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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왜 님, 이고 나는 왜 씨, 야?

3-1. 어느 날 방송국을 나오면서

by 얼굴씨
나는 왜 씨, 야?

아드님, 그 꽃 씨 먹는 거 아니야




내 능력을 탓하며 내면적 절필에 들어갔다.


괴로울 땐 돈을 벌겠어요.


차가운 김밥으로 겨우 끼니를 때우며 하루 12시간 넘게 강의를 했다. 쌓이는 돈으로 빚을 갚고 술을 마셔대는 와중에 작업 의뢰가 들어왔다.

'사운드 오브 뮤직'을 아이들이 공연할 뮤지컬로 각색해 달라는 최감독의 제안이었다.

처음 써 보는 장르라 호기심에 귀가 또 팔랑거렸고, 애정하는 플레이 리스트에 담겨 있던 뮤지컬 넘버들은 손가락을 근질거리게 만들었다.

나는 그만 내면적 절필을 잊고, 열심히 포트폴리오를 준비해 불타는 의지를 전하고야 말았다.




최감독은 작가의 의견을 최대로 수용하자는 입장이어서 마음 편하게 원고에 매진할 수 있었다.

원곡의 음정은 유지한 채, 각색한 주제에 맞게 가사를 바꾸어 쓰기도 하고, 새로운 노래 몇 곡을 만들기 위해 작곡가와 협업하기도 했다. 장르적 특성상 조명이나 음향팀과도 함께 상의할 일이 많았는데 마침 비슷한 연령대이기도 했고 작품에 대한 해석도 비교적 그 결이 같았다.

우리들은 금세 친해졌고, 회의를 핑계 삼아 밤새 마시고 웃고 떠드는 회식이 이어졌다.

작업 내내 대부분은 행복했고, 작지 않은 무대에서 펼쳐진 공연은 충분히 멋졌다.

그리고는 바로 다음 작품을 제안받았는데, 이번엔 원작 없는 창작 뮤지컬이었다.

자신감도 붙어서 신나게 써냈고 또 한 번, 유명해지면 어쩌나 고민을 하기도.

오만오천 개의 이유로 공연엔 못 올렸지만 아직도 난타 창작 뮤지컬 <퍼즐>은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




3대 공중파 중 한 라디오국에서 공채 작가를 뽑았던 해가 있었다.

라디오국 작가라는 것이 워낙 인맥에 의존하다 보니 새로운 인물이 그 틈을 비집고 들어가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티오가 웬만하면 나질 않는데, 우리 문창과에선


너 알바 하나 할래?


식의 제안 중 하나가 바로 그것, 라디오 작가였다. 실제로 학부 때 휴학을 하고 라디오국에서 일했던 이들이 적지 않았다. 그래서 그냥 알바 삼아 해 봄직한 일, 정도로만 여기던 영역이었다.

막내 작가로만 있다가 나온 이도 있었고, 캠페인 등의 꼭지 원고만 쓰는 이도 있었다. 드물게는 서브, 메인까지 올라가는 경우도 있기는 했다.

열정페이 정도의 급여를 받으며 주로 선물 배송이나 전화 업무를 맡게 되는 막내작가를 5년쯤 한다. 그다음 꼭지 한 두 개는 맡아서 쓸 수 있으며 기획사, 매니저 등에 안면을 잘 터 놔, 인기인을 1순위로 섭외하는 것이 가장 큰 미덕인 서브 작가를 또 몇 년 한다. 그렇게 대략 10여 년쯤을 이 업계에서 산전수전 겪어야 오프닝 멘트를 쓸 수 있는 메인 작가님이 되는 것이다.

게다가 7년인가 근속을 해야 방송작가 협회에 등록이 된다. 공인(共認)이 무슨 7년이나. 장인도 아니고!

그 박봉을 견뎌내며 생존해야 그나마 어디 가서 명함이라도 내미는 라디오국 작가 대접을 받는다.

이런 시스템은 하나도 모른 채

영화에 빼앗긴 심장을 라디오로 던졌다.

별밤지기 문세 오빠의 목소리로 밤 10시를 확인하고, 음악에 영혼마저 빼앗길 나는,

후배의 제안에 또 입맛을 쩝쩝 다셨다.


공채 작가들을 뽑았는데, 중심을 잡아 줄 메인 작가가 필요하다. 메인 작가 급구!


지금 생각해 보면 코디미 같은 일이다. 신선하고자, 혹은 관행을 좀 바꿔보고자 공채를 마련했는데 메인 작가를 다시 뽑다니. 그것도 10여 년은 이 바닥에 있어야 어깨 쫙 펴고 노트북 좀 들고 다닐 수 있는 그런 메인 작가를, 신인으로 뽑다니.


그런 말도 안 되는 일이 내게 일어났다.


크크크 웃음이 육성으로 터져 나올 일이다.

요행이나 낙하산으로 들어간 것도 아니고, 그간 썼던 작품들의 포트폴리오와 방송국에서 요구했던 창작 원고로 당당히 CP(chief producer)의 선택을 받은 것이었다.

공채에 합격한 몇몇의 작가들도 참석한 면접까지, 마지막 관문을 무사히 마치고 나는 라디오 메인 작가가 되었다.


어머~ 자기가 새로 뽑혔다는 그 메인이야? 이름이?


안녕하세요 xxx입니다.


아 xx씨? 반가워!


가림막 하나를 사이에 두고 나란한 책상에 자리 잡은 타 프로그램의 A 피디님.

알고 보니 우리는 동갑이었다. 그녀는 나를 처음부터 당연한 듯 씨,라고 불렀고 나는 다들 그렇게 부르길래 님, 이라고 했다.


어머 나이가, 동갑이에요!


그래? 반갑네. xx씨.


그러게요. A 피디님.


이후로 나보다 어린 여러 피디''들은 나를 xx''라 불렀는데, 어느 누구 하나 그 부분을 의아해하는 사람이 없었다.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




다음 편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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