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 보면 밖에서 보면 별 일 아닌 것 같은데 (내가 객관적으로 봐도 별 일 아닌 것 같은데) 버튼이 심하게 눌릴 때가 있다. 평소엔 남이 봐도 좀 화가 많이 날 일이라도 오히려 난 주변 몇몇 사람에게 좀 투덜거리고 밥 잘 먹고 잠 잘자면 쉽게 잊는데, 버튼이 한 번 눌리면 아니 -> 아니 근데 -> 아니 근데 시발 그라데이션 분노가 되어 잠깐 동안 내 영혼을 갉아먹는다. 어디서든 자기반성을 하는 것이 습관이니 이번 기회에 나의 버튼은 무엇인가 곰곰이 생각을 해보았다.
1.
나는 쪼잔스럽고 짜증스러운 상황을 유독 못 견딘다. 특히 누군가 뭔가 쪼잔스러운 행동을 했는데 그게 나에게 부정적으로 영향을 준다? 그러면 정말 치를 떨며 싫어한다. 오히려 그냥 성격이 나빠서, 지독해서, 타고난 게 그래서 쪼잔스러운 건 그러려니 하는데 약간 머리 쓰는 게 보이는데 충분히 머리를 잘 쓰지 못해 쪼잔스러운 게 보이는 상황을 무척 싫어한다.
왜 그런가 하면… 내가 쪼잔스러운 인간이기 때문이다! 나는 어릴 때부터 밴댕이 소갈딱지를 가진 쪼잔하고 짜증 잘 내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나의 덩치와도 맞지 않을뿐더러 추구미와 너무 다르기 때문에 안 그러려고 혹은 안 그래 보이려고 평생 코스프레를 하며 살아왔다. 사람이 안 그런 척하면 진짜 좀 안 그렇게 되는 걸 아는가? 그래서 초중고 사회생활 동안 트레이닝을 거치고.. 꽤나 이 정도면 나도 안 쪼잔해진 것 같은데… 할 때쯤 눈앞에서 쪼잔함과 짜증을 목격하면 앗… 못 참겠다… 버튼이 팍 눌러지는 것이다. 그 쪼잔함의 심리가 너무 눈에 보이며 심지어 이해가 되고 약간 거울상 느낌의 자기혐오가 버튼으로 발현되어 버린다.
2.
결국 나는 아직 나의 쪼잔함을 극복하지 못하였다. 저 내면 깊은 곳의 쪼잔함은 정말 어쩔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생각한다. 하 나도 한 쪼잔함 하거든? 진짜 내가 얼마나 제대로 속 좁게 쪼잔한지 보여주겠어! 이쯤 되면 이제는 거울상 자기혐오가 아니라 그냥 자기혐오다. 나는 쪼잔한 나를 싫어하는데 상황이 나를 쪼잔하게 만들기 때문에… 쪼잔한 것도 싫고 그에 발맞춰 쪼잔하게 대응하는 나도 싫은 거다 엉엉
3.
자 그래서 어쩌면 좋으냐? 마음을 넉넉하게 가져야 한다. 대인배가 되어야 한다. 소인배로 타고났지만 대인배로 마무리되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그깟 쪼잔함 따위! 내가 다 이해하지만 넘어가주지 난 대인배니까 핫핫핫 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4.
여기서 번외문제가 등장하는데 그럼 대인배가 되려면 어떡해야 하나? 최근에 내가 기이하게 짜증 났던 상황들을 생각해 보면 공통적으로 업무가 과로하여 뇌가 피곤 / 충분한 수면 부족 / 충분한 여가시간(연프시청) 부족 / 과도한 약속으로 혼자만의 시간 부족 등 마음 깊은 곳에서 뭔가 불만족스러움이 쌓여있는 상황이었다. 거기에 잔을 넘치게 하는 한 방울의 물 같은 상황이 더해지면 모든 불만족이 섞여서 와르르 되는 건데, 이를 극복하려면 애초에 소인배의 잔에 물을 붓지 않아야 한다.
그래서 결론. 업무를 조정하고 (오는 일 다 받지 말고 ㅜㅜ), 루틴하고 지루한 삶을 만들고, 약속 많이 잡지 말고 (여기서 더 안 잡으면 사회적 고립이긴 할 것 같지만), 대인배 코스프레를 열심히 해보자.
이상 간만에 일 끊고 나와서 나솔에 탄산수 한 캔을 때리며 행복을 느낀 자의 자기반성 타임이었다. 자 앞으로 아침에 일어나서 세 번 복창하기! 나는 대인배다 소인배는 물러나라 핫핫핫핫!