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히 때로는 폭풍처럼 다가오는 맹자
9 to 6 직장인을 위한 고전 읽기 03 <맹자>
-편히 사는 자에게는 큰 일이 생기지 않는다
하늘이 장차 어떤 사람에게 큰일을 맡기려 할 때는
반드시 먼저 그의 마음을 괴롭게 하고,
그의 뼈마디가 꺾이는 고통을 주고,
그의 배를 곯게 하고,
그의 몸을 가난에 찌들게 하여,
하는 일마다 뜻대로 되지 않게 만든다.
왜?
그의 마음을 분발하게 하고
참을성을 갖게 하려고.
그래서 지금까지 그가 할 수 없었던 일을
능히 해낼 수 있게 하려고. [고자 하]
제가 맹자에서 가장 좋아하는 대목입니다. 고리타분한 이야기가 쓰여 있을 줄 알았던 <맹자>에서 저 문장을 발견하고 저는 탄식했습니다. “아, 맹자 정녕 이러깁니까?” 하고...
[우리가 꿈꾸는 기적-인빅터스]는 남아프리카공화국 최초의 흑인대통령 넬슨 만델라에 대한 영화입니다. 흑인 인권 운동을 하다 27년 간 복역했던 만델라는 1994년 남아공 최초의 민주선거에 의해 대통령에 당선됩니다. 그러나 350년 동안 지속된 인종차별정책의 벽은 쉽게 무너지지 않았지요. 백인의 부정적 시각은 물론이고 흑인의 피해의식도 극복의 대상이었습니다. 만델라가 흑백 갈등 치유책으로 선택한 것은 스포츠였습니다. 럭비 월드컵을 유치하고, 선수들을 격려해 월드컵 우승을 이끌어 냅니다.
영화 중간에 국가대표 럭비 팀 주장인 프랑소와(맷 데이먼)가 만델라가 복역했던 교도소를 방문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교도소의 방은 채 한 평도 되지 않습니다. 수감자들은 남아프리카의 땡볕아래서 광산의 돌을 쪼는 징역을 살아야 했습니다. 프랑소와의 상상 속에 중년의 만델라가 떠오릅니다. 만델라는 죄수복을 입고 땀이 뒤범벅이 된 채 망치질을 하고 있습니다. 정의를 위해 투쟁했던 만델라가 왜 27년 동안이나 감옥에서 고생해야 했을까요?
맹자가 설명해 줍니다. 하늘이 만델라에게 큰일을 맡기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하늘은 만델라가 큰일을 해내기 전에 시련을 내립니다. 그것도 반드시. 먼저 그의 마음을 괴롭게 하고, 뼈마디가 꺾이는 고통을 주고, 배를 곯게 하고, 가난에 찌들게 하여, 하는 일마다 뜻대로 되지 않게 만듭니다. 그냥 큰일을 맡겨도 되는데 왜? 그의 마음을 분발하게 하고 참을성을 갖게 하려고. 그래서 지금까지 그가 할 수 없었던 일을 능히 해낼 수 있게 하려고.
그런데 저는 또 삐딱하게 이런 생각이 들어요. 만약 하늘이 그의 마음을 괴롭게 하고, 뼈마디가 꺾이는 고통을 주고, 배를 곯게 하고, 가난에 찌들게 하여, 하는 일마다 뜻대로 되지 않게 만들었는데 큰일을 맡기지 않으면? 분발하고 참을성을 갖고 있는데 여전히 고통스럽고 가난하고 하는 일마다 뜻대로 되지 않으면? 참 황당한 상황이 되는 거죠.
빈센트 반 고흐 같은 화가는 평생 배를 곯아가며 가난하게 살았는데 그림 한 점 못 팔고 가난 속에 죽었어요. 모차르트는 불멸의 작품 수백 점을 남겼지만 죽을 때 제대로 장례를 치를 돈도 없어서 하층민의 공동묘지에 아무렇게나 버려졌습니다. 에밀리 브론테나 제인 오스틴은 영국 문학사에 길이 남을 작품을 썼지만 생전에는 제대로 인정받지도 못했습니다. 이게 하늘의 뜻일까요?
하늘이 생각하는 완성은 우리가 생각하는 성공과 거리가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성공 따위는 하늘의 기준으로 봤을 때는 아무것도 아닌 거죠. 고흐가 인정을 받고 그림도 많이 팔아 잘 먹고 잘 살다 갔다면? 그게 성공이고 행복인가요? 그건 인간적 수준에서 생각하는 성공과 행복이지요. 하늘의 기준에서 보면, 하늘은 고흐에게 이미 줄 것을 준 겁니다. 그림 한 점 한 점 만들 때, 붓질하는 순간순간 고흐는 이미 성공했고 행복했습니다.
