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ce in a blue moon
20여 년 전 미국에 이민 왔을 땐 정말 영어를 전혀 할 줄 몰랐다. 패스트푸드점에서 흔한 어니언링 하나 주문하는 것조차 힘들었다.
미국 땅을 밟고 처음으로 웬디스에 갔을 때의 일이다. 나는 계산대 앞에 서서 매장 직원에게 어니언링 하나를 달라고 얘기했다. 아기가 처음 옹알이를 하는 것처럼 들렸을까. 상대방의 신경질 섞인 “왓?”이라는 말이 날아와 비수처럼 가슴에 꽂히는 걸 느꼈다. 내가 "어니언링"이라는 초라한 단어를 입 밖으로 내뱉기 위해 얼마나 큰 용기를 내었는지 캐쉬어는 알지 못했다. 원망스러웠다. 언어장벽 때문에 경험했던 수치와 좌절감은 마음속에 매번 깊은 상처를 남겼다.
어쨌든 나는 아버지가 원했던 양파튀김을 사서 테이블로 돌아갔다. 나는 그날 먹었던 눅눅한 양파의 쓰린 맛을 평생 잊을 수가 없다.
그때부터 나에게 영어를 못한다는 건 단순히 불편함의 문제가 아니었다. 언어장벽은 평생 극복할 수 없을 것 같은 일종의 사회적 장애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나는 이 장벽을 뛰어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면서 살아왔다.
많은 시간이 흘렀고 나는 오랫동안 살았던 뉴욕을 떠나 바로 옆에 있는 뉴저지로 이사 왔다. 지금은 커리어를 쌓기 위해 아등바등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영어는 여전히 고민거리 중에 하나이다. 이 골칫덩어리 영어를 어떻게 하면 좋을까. 영어 잘하게 해주는 약 같은건 없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