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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IN Oct 13. 2021

인생에도 '악마의 편집'이 있다

<환승연애>에는 없고 <스트리트 우먼 파이터>에는 있는 것

과몰입하던 <환승연애>가 끝났다. 다른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볼 때는 항상 최애가 있었다. 하지만 <환승연애>는 달랐다. 매번 공감과 미움의 대상이 달라졌다. 물론 모든 일상을 보여주긴 어렵기 때문에 편집된 부분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특정 인물을 '캐릭터화'하지 않았다. 있는 그대로의 팩트 나열을 보여주었다. 그래서 한 인물을 두고도 하루는 미친 듯이 공감했다가, 또 하루는 등을 돌렸다. 모든 면에서 성숙한 사람은 없다. 어떤 면에서는 뛰어난 배려를 가졌으나, 또 어떤 면에서는 뚝딱거리고 서툴렀다. 가끔 남에게 상처를 줄 때도 있었다. 그런데 사실 이게 우리의 진짜 모습이고 인생이다. 어떤 날은 A에게서 과거의 나를, 어떤 날은 B에게서 지금의 나를 발견했다.


보통 '악마의 편집'은 서바이벌 프로그램에서 두드러진다. 요즘 방영 중인 <스트리트 우먼 파이터>도 초반에는 사람들이 댄서에 가지고 있는 편견을 증폭하는데 집중했다. '쎈' 언니들의 싸움을 강조하기 위해 약자와 강자 캐릭터를 포지셔닝했다. 서로를 얕보거나 마찰이 생기는 장면 위주로 편집을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각자의 매력이 넘쳐나는 댄서들이라 시청자들이 먼저 진가를 알아봤다. 그래서인지 요즘은 서로를 직업인으로서 리스펙 하고 응원하는 모습도 종종 나오고 있다.


이런 악마의 편집은 왜 하는 걸까? 방송에는 목적이 있다. 출연자들은 그 목적에 따라 배치된다. 웃긴 사람이 있으면 누군가는 진지한 역할을 맡아야 한다. 강한 사람이 있으면 또 누군가에게는 역한 역할이 주어진다. 각자가 방송의 컨셉에 따라 계산적으로 연출되는 것이다. 한 사람 당 하나의 캐릭터를 부여하고, 캐릭터성을 강화하기 위한 장면을 짜깁기 해 노출한다. 사람은 단 한 단어로만 설명할 수 있는 평면적인 존재가 아닌데 말이다.


그런데 이런 편파적인 편집 기술은 방송에만 있지 않다. 우리 인생에도, 또 스스로에게 적용할 때도 있다. 가령 안 좋은 사건이 생겼을 때 스스로를 '못난 사람'이라 정의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면 뭘 하든 그 틀 안에 가둬진다. 나빴던 일만 자꾸 생각나서 끝없는 우울감에 빠진다. 잘 해내지 못했던 일, 숨고 싶었던 일을 자꾸 떠올리다 보면 정말 처음부터 끝까지 못나 보인다. 못난 사람의 결정체가 된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인생을 댕강댕강 잘라 악마의 편집을 하는 사고방식이다. 누구보다 나를 잘 아는 건 자신인데 안타까운 일이다. 조금 더 스스로를 입체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인생은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나 외에 그 누구도 내 인생의 의미를 평가할 수 없다. 가족도, 가까운 친구도, 직장 동료도 모두 내 인생의 일부만 본 사람들이다. 모든 순간과 감정을 함께 했던 건 오직 나뿐이다. 그러니 간혹 벌어지는 불우한 사건에 따라 이전의 인생에도 프레임을 씌울 필요는 없다. 인생이 통으로 망가진 게 아니다. 그 순간의 내가 조금 아쉬웠을 뿐이고, 그 외의 다른 나들은 원래 그 자리에 있다. 우리는 다양한 면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다. 악마의 편집 따위로 재단할 수 없다. 그 주체가 내가 되어서는 더더욱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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