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으로 기억되고 싶은 모습
낙관적이나 그만큼 또 비관적이다. 미뤄온 1차 백신 접종을 지난주 금요일에 드디어 끝냈다. 주변 사람들이 심하다고 할 만큼 백신에 대한 두려움이 컸다. 백신 부작용 기사를 보고 누군가는 ‘설마 나겠어?’라는 생각을 한다는데, 나는 그 몇만 분의 일의 확률이 내가 될 것만 같았다. 무엇보다 백신의 위험성을 감수한 만큼의 이득이 있을까 싶었다. 부작용도 부작용이지만, 돌파 감염 등 소식이 들려오며 백신을 완전히 신뢰하지 못한 탓이 컸다.
그럼에도 여러 이유로 백신을 예약했다. 분명 한 달 뒤로 예약했는데 시간이 너무 빨리 흘렀다. 일주일 전부터 부작용 관련 기사를 찾아보며 무고한 사람들의 이유 모를 죽음을 바라봤다. 내가 다 분통했다. 이런 불안은 하루 전 고요해졌다. 어차피 그 상황에서 할 수 있는 다른 선택은 없었다. 그리고 언제나 그랬든 지금 할 수 있는 것에서 최선은 무엇일지 생각했다. 혹시 만일에 최악의 상황이 벌어진다면 '죽음'일 것이다. 그렇다면 죽음을 대비해야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엄청난 의식의 흐름이다.
그렇게 나는 볼 수도 없는 내 장례식의 장면을 하나하나 그려 봤다. 내친김에 영정사진도 놓아주기로 했다. 주인공이 없는 식이니, 사진만이라도 내가 원하는 걸로 하면 좋을 것 같았다. 떠오른 사진은 단 하나였다. 올해 5월에 전주에 놀러 갔을 때였다. 휴가를 쓰고 간 여행의 마지막 날 저녁에 한 카페테라스에서 노을을 바라봤다. 시야에 담기는 모든 것이 붉었다. 그저 바라보고 있는 것만으로 풍족했다.
그때 지은 미소가 그대로 담긴 사진이 있는데, 제격이었다. 마지막 배웅을 해주러 온 사람들이 나를 이렇게 기억해주면 좋겠다. 노을을 좋아했고, 또 좋아하는 것을 보면 잘 웃었던 사람. 싫어하는 것보단 좋아하는 게 많았던 사람. 결국 확신에 차서 엄마한테 농담을 섞어 영정사진 얘기를 했다가 오랜만에 등짝을 맞을 뻔했다. 하지만 진심이었다. 이 사진만큼 지금의 나와 가까운 것이 없었다. 다른 건 잘 떠오르지 않았다.
그리고 또 하나. 이 나이에 죽으면 많이 억울할지도 궁금했다. 곰곰이 생각해 봤다. 후회할만한 짓을 한 적이 있는가? 없진 않지만 돌아가더라도 똑같이 행동할 것이다. 앞으로 이루지 못한 게 한이 될까? 아쉽긴 하겠지만 여태껏 최선을 다해 살아왔고, 미래의 일은 어쩔 수 없다. 하나씩 문답을 해보자 생각보다 최악의 상황이 생각보다 크게 두렵진 않았다. 다만 사람들이 아쉬울 뿐이었다.
결론적으로는 백신 1차 접종 후 남들보다는 더 아팠다. 흉통으로 일주일을 보냈다. 건강염려증 때문일지도 모른다. 다행히 회복 중이고, 잠시나마 죽음과 마주 보고 서서 의미 있는 사색을 했다. 어떤 모습으로 기억되고 싶은지, 마지막 순간에 아쉬울 것은 무엇인지. 평소에는 생각하기 어려운 문제들이다. 하지만 너무나 중요하다.
이런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영정 사진을 꼭 하나만 해야 하나! 인스타그램 하이라이트처럼 좋았던 순간을 여러 개 모아두면 안되나? 혹시 할머니로 생을 마감해도, 모든 시절의 나와 함께 하고 싶을 수도 있을 텐데 말이다. 앞으로도 좋은 순간이 많을 텐데 하나만 픽스하기엔 너무 아쉬웠다. 그리고 어느 시절에 나를 만났던 사람이든, 우리가 함께 한 찬란한 순간을 기억해줬으면 한다. 꼭 내 장례식에는 갤러리처럼 사진을 전시할 테다. 꿈이 하나 더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