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남긴 이야기
"우리는 서로 부담 주지 않으려고 안 주고 안 받는 거 아니었어?"
"그렇게 생각하니?"
황당하다는 콧소리가 들렸다.
"내가 너를 위해 해 준 일들은 아무것도 기억이 안 나?"
괘씸하다는 어투로 퉁명스럽게 서운함을 쏟아냈다. 당황스러웠다.
"거기까지 가?"
"내가 남보다 못해?"
"내가 남보다 못하다고 했어?"
"그럼 뭔데?"
"트집 잡아서 서로 피곤하게 만들지 말고 그만하자."
나는 전화기를 내려놓았다. 그렇게 다툼은 끝이 났다.
그녀가 주는 것들을 받은 건 나였다. 나에게 주고 나서 서운함과 괘씸함을 느꼈다니 도대체 어디에서 왜 그런 느낌을 받은 건지 어리둥절했다.
나는 내가 준 것은 기억을 잘 못하는 편이다. 하지만 누군가 나를 위해 베푼 것들은 잊지 않고 보답하기 위해 기억하려고 한다. 그런 내가 그녀에게 받은 것들을 기억하지 못할 리 없었고, 고마운 마음을 느끼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평소 나의 표현 방법에 문제가 있었던 것일까? 나의 보답이 부족했던 것일까?
솔직하게 말하면 그녀에게 받았던 것들이 꼭 필요했던 것들은 아니었다. 그것들은 나에게 유용하게 쓰이거나 내 곁에서 그 가치를 모두 발휘하지 못했다. 아깝기도 했고 때로는 아쉬움도 있었다. 고맙기는 했지만 짐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거절할 수 없었다. 가족이니까. 서운해하니까. 우리는 서로의 생일날 선물을 챙기지 않았다. 특별한 날이라도 축하한다는 말 외에는 오가는 것이 없었다. 나는 서로가 부담을 주거나 굳이 선물을 하지 않아도 되는 사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명절에 가끔 내가 받았던 것들이 화근이 된 모양이다.
내 기준에 그녀는 경제적 여건이 나보다 나았다. 각자 만족하는 부의 기준은 다르기에 그녀의 주머니 사정도 그녀 입장에서는 빠듯할 수 있다. 그럼에도 나를 챙겨주는 그 마음이 항상 감사했다. 하지만 나는 그녀에게 줄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었다. 받는 즉시 고마워. 잘 쓸게. 예쁘네. 좋네.... 등의 인사로 가장 먼저 고마움을 전했다. 첫인사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었던 것일까. 종종 잘 먹고 있네, 잘 쓰고 있네 등의 말도 없냐며 서운함을 내비치고는 했었다. 그러면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 얼른 고맙다고 잘 쓰고 있다고 잘 먹고 있다고 한 번 더 전했다. 엎드려 절 받기라며 언짢아했다. 하지만 이번 건은 좀 달랐다. 그녀가 나에게 주는 것들에 대해 그만큼 내가 보답하지 못한 것을 불평하는 것처럼 들렸다. 그동안 쌓이고 쌓여 드디어 곪아 터진 것인가.
누군가를 위해 무언가를 준 사람이 상대로부터 서운함, 불평을 느낀다는 것은 나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웠다. 나는 내가 준 이후로는 준 것에 대해 생각하지 않았다. 준 것으로 끝이었다. 준 사람으로부터 다른 것을 바라지 않았다. 고맙다는 말을 듣지 않아도 괜찮았다. 혹시라도 불필요한 것을 준 것은 아닌지 염려하기도 한다. 그저 내가 줄 수 있는 것이 있다는 것 자체로 감사했고, 소소하더라도 받아 준 것으로 행복하고 감사했다.
그날 그 다툼은 그녀가 진정으로 나를 위해 준 것일까 생각하게 했다. 그녀의 기준에 좋은 것들을 나에게 준 것은 아닌지. 그것들이 나에게도 좋은 것이 될지 고려해 보았는지. 나를 위한다는 명목 아래 자기만족을 위한 베풂은 아니었는지... 별별 생각에 복잡해졌다.
물론 반드시 물건이나 말로 꼭 표현하고 전해야 하는 상황도 있다. 안다. 하지만 진정으로 위한다는 것은 서로가 마음으로 먼저 느낄 수 있는 것 아닐까. 마음과 마음으로 전해지는 그 무엇이 분명히 있다고 나는 믿는다. 꼭 거창한 물건이 아니더라도 진심의 말 한마디만으로도 충분한 것이 상대를 위하는 마음이라고 생각한다. 마음의 눈을 감고 마음의 귀를 닫고 사는 이들이 많아졌다.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는 것만 믿는 이들이 많다. 우리 삶에는 그것들 보다 더 소중한 것이 구석구석 숨겨져 있고 그것을 찾고 느끼며 살아갈 때 행복함을 깨닫게 되는데 말이다.
나는 그녀에게 무엇을 바라지 않았다. 그저 가족으로서 편안하게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존재라면 그것으로 충분했다. 그녀와 나는 같은 마음인 줄 알았다. 그것은 나만의 착각이었나... 미묘한 감정이 들이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