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아름다운 것은 빠르게 사라진다.
나는 의미 중독자이자 성취 주의자이다. 좀처럼 와 닿지 않았던 경험에서도 의미를 굳이 찾아낸다. 그러면 경험이 헛되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받는 느낌이 좋기 때문이다. 합리화의 일종일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한번의 증명의 시간을 끝내고 나면 성취감을 만끽하며 다음 의미를 찾아 헤맨다. 어쩌면 이런 것들이 모두 내 안의 '불안'에서 왔을 수도 있겠다.
사실 픽사의 <소울>을 보는 중에는 22의 감정에 이입됐다. 그런데 영화를 본 후 점점 곱씹어 볼수록 다른 사람이 점점 더 생각 났다. 나와 닮은 사람은 22보다는 조 가드너였다. 인생의 목표를 찾으면 모든 우선순위가 하나로 맞춰진다. 대학교 때 나의 목표는 '포트폴리오'였다. 한 방향으로 잘 짜인 포트폴리오를 들고, 보란 듯이 좋아하는 회사에서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관련 외부 활동에 몰두하며 주변의 것들을 잘 보지 못했다.
덕분에 나는 바쁜 친구가 되어버렸고, 소중한 인연도 몇 잃었다. 당시의 경험은 너무 아렸다. 돌이켜 인생에서 가장 바빴던 시기를 생각하면 어떤 걸 했는지는 세세히 잘 떠오르지 않는다. 다만 내 곁에 남은 사람들이 있을 뿐이다. 일로 만난 사람들과 지금은 친구가 되어 일상과 생각을 공유한다. 결국 남는 건 사람인데, 뭐가 그리 중요하다고 경주마같은 시간을 보냈을까.
모든 아름다운 것들을 빠르게 사라진다. 조 처럼 '바쁜' 사람들이 그 찰나의 순간을 마음에 담아둘 여유가 있을 리 없다. 반면 22는 조의 하루를 살면서 일상 속의 작은 기쁨의 순간들을 하나씩 모았다. 이발사 친구가 준 사탕, 엄마의 실타래, 흩날리는 꽃잎까지. 22에겐 그 모든 것 하나하나가 인생이자 스파크였을 것이다.
반면 조에게 그 순간들은 모두 무대에 올라서기 위한 '과정'이었을 뿐이다. 하프노트로 향하던 길목에서 너무 빨리 지나간 것들이라 미처 그 당시에는 소중함을 알지 못했던 것이다. 그래서 묻지 않았다. 이발사 친구가 이 길을 선택한 이유를. 그냥 재즈를 좋아하는, 이발이 천직인 사람인 줄 알았다. 엄마는 자신의 꿈을 평생 반대할 줄만 알았다. 그런데 오히려 진솔한 대화 끝, 돌아가신 아버지의 옷을 꺼내며 응원해주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자신의 관점에서 이야기를 하느라 주변을 보지 못한 것이다. 그래서 대화를 시도해보지도 않았다. 주변인들이 낯설게 느껴질 수 있지만, 사실 사소한 대화의 변화로 일어날 수 있는 아름다운 관계의 꽃이 핀 것이다. '왜 우리는 이런 대화를 나눈 적이 없었지?'란 질문에 '물어본 적이 없었으니까.'라는 우문현답이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정신없이 나아가다 보면 여기가 어디인지 조차 알 수 없다. 이미 바다에 있으면서도, 바다를 향해 헤엄치는 것과 같다. 그렇게 멈춰 서면 자문하게 된다. '나 지금 뭐 하는 거지?' 더 늦기 전에 나를 돌아볼 기회를 얻어야만 하는 이유이다.
만약 오늘 죽는다면,
내 인생이 아무것도 아니었을까 봐 두려워.
I'm Just Afraid That If I Died Today
My Life Would Have Amounted To Nothing.
너무 슬픈 말이다. 자신의 인생을 '재즈'로 기억하고 있던 조였다. 하지만 유 세미나에서 돌이켜본 인생은 실패로 물들어 있었다. 그래서 더욱 하프 노트에 서기 위해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한다. 조금이라도 인생에 '의미'와 '성취'를 불어넣기 위해서 말이다. 그것이 그의 스파크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지금의 모든 순간을 소중히 살아갈 거예요.
I'm going to live every minute of it.
하지만 마지막 장면에서 다시 한번 삶을 살아볼 기회를 얻었을 때, 그가 외친 말은 사뭇 다르게 느껴진다. 문을 나서 어디로 향했는지는 알 수 없다. 엄마의 가게? 코니가 있는 학교 밴드? 아니면 연인? 적어도 재즈만을 위한 하프 노트는 아니었을 것이다. 소중한 사람들을 위한 무대라면 모를까.
아마 그의 인생에서 재즈는 이제 도구가 될 것이다. 이발사 친구가 가족과 행복을 위해 이발을 하나의 도구로 선택한 것처럼 말이다. 그럼에도 그의 인생은 행복으로 충만했다.
의미나 성취는 목표가 아닌, 인생을 더 잘 살아내기 위한 도구가 되어야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바쁜 사람들은, 반대로 도구를 목표로 착각하며 살아간다. 미래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은 떨쳐내고, 소중한 시간을 진짜 자신을 끌어내는데 써야 할 용기가 필요하다.
이 외에도 성격, 멘토, 무아지경 등 여러 메시지를 담고 있는 영화였다. 하지만 과하지 않았다. 우리가 다 알고 있는 이야기들이기 때문이다. 누구나 알고 있는 이야기지만, 아무나 실천하긴 쉽지 않은게 문제이지만 말이다.
인간은 늘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영화를 본 직후, 성취가 아닌 삶을 따라가자고 다짐한다. 하지만 조금만 시간이 지나도 망각 세포가 발현해, 또다시 허망한 목표를 좇고 있을 가능성이 무한하다. 그때 이 영화를 우연이라도 다시 마주치길 바란다. 작심삼일도 백번 하면 1년이듯, 이런 다짐도 여러 번 하면 지속이 되겠지.
당신은 삶을 정말 사랑하잖아.
이유를 알고 싶어.
인생은 가능성으로 가득 차 있어.
어디로 향할지만 알면 돼.
당신이 삶을 사랑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당신의 삶을 어떤 가능성으로 채워가고 싶나요?
지금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