모든 창작의 순간에는 신이 함께 합니다. 예술가들은 흔히 ‘그분이 오셨다’고 하는 정신적 쾌락의 순간을 느낍니다. 어떤 예술가도 이 순간을 세속적 성공과 바꾸려 하지 않을 겁니다. 오직 사이비 예술가만이 타인이 인정하는 성공이나 돈이나 명예를 원합니다. 그분에게 받을 것을 충분히 받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인문고전 공부도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독서를 하면 잘 먹고 잘 살 수 있다! 이렇게 외치는 사람은 아직 수준이 낮은 겁니다. 인문고전을 읽으면 성공하게 되고 부자가 된다! 아, 예. 물론 그럴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내가 만약 인문고전이라면, 나는 그렇게 외치는 사람에게 진정한 지혜는 주지 않을 겁니다. 인문고전을 읽는 행위 자체로 보상받는 것-이게 실은 알파요 오메가입니다. 읽는 행위에서 본질적 보상을 얻지 못하는 사람들이 꼭 소리 높여 성공과 자기계발과 부자 되기를 외치지요. 저요? 저는 부자가 되건 못되건 상관하지 않아요. 이미 받을 것을 다 받았기 때문에 더 바라는 건 욕심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위에 예로 든 예술가들-고흐, 모차르트, 브론테와 오스틴-의 경우도 범인은 꿈도 꿀 수 없는 큰일을 이루었고 삶의 순간순간 이미 하늘로부터 받을 것을 받았기 때문에 결코 불행하게 살다 갔다고 생각할 수 없습니다.
<맹자>로 돌아가겠습니다. 저는 <맹자>를 읽다가 다음 부분에서 “앗! 뜨거!”하고 책을 내려놓고야 말았습니다.
맹자가 말했다.
“백성이 귀하고 사직은 그 다음이고 군주는 하찮다. 그러므로 백성의 마음을 얻으면 천자가 되고, 천자의 마음을 얻으면 제후가 되고, 제후의 마음을 얻으면 대부가 된다.
만약 제후가 사직을 위태롭게 하면 제후를 바꾸면 된다. 이미 살진 희생을 마련하고 제물로 바친 곡식이 정결하며 때에 맞춰 제사를 지냈는데도, 가뭄이 들거나 물난리가 나면 사직의 신을 바꾼다.” [진심 하]
(박경환, 홍익출판사, 409p)
맹자는 왕이든 천자든, 백성의 마음을 얻지 못하면 갈아치워야 한다고 일갈합니다. 그리고 더 한 발 더 나갑니다. “정성을 다해서 희생물을 마련하고, 정결한 곡식을 제물로 바치면서 때에 맞춰 제사를 지냈는데도 가뭄이나 홍수가 들면 어떻게 하나?”
맹자의 대답은 이겁니다.
“신을 갈아치우면 된다!”
맹자의 태도가 놀랍습니다. 거두절미하고,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인간을 괴롭히는 신? 그 따위는 필요 없다. 다른 신으로 갈아치우면 그만이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맹자의 기본사상은 인본주의라지요? 도올 김용옥 선생이 맹자에 대해 쓴 책 제목이 <맹자 사람의 길>입니다. 맞습니다. 맹자는 인본주의자입니다. 인간적이어도 너무나 인간적입니다. 그에게는 사람이 최우선입니다.
애석하게도 우리는 ‘자본주의’에 살고 있습니다. 자본=돈이 최우선인 사회죠. 대한민국은 자본주의가 맞습니다. 그것도 촌스럽고 경박한 자본주의입니다. 땅콩 회항이나 “목을 내밀어라! 쳐 주마” 운운 하는 자본가를 보십시오. 재산을 놓고 소송을 하는 형제나 부자를 보십시오. 품위라곤 찾아볼 수 없지요. 21세기 한국의 문제를 해결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맹 선생께 직접 묻고 싶습니다.
나- 대통령이 백성의 마음을 얻지 못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맹 선생- 대통령을 바꾸면 된다.
나- 자본주의가 인간을 괴롭히고 있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맹 선생- 자본주의를 바꾸면 된다.
나- 열심히 기도해도 사고만 납니다. 어떻게 할까요?
맹 선생- 신을 바꾸면 된다.
나- 와, 정말 간단하네요. 그런데 왜 세상은 아직 이 모양일까요?
맹 선생- 그건, 바뀌지 않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세상을 지배하기 때문이다.
맞습니다. 권력을 쥔 자들은 늘 한 줌이고 민중은 다수입니다. 국민을 우습게 아는 먹통 지도자는 필요 없다!...고 맹자 선생님은 결연히 말씀하십니다.
관련도서 <짧고 굵은 고전 읽기>(비즈니스북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