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려와 칭찬의 기술
봉준호의 말 한마디
봉준호 신드롬이다. 한국 대중 문화는 앞으로 봉준호 이전과 봉준호 이후로 나뉠 것이다. 이 현상의 밑바닥에는 봉준호 리더십이 있다. 한 인터뷰에서 봉감독의 누나 봉지희 교수는 “준호는 동정심이 많아 어렵게 사는 친구를 집으로 데리고 와 엄마가 밥을 먹이곤 했다”고 말했다.
봉감독 생가터를 복원하자는 식의 엉뚱한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봉준호 리더십은 타인에 대한 공감과 이해에서 나온다. 아카데미 감독상을 탄 순간, 그는 헐리우드의 위대한 감독 마틴 스콜세지를 찬양했고 쿠엔틴 타란티노에게 사랑을 고백했으며 함께 후보에 오른 샘 멘데스와 토드 필립스의 이름을 거론했다. 승자가 된 순간 패자를 잊지 않고 가장 고상한 방식으로 그들을 위로했다.
무엇보다 봉준호는 함께 일하는 이들에 대한 배려가 뛰어나다. 촬영 현장에서 감독은 갑중의 갑이다. (30년 미디어 경력 중에 갑질하는 연출이 한 둘이었겠나? 에휴, 말을 말자.) 그런데 봉준호와 함께 일한 사람들은 을이 아니라 파트너이자 지음知音이었다. 지음이란 무엇인가? [열자]에 나오는 이야기다. 거문고 명인 백아에게는 종자기란 친구가 있었는데 그의 연주를 진심으로 알아주는 이였다. 백아가 산을 생각하며 연주하면 종자기는 태산 같은 음이라 했고 물을 생각하며 현을 튕기면 흐르는 강 같다고 했다. 종자기가 죽자, 백아는 거문고 현을 끊고 더는 연주하지 않았다.
[사기열전]에는 자기 주인을 위해 목숨을 버린 자객 예양 이야기가 나온다. 그는 이전에 다른 주인도 섬겼으나 지백이란 주인을 위해 목숨을 바쳐가며 복수를 했다. 왜? “다른 이는 나를 종으로 부렸으나 지백은 나를 중요한 인물로 존중해 주었기에 그를 위해 죽는다.”는 거다. 자객들의 좌우명은 ‘사위지기자사士爲知己者死- 선비는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죽는다’ 였다.
한 인터뷰에서 봉감독에게 포스터를 왜 그렇게 만들었느냐고 묻자 그는 “잘 모르겠다. 담당자가 알아서 만들어 왔는데 좋았다”고 말했다. 맡기고 신뢰하는 지음의 관계다. 영화 촬영 현장에서는 막내 스태프 이름까지 기억하고 불러 준다고 한다. 최근의 인터뷰에서 그는 통역자 샤론 최를 칭찬했다. 그녀에게 ‘언어의 아바타’란 수식어를 붙여주고 “첫 문장만 던져 놓고 통역하는 동안 다음 문장을 생각하면 된다. 우리 통역자와 함께 스피치를 하는 건 우리 팀만의 특권이다.” 통역에 대해 최고의 찬사를 보낸 거다.
잘 생각해 보라. 정상회담 장에서 통역자가 칭찬받았다는 뉴스를 들어본 적이 있나? 아무리 유명하고 위대한 인물도 인터뷰하면서 “우리 통역자 최고”라며 엄지를 치켜 올려 본 적이 있나? 아카데미 시상식이 끝나고 봉감독은 샤론에게 오스카 트로피를 건네기도 했다. ‘이 상은 당신 덕이다’라는 제스처다. 봉감독의 배려가 여기까지 미친다. 이런 대접을 받으면 기분이 어떨까? 사위지기자사의 심정 아닐까? 그를 위해서 더 잘하고 더 열심히 하고 마음을 다해 일하겠다는 심정이 들지 않을까? 말 한마디로 상대를 아미(BTS 팬클럽)로 만들고 자객 예양으로 만들고 백아의 종자기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 봉준호 리더십의 핵심이다.
알량한 권한을 갖고 온갖 갑질을 하는 뉴스가 횡행한다. 최근 EBS에서 자회사 사장이 직원에게 “더 좋은 관용차를 내 놓으라”며 갑질을 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그자가 받는 봉급도 관용차도 다 국민의 세금이다. 어리석고 한심한 짓이다. 이런 사람이 상관이면 참 골치 아프다. 다행히 바로 잘렸지만 아직 잘리지 않은 이들은 지금이라도 깨달아야 한다. 같이 일하는 이를 추켜세워줘야 내가 빛날 수 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