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 어게인, 다시 보는 그 시절 콘텐츠 시리즈
<하울의 움직이는 성> 포스터만 보아도 인생의 회전목마 OST가 귓가에서 맴돈다. 어린 시절 피아노를 배웠다면 한 번쯤 시도해봤을 법하다. 노래를 들으며 소피를 대신해 하울과 손을 잡고 하늘을 걷는 장면을 상상해보기도 했다. 다시 본 <하울의 움직이는 성>은 여전히 재미있었고, 하울은 여전히 잘생겼었다.
그런데 새롭게 발견했던 점도 있었다. 여태껏 이 영화는 하울의, 하울에 의한, 하울을 위한 작품인 줄 알았다. 그런데 다시 보니 이 영화의 주인공은 '그'가 아니었다. 바로 '소피'였다.
어릴 적 본 소피는 수동적인 존재였다. 부모님에게 그 흔한 반항조차 하지 않는, 시골 마을의 작은 소녀였다. 그러던 어느 날 마법에 걸려 할머니가 되어 버린다. 그대로 마법을 풀기 위해 하울을 찾아가고, 움직이는 성에서 함께 생활하게 된다. 그런데 사실 소피의 마법을 푼 것은 하울이 아니었다. 바로 그녀 자신이었다. 스스로 해답을 찾아나간 여정이었던 것이다.
저주에 걸려 할머니가 되었지만 낙담한 것도 하루, 그다음 날 바로 길을 나선다. 그렇게 하울의 성에 도착한 그녀가 가장 처음 한 일은 청소였다. 청소부라는 역할을 스스로 규정한 것이다. 새로운 공간 속에서 자기가 할 일을 스스로 찾았고, 어느덧 더 이상 성에 없어서는 안 되는 사람이 된다.
거기다 엄청난 긍정 에너지도 가지고 있다. 나이 든 모습에도 이는 튼튼해서 다행이라고 하며 음식을 맛있게 먹는다. 또 하루는 성 밖에 펼쳐진 멋진 들판을 바라보며 덕분에 이런 경험도 해본다며 미소 짓는다. 이는 타인에게도 건강한 영향력을 선물한다. 우연히 마주친 허수아비에게도 행복을 빌어주고, 악마 캘시퍼에겐 대단하다는 칭찬을 해준다. 이런 행동은 타인을 소피의 곁에 머물게 하고 그녀의 편을 만들어 주었다.
결국 소피 덕분에 적막하던 성엔 하울에게 두려움을 주었던 황야의 마녀와 설리만의 개도 집에 들어오게 된다. 오합지졸이 되어버린 자신의 성을 보고 하울은 말한다. ‘우린 골치 아픈 가족들이야!’라고.
우린 골치 아픈 가족들이야!
by. 오합지졸 멤버들이 모인 자신의 성을 본 하울이
이후부턴 유독 ‘가족’이란 단어가 자주 등장한다. 그리고 하울에게도 변화가 일어난다. 두려워서 숨어버리던 때와는 달리 먼저 앞으로 나선다. 소피가 이만 숨자며 가는 길을 막아도 소용없다. 이젠 하울에게도 지켜야 할 존재가 생겼기 때문이다.
그리고 외모를 우선시하던 모습에도 변화가 생긴다. 극 중에서 소피의 모습이 계속 변하지만 하울은 그것에 대해 한 번도 언급하지 않는다. 오히려 완전히 회색으로 변해버린 소피의 머리를 바라보며 반짝반짝 빛난다고 말해준다. 물론 이는 소피 또한 마찬가지였다. 노란 머리의 그도, 검은 머리의 그도, 새의 깃털을 가진 그도 그냥 다 하울이었을 뿐이었다. 어떤 모습이든 서로를 서로로 바라보는 모습이 좋았다.
이젠 지켜야 할 게 생겼어. 너야.
by. 전장에 나가는 자신을 말리는 소피에게 하울이
마음은 원래 무거운 거야.
by. 심장을 되찾은 하울에게 소피가
주변 사람들을 빛나게 만들어주는 소피. 그리고 그녀를 사랑했던 하울과 친구들. 마지막엔 결국 악마 캘시퍼가 이미 하울과의 계약관계가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성에 남는 것을 선택한다. 필요와 계약 관계를 넘어서 진짜 가족이 된 것이다.
오랜만에 다시 본 <하울의 움직이는 성>, 어렸을 땐 그저 잘생기고 멋있는 마법사의 이야기인 줄만 알았는데, 지금 보니 함께의 가치에 대해 말하는 아름다운 동화였다.
혹시 첫사랑 하울을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꼭 다시 꺼내보길 추천한다.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또 다른 주인공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소피, 혹은 또 그 누군가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