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씨 어게인

<다시, 업(UP)> 꿈을 이루지 못했다고 생각한다면

다시 보는 그 시절 콘텐츠 시리즈

by NAIN


커피를 두 잔이나 마셔서 그랬는지 유난히 잠이 오지 않는 밤이었다. 보통 잠이 오지 않는 날에는 유튜브에서 수면유도 음악이나 ASMR을 검색해 틀어놓곤 하는데, 이 날은 잔잔한 분위기의 영화를 보다 스르르 잠에 들고 싶었다.


그래서 선택한 영화가 바로 ‘업’이었다. 2009년 당시 개봉했을 때 영화관에서 재미있게 봤던 기억이 있었다. 하늘을 나는 집과 형형색색의 풍선, 따뜻한 색채와 감성이 마음 한 구석에 자리 잡고 있어 잠이 오지 않는 긴 새벽을 함께 하기 딱이라고 생각했다.


과거의 꿈


그런데 웬걸 시작하고 15분 동안 펑펑 울어버렸다. 주인공 칼과 엘리는 어린 시절 '모험'이라는 공통 관심사와 꿈으로 처음 인연을 시작했다. 둘의 인연은 연인으로 이어져 결혼을 하고 집 안을 좋아하는 것들로 채워간다. 파라다이스 폭포를 함께 가보자는 꿈도 늘 마음속에 품고 산다.


하지만, 누구나 그렇듯 마주한 현실에 충실하다 보니 어느새 둘은 노년에 접어든 서로를 바라보게 되었다. 안타깝게 엘리는 먼저 세상을 뜨게 되는데, 이 인생의 모든 축복과 고난을 15분의 함축적인 인트로에 모두 담아냈다.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픽사 영화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도입부라고 말하기도 한다.


어렸을 땐 눈시울을 살짝 붉힌 정도였던 것 같은데, 11년이 지난 지금 이 장면을 다시 보니 왜 이렇게 눈물이 났을까. 인생의 희로애락이 담긴 장면이라 여러 감정이 짧은 시간 안에 소용돌이처럼 지나갔다. 그리고 ‘꿈’이라는 희망을 품고 있었지만, 어쩔 수 없는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모습이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을 대변하고 있는 듯했다.


내가 잊고 있던 어릴 적 꿈은 무엇이었을까. 까마득하다. 꿈을 이루지 못한 것 같아 서글퍼졌다.



현재의 꿈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영화를 보며 감탄하게 되는 순간들은 모두 칼 할아버지가 하나둘씩 자신의 소중한 '꿈'을 놓는 장면들이었다. 엘리가 떠난 뒤 칼은 무서울 정도로 못다 이룬 꿈에 집착한다. 집, 엘리의 물건, 파라다이스 폭포 등 맹목적인 목표에 매몰되어 주변을 보지 못했다.


하지만 꼬마 러셀과의 모험 중 위험한 상황에서 집이 떠오르지 않게 되자, 그때 집에 있는 물건들을 하나 둘 버린다. 현재의 소중한 존재를 지키기 위해 과거의 물건들을 내려놓는 것이다. 엘리와 관련된 물건이라면 어떻게든 지키려고 했던 칼이었기에, 말이 아닌 행동으로서 그의 가치관이 변해가고 있음이 느껴졌다.


그 집엔 두 개의 소파가 항상 부동의 자리에 놓여 있었다. 이 두 소파는 굉장히 상징적인 존재로, 칼과 엘리가 신혼집에 가장 먼저 들여놓은 가구이자 둘의 안식처가 되어준 공간이다. 둘은 늘 이 소파에서 함께 꿈을 나눴다. 허나 소파와도 완전히 이별한다. 마지막 장면에서는 러셀에서 엘리의 배지를 넘겨주기까지 한다.






이를 통해 꿈이란 놓음으로써 다시 새롭게 시작되는 것이라는 걸 알 수 있다. 과거의 경험은 언제나 현재의 나의 의지로 재배치될 수 있다. 엘리와 꿈꿨던 폭포 위의 집은 현실이 되지 않았다. 대신 그녀와 함께 했던 시간은 영원히 칼의 기억 속에서 남을 것이다. 소파를 버렸다고 그녀와의 추억이 사라지는 건 아니니 말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일생을 보낸 것, 이것만큼 멋진 모험이자 꿈이 어디 있을까. 실패했다고 생각한 꿈이 새롭게 해석되는 순간이다.


동시에 새로운 꿈이 시작되기도 한다. 집안의 물건을 버림으로써 러셀과의 완전히 새로운 모험에 오롯이 집중할 수 있었다. 그리고 세상에 자신의 흔적을 하나 더 남겼다. 바로 칼의 온정이다. 칼과 함께 멋진 모험을 떠나고 돌아온 러셀은 그와의 추억을 자라서도 기억할 것이다. 그리고 그 따뜻한 마음을 타익에게도 베풀 줄 아는 멋진 사람이 될 것이다. 꿈이란 타인을 통해 실현되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꿈은 단편적인 하나의 명사가 될 수 없다는 사실도 발견할 수 있다. '파라다이스 폭포'라는 대명사가 꿈이 되어줄 수는 없다. 꿈이란 무언가를 사랑해본 경험, 누군가와 함께 해온 과정들이 복합적으로 섞이고, 조합되어 완성되는 것이다. 꿈은 때론 실패할 수도, 또 때론 갑자기 바뀔 수 있다. 더 중요한 건 그 여정과 방향일 것이다.





어떤 이별이나 새로운 만남이 있기 마련이다. 이 법칙은 나 자신에게도 예외는 아니다. 과거의 나는 떠나보내고 새로운 나를 맞이하는 것. 이를 감수하기 위해 한때 소중했던 것을 과감히 뒤로 하는 것 또한 나아가는 누구에게나 필요하는 자세일 것이다. 너무 두려워하지 않아도 괜찮다. 그냥 새로운 출발선이 생기는 것일 뿐이다.


혹시 꿈을 이루지 못했다고 생각하는가? 그렇다면 한번 과정을 잘 들여다보는 것도 좋겠다. 잊고 살아온 게 무색할 정도로 열정적인 나의 지난날과 그 곁을 지켜준 사람들이 보일지도 모른다. 찬찬히 돌이켜보면, 꿈이라는 이름보다도 그 여정에서 얻은 것들이 더 많을지도. 그리고 새로운 시작점에서 과거의 경험들을 통해 더 멋진 꿈을 꿀 수 있는 사람이 될 것이다. 분명히!







그만두어야 새로운 것이 시작된다.

by. 책 <타이탄의 도구들>


진정한 여행을 통해 우리는 근본적인 깨달음을 얻게 된다. 내 안의 뭔가를 그만두어야만, 뭔가가 다시 시작된다는 것을.
그것은 포기가 아니라 다음으로 넘어간다는 뜻이다. 뭔가가 당신을 수긍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당신이 뭔가에 수긍할 수 없어 방향을 바꾸는 것이다. 불평불만이 아니라 긍정적인 선택이고 인생의 여정의 종착역이 아니라 더 나은 방향으로 가는 걸음이다. 직장이든 습관이든, 그만둔다는 거은 꿈을 향한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한 아름다운 선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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