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 남매 장녀가 외로움을 마주하는 방법
복작이는 연휴가 끝나고 집에 돌아오면 공허함이 감돈다.
엄마 아빠, 그리고 다섯 명의 동생이 살고 있는 본가에서 뛰쳐나와 자취를 시작한 지도 어언 2년이 넘었다.
아침저녁마다 화장실 순서 기다리는 것도 싫고, 누워 있으면 맨날 뭐라고 하는 엄마 아빠 잔소리도 싫었다. 임용만 합격하면 바로 독립할 거라고. 독립의 꿈은 임용 시험공부의 큰 원동력이 되었다.
경기도인 본가에서 벗어나고자 서울에서 친 시험이지만, 집에서 두 정거장 거리인 중학교에 배정받았을 때는 기가 찼다. 굳이 나가야 하나? 굳게 다짐했던 내 마음이 흔들릴 정도의 거리. 아냐, 그래도 20년 넘게 장녀로 봉사했으면 됐지. 지금 박차고 나오는 게 건강한 가족 관계를 위해 더 좋을 거라는 생각에 기어이 독립을 단행했다.
초반 몇 개월은 그저 행복했다. 월급 받으면 꼬박꼬박 자취 로망 실현을 위한 아이템을 구매하고, 내 옷, 내 신발, 내가 먹을 것들.. 오로지 나를 위한 것으로만 가득 찬 이 공간이 너무 좋았다. 그것뿐이랴, 이제 통금도 안녕! 언제 들어오고 언제 나가도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는다. 친구들을 불러서 집들이도 여러 번 했다. 휴식의 질도 올라간 듯했다.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신명 나게 기 빨린 채로 퇴근해서 다시 집에 있는 동생들에게 더블로 기 빨리지 않아도 되었다. 나 혼자 오롯이, 조용히 쉴 수 있다는 게 어찌나 감동적이던지…!
그러나 그것도 잠시. 중간중간 가족 행사 때문에(식구만 여덟인 데다가 생일도 다 안 겹쳐서 생일만 여덟 번이다…) 본가에 다녀오면 왠지 모르게 마음이 허해졌다. 분명 나 혼자 있는 거 좋아한다고 생각했는데.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해서 집 나온 건데. 자존심 상했다. 특히 명절 연휴에 오랫동안 가족과 함께 있다가 돌아오면 그 후유증은 더 심했다. 그리고 그냥 인정했다.
‘아, 나 혼자는 못살겠구나.‘
주기적으로 출근을 하지 않는 방학에도 외로움에 몸 서려 쳐질 때가 있다. 아이들 때문이 정신없고 기 빨린다고 투덜대다가도 그렇게 원하던 혼자가 되었는데도 그건 또 싫다고 한다. 친구들을 만나면 괜찮아졌다가도 또다시 밤이 되면 찾아오는 이 허한 기분을 지울 수는 없다. 가족들도, 학생들도, 친구들도 그냥 내가 원할 때만 붙였다 떼었다 할 수 있으면 좋겠는데.
지긋지긋하다고 생각했던 우리 집으로부터의 독립은 역설적으로 내가 얼마나 사람이 필요한 사람인지를 깨닫게 해 주었다. 그래, 인정하기 싫지만 나 외로움 탄다. 나 사람도 되게 좋아한다. 영원히 혼자 살 수는 없는 몸이라는 걸 깨달았지만 어쩌겠는가. 지금 당장은 견뎌내야 하는 걸.
이번주 주말도 동생 생일 때문에 본가에 다녀왔다. 동생들과 깔깔대고 엄마 아빠와 수다 떨다가 집에 돌아오니 어김없이 정적만이 감돈다. 내가 외로워하는 은근 센티한 사람인 걸 받아들인 이후로 그냥 주어진 시간에 최선을 다하기로 했다. 가족들이랑 찐하게 즐거운 시간을 보냈으니까 이 정도 공허함은 견딜만하다. 아, 어쩌면 또 다른 동생 생일 덕분에 11월에도 집에 가야 하니까 괜찮은 것일 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