내가 필요한 회사가 어디일지 좀 더 생각의 범위를 확장해 살펴보세요.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면, 은행에서 은행만 이직의 옵션으로 생각하지 말고, 토스, 렌딧, 8퍼센트, 와디즈 같은 스타트업들도 살펴보고, 이행원님의 금융 경험이 강점이 될 수 있는 다른 회사들은 어디일지 생각해 보는 거죠. 예를 들어 패션 회사의 재무팀, 공유오피스의 M&A부서에서 이행원님의 능력이 필요할지도 모르죠. 너무 내가 있던 업계에 사고를 가두지 말고, 내가 가고 싶은 길의 방향성을 한번 고민해보세요.
그리고 이행원님이 어떤 단계의 일에 흥미를 느끼고 잘할 수 있는지도 함께 생각해보세요. 예를 들어 마케터라 하더라도, 이미 성숙한 시장에서 운영을 잘하는 마케터가 있고, 이제 새롭게 런칭하는 일에 필요한 마케팅을 잘하는 마케터가 있어요. 같은 직무라 하더라도 회사가 처한 국면마다 해야 할 일이 다르고 필요한 역량이 다르니까요.
예를 들어 저는, 일 벌이는 것을 좋아하고 실행이 빠른 편이에요. 누군가에게 설명하는 것을 잘하고요. 이에 비해 꼼꼼하게 운용의 묘를 살리는 것은 잘 못 합니다. 그래서 제가 회사 다닐 때 해왔던 일은, 데스크 세팅하는데 가서 그 일을 사내/사외의 많은 이해 관계자들에게 알리고, 일이 돌아가게 하거나, 회사의 상품/서비스를 세일즈하는 일이었어요. 나는 어디에 강점이 있는지, 이직을 고려하게 된 회사와 부서는 어느 국면인지, 나는 거기서 어떤 가치를 창출할 수 있을지 생각해보세요. 이 부분이 분명해야 이직하려는 회사와 잡 인터뷰도 잘할 수 있답니다. 그 준비가 안 되었다는 생각이 들면, 지금 회사에 다니면서 그런 관점을 갖고 일을 한번 바라보시고, 실력을 키우는 공부를 하시면 됩니다.
중요한 것은 이직 고민의 데드라인을 정하는 거에요. 계속 갈팡질팡 하면서 회사에 다니면, 동료들도 이행원님의 갈팡질팡을 느끼게 될 테고, 이건 별로 이행원님에게 좋지 않으니까요.
용기를 가지세요. 지금 회사는 이행원님에게 딱 맞지 않는 옷인 것 같아요. 옷이 안 맞으면 다른 걸로 바꿔 입으면 되지 큰일 나는 것 아니잖아요. 눈치 보고 기죽지 말고, 일단 관심 있는 회사의 현직자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는 것부터 시작하세요. 페이스북이나 링크드인 하시죠. 거기서 관심 있는 분야에 있는 분들에게 메시지나 메일을 보내 만나세요. 생각하는 것들을 조금씩 실행하다 보면, 안개가 걷히는 것이 느껴질 겁니다.
회사에 다니기 전, 원래 이행원님이 어떤 사람이었나요? 적극적이고 활동적인 사람이었을 거에요. 무엇이든 잘할 수 있는 사람이고요.
그때로 다시 돌아가 이행원님의 적극성과 주도성을 다시 한번 발휘해보시길 응원합니다.
[김나이의 커리어 상담소]"3년차 직장인인데, 격렬하게 퇴사하고 싶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