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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IN Nov 11. 2021

기록, 내 삶을 편집하지 않는 것

실패한 브런치 작가의 주절주절

'기록'에 대해 자주 생각한다.


기록과 글쓰기가 있다면 전자에 더 끌린다. 글쓰기도 좋지만, 기록을 위한 하나의 수단일 뿐이다. 언제든 그림, 사진, 음악 등으로 대체될 수 있다. 브런치뿐만 아니라 블로그도 꾸준히 하는데, 얼마 전 한 이웃 분께서 내 글을 보시고는 삶을 '아카이브'한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아카이브는 한 곳에 기록을 모아두는 것으로 뚜렷한 주제나 컨셉이 없다. 딱 내 블로그가 그렇다. 독서, 투자, 영감계정, 모임, 영화, 각종 사이드 프로젝트 등 삶을 둘러싼 다양한 이야기들을 남기는 공간이다.


사실 말이 좋아 다양이지 잡다하게 느껴질 때도 많았다. 그래서 소재를 골라, 꾸준히 연재해볼까도 생각했다. 독서면 독서, 영화면 영화, 하나의 소재만 파고드는 것이다. 그런데 그러면 나머지 삶들을 기록할 곳이 없었다. 모든 부분이 소중한데 편애하기는 싫었다. 결국 고민 끝에 지금의 잡다함을 유지하기로 했다. 다만 소재는 중구난방이지만, 모든 게시물을 관통하는 하나의 주제는 있었다. 바로 '꾸준한 기록으로 지속 성장하겠다'는 가치관이었다. 블로그에는 내 모든 성장의 기록이 남아 있었다.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되기보단, 하고 싶은 기록을 하며 나답게 성장하자고 결심했다.


나는 스스로를 괴롭히는 걸 싫어한다. 간혹 이것저것 하길 좋아하는 나를 보고, 엄청 열심히 사는 사람으로 봐주시는 분들도 계신다.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얼마 전에 만난 친구는 나보고 계획하면 꼭 지키는 사람이라고 했다. 비법은 지킬 수 있는 것만 계획하기 때문에 그렇다. 딱 감당할 수 있는 것만 한다. 메타인지가 좋다고도 할 수 있겠다. 할 수 있는 수준과 범위를 알고 그 이상을 욕심내지 않는다. 이런 나를 보고 10대 때부터 엄마는 늘 적당히 하지 말고 더 노력해보라고 말씀하지만, 적정 수준 이상으로 노력하지 않아 '애매한' 사람이 됐다.


책을 주변 사람들 중에선 많이 읽지만 다독가 명함을 내밀기는 부족하다. 중문과를 나왔지만 전공을 살릴 만큼의 실력은 없다. 가고 싶던 회사에 들어갔지만 평생 직장도, 누구나 부러워하는 신의 직장도 아니다. 글 좀 쓴다는 소리는 들었지만, 논술 입시는 다 떨어졌고 글로 먹고 살지도 못한다. 저축과 투자는 열심히 하지만 딱히 할 수 있는 건 없다. 영감 계정 팔로워를 1천명 모았지만 인플루언서도 아니다. 모든 부분이 이렇게 애매할 수가 없다.


그런데 애매한 것을 계속 기록했더니 나다운 사람이 됐다. 나답다는 게 아직 뭔지 잘 모르겠지만 사람들이 말해주는 이미지가 일정했다. 어떻게 보면 '기록'이 진짜 재능일지도 모르겠다. 앞으로 하고 싶은 기록은 내 삶을 편집하지 않는 것이다. 누군가에게 보이기 위해, 좋아요 하나를 더 받기 위해 노력하지 않겠다. 스스로 지치게 하는 글은 거부하겠다. 어떤 부분은 축소하고 또 어떤 부분은 확대해서 쓰지 않겠다는 결심과 같다. 퍼스널 브랜딩을 하려면, 남들이 필요로 하는 페르소나를 설정하고 보여줘야 한다는데 포기한 셈이다.


그래서 나는 실패한 블로거이자 무명의 브런치 작가이다. 작가라는 수식어를 붙여도 될지 모르겠지만, 브런처라는 표현은 없는 것 같으니 그냥 써본다. 하지만 타고난 기록쟁이라고는 할 수 있지 않을까? 애매하지만 나다운 것들을 남기기 위해 계속 기록할 뿐이다. 그리고 이런 종류의 기록도 누군가에겐 필요할 거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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