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남긴 이야기
거울 앞에 서있다. 세안한 얼굴이 환하고 맑아져 개운하니 미소가 절로 난다. 미소 뒤에 숨어있는 오늘 하루를 잘 살아낸 나를 마주하며 토닥인다. 지낸 하루를 상기하자 눈꺼풀이 무거워진다. 급 눈가에 주름살이 보인다. 뚫어져라 내 얼굴을 구석구석 살핀다. 여러 가지 표정을 지으며 찡그려도 보고 웃어도 본다. 웃어서 생기는 주름살은 돈으로도 살 수 없는 백만 불짜리 주름살이라고 했다. 다행히 내 얼굴의 눈가 주름살은 웃을 때 생기는 것들이다.
많은 사람들은 주름살이 가득한 얼굴에 불만족을 느낀다. 노화의 과정이다 보니 조금이라도 젊게 보이기 위해서 주름살을 숨기거나 제거하기에 급급하다. 여러 가지 시술을 하고 효과가 떨어지면 또다시 시술을 반복한다. 시술하지 않은 본래의 얼굴을 마주하는 것을 매우 불편해한다.
주름살은 내 삶이 남긴 흔적이요 내면의 심리를 반영한 표식이지 않은가. 주름살이 싫지는 않다. 주름살은 평소 자주 짓는 표정이나 인상이 고스란히 남아지는 것이다. 주름살을 보면 거짓 없이 솔직하게 드러난 자신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다. 우리의 얼굴은 웃을 때 더 아름답게 느껴진다. 웃음 지을 때 더 깊어지는 주름들은 되려 환하게 얼굴빛을 밝혀주기 때문이다. 한 해가 다르게 나이를 먹으면서 그에 맞게 늘어나는 옅은 주름들이 밉게만 보이지 않는 이유다. 오히려 주름살 욕심이 생겼다. 더 자연스러운 미소를 장착해서 웃음 짓는 얼굴이 더 아름답고만 싶다.
이쯤에서 비밀 한 가지를 폭로하겠다. 주름살이 싫은 건 아니지만 나는 나의 웃는 얼굴을 좋아하지 않는다. 내 눈에도 어색해 보이고, 사진 속에 웃는 내가 그렇게 어색하기만 하다. 웃는 얼굴이 예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사진을 찍을 때 평소 부담 없이 웃는 것처럼 밝은 웃음을 짓지 않는다. 무표정인 사진이 대부분이다. 웃어야 한다면 미소를 살짝 지을 뿐이다. 그러다 보니 사진 속 나는 미소인지 무표정인지 애매한 얼굴로 등장한다. 주름살 이야기를 하다 보니 티엠아이를 한 것 같지만... 아무튼 나는 내 얼굴이 환하게 웃을 때 보다 살짝 미소 짓는 얼굴이 더 좋다.
생각해 보니 미소는 혼자서도 자주 짓는다. 그런데 혼자서 크게 웃을 일은 흔하지 않다. 혼자서 이 생각 저 생각을 하며 미소 짓거나 가볍게 웃을 수는 있지만, 대부분 웃긴 일이 있거나 누군가와 함께일 때 웃음이 터져 나온다. 내 얼굴의 주름살은 누군가가 만들어 준 것이라니. 나를 웃게 해 준 사람들이 하나 둘 떠오른다. 그들에게 감사한 마음이 든다. 그들이 함께 해 주어서 웃을 수 있기 때문이다.
웃는 얼굴이 어색하게만 느껴져서 웃기 싫은 나를 자주 웃게 만드는 사람들. 내 웃는 얼굴이 싫다는 생각을 까맣게 잊은 채, 그저 환하게 웃을 수 있게 하는 사람들. 그들 덕분에 주름살은 조화로이 자리 잡아가는 중이다. 노년이 되면 웃음으로 생긴 주름살들이 더 돋보일 것이다. 모두가 편안하게 느끼는 인상 좋은 얼굴을 만들어 줄 테니 말이다. 웃음으로 생기는 주름살은 인생이 즐겁고 행복했음을 증명하는 소중한 흔적이다.
웃음으로 만들어진 주름살들이 더 예뻐 보이기 시작했다. 활짝 웃는 얼굴을 숨기는 습관이 있어서 쉽진 않겠지만 웃는 내 얼굴도 예쁘다고 웃음이 날 때마다 주문을 걸 셈이다. 백만 불짜리 주름살을 만들어 주는 나만이 지을 수 있는 표정이니까, 당당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