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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회사에서 외롭습니다

얼마 전, 신기한 경험을 했습니다. 저는 평일 저녁이나 주말에는 회사원들의 커리어 고민을 나누고, 낮에는 대학(원)에서 90년대 초중반에 태어난 학생들을 만나며 겸임 교수로도 일하고 있는데요. 곧 종강을 앞둔 시점이라 기말 과제를 안내하며 ‘안녕’을 고하는데, 학생들이 종강하고 싶지 않다는 거예요! 모두가 "한 주만 더 수업했으면 좋겠다"고 하면서요.

전혀 생각하지 못한 반응에 깜짝 놀랐고, 이유가 무엇일까 궁금했습니다. 과제나 시험이 어렵지 않아서 그런 것 아닐까 싶기도 했어요. 그런데, 그런 이유로 수업을 더 듣고 싶어 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결국 제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개인에 대한 관심과 존중’, 그를 바탕으로 한 ‘개별적인 피드백’이었습니다.  

저는 이 수업을 맡으며, 수강하는 친구들이 궁금했습니다. 왜 이 수업에 들어왔을까, 무엇을 얻고 싶은가, 오늘 기분은 어떤가, 각종 자격증에 인턴 경험을 섭렵해도 취업이 어렵고 방향이 보이지 않는 이 시기가 얼마나 안개 속 같을까, 무슨 일을 하며 어떻게 살고 싶은가, 요즘 머릿속을 채우고 있는 소소한 고민이 있다면 무엇일까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주 1회 2시간의 수업 시간 중 10~15분 이내로 이런 질문들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거나 3~4명씩 모여 공유하는 시간을 가졌어요. 수업 시간 중 과제 발표를 하거나 의견을 이야기하면, 서로 어떤 부분이 좋고 보완이 필요한지 구체적인 피드백을 주고받는 시간도 매번 가졌습니다. 같은 학교에 다닌다는 것을 빼면 각기 다른 배경을 가진 친구들이 ‘완벽한 타인’으로 거쳐 가는 수업이 되기보다, 서로 다른 생각을 최대한 많이 함께 공유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컸기 때문이었어요.

우리는 모두 회사에서 외롭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우리가 일하는 회사의 풍경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완벽한 타인’들이 모여 깨어있는 시간의 1/3 이상을 보내는 곳이 회사잖아요. 이 타인들은 일의 기쁨과 슬픔에 생각보다 큰 영향을 미치는 존재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회사 사람’ 때문에 힘들거나 지치고, 반대로 좋은 영향을 받기도 하니까요. ‘좋은 동료가 최고의 복지’라는 말에는 다 이유가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막상, 나의 옆자리 동료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상사는, 후배는 어떤 생각으로 회사에 다니고 있는지, 일에서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요즘 무엇을 고민하는지 잘 알지 못합니다. 분기 혹은 반기, 연간 단위로 KPI를 설정하고 면담을 하지만 회사의 목표를 달성했는지 여부를 확인하며 형식적으로 대화하는 경우가 태반이죠. 무엇을 잘하고, 보완해야 할 부분은 무엇이며 앞으로 어떤 성장이 필요한지에 대해 구체적인 이야기가 오가는 경우는 드물고, 이런 고민을 털어놓을 상대를 찾기란 너무나 어렵습니다.

솔직히 고백하면 저도 회사원이었을 때는 비슷했습니다. ‘회사는 회사’라고 생각했던 적이 많았고 ‘가족 같은 회사’라는 말을 딱 질색하며 ‘회사 사람’에게 마음을 내주는 것에 인색했던 적도 많았습니다. 저 하나 추스르기도 바빠 동료들이 무엇을 고민하는지를 살필 겨를도 없었고, 함께 일하는 상무님의 한숨이 왜 늘어나는지 별 관심도 없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커리어 액셀러레이터로 일하며 1200명이 넘는 회사원을 일대일로 만나다 보니 우리는 모두 회사에서 외롭고, 다 달라 보이지만 들여다보면 완전히 다르지 않은 고민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가족 같은 회사'는 거부하지만,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믿을 수 있는 동료나 선배, 멘토가 필요하고, 2~3년 잠시 거쳐 가는 기분이 드는, 소속감과 친밀감이 없는 회사 생활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요.

함께 이야기하기 - 왜, 어떻게, 무엇을

아래 질문들은, 이직을 고민하며 저를 찾아온 분들이 ‘나의 일을 돌아보는 6가지 질문’ 중 인간관계에 대해 작성한 내용을 발췌한 것인데요,

-문제가 생겼을 때 이에 대해 공유하고 해결책을 함께 찾아볼 수 있는 동료들과 일하고 있는가

-하지 말아야 할 이유보다 우리가 해야 할 이유에 집중하는 동료들과 일하고 있는가

-다양한 분야의 배경을 가진, 그러나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들을 회사에서 만날 수 있는가

-내가 지금 회사에서 하는 일이 다른 사람들에게 얼마나 긍정적이고 선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가

-쓸데없는 사내정치, 가십거리 없이 일에 집중할 수 있는 동료들인가

-신뢰할 수 있는 사람들과 일하고 있는가

‘맞아, 나도 이런 마음이야’라는 생각이 든다면, ‘회사 사람’이 아닌, ‘개인으로서의 그(그녀)’에 관심을 갖는 질문과 피드백을 한번 시작해보시면 어떨까요. 한해 동안 회사에서 살아남고 버티기 위해 얼마나 수고했는지, 어떤 부분을 잘했고 보완이 필요한 부분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내년에는 무슨 일을 하며 어떻게 살고 싶은지, 고민이 있다면 무엇인지, 요즘 어떤지 등등을요. 전혀 이런 이야기를 해보지 않았다면, 갑자기 분위기가 싸해질 수도 있을 것 같긴 합니다. 신뢰와 심리적 안정감을 쌓는 것이 먼저라는 생각도 들고요.

그런데, 그렇다고 자꾸 미루지 마세요. 조금만 용기를 내서 Why, How, What을 함께 이야기하는 ‘피드백’을 서로에게 해보세요. 저의 예전 직장에서는 함께 일했던 각기 다른 부서 분들이 이 사람과 일하는 동안 무엇이 좋았고, 어떤 점이 장점이라 생각되고, 보완해야 하는 부분은 무엇인지를 자유롭게 써서 연말에 동료 리뷰(Peer review)를 이메일로 전달하는 과정이 있었어요. 평가라기보다 함께 일했던 동료의 성장을 생각하며 받았던 이 피드백 레터는 아직도 제 기억에 남아있습니다.

그리고 나의 동료·선배·리더·후배의 일하는 마음은 요즘 어떤지 한번 생각하거나 물어봐 주시면 어떨까요. 나 스스로에게도요. 각자도생의 시대, 개인의 시대라지만 우리는 늘 누군가와 함께 일하고 있고, 함께 성장하고 싶으니까요. 그렇게 더 오래, 길게 일하고 싶은 것이니까요.

2019년 연말, 솔직하고 풍성한 대화가 이어지는 송년 되시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글을 마칩니다.

 https://news.joins.com/article/23658626

+ 2019 마지막 #폴인 칼럼을 쓰며, 올해 뵙게 된 많은 분들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잘 지내고 계시죠? 제가 응원드려야 하는 입장인데, 더 많은 응원을 받고 있어 정말 감사한 마음이 큽니다. 모두 내년에는 더 잘되시길, 우리 서로를 응원하며 한발씩 앞으로 나아가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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