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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자몽 Sep 25. 2022

아이의 태명은 파이리가 되었다

0주차_임신보다 먼저 정해진 태명

이제 10주가 된 아기의 태명은 파이리다. 만화 <포켓 몬스터>의 그 주황색 공룡 파이리. 아이가 생기면 태명을 짓느라 고민도 많이 한다는데, 고민할 것 없이 바로 정했다. 임신을 계획하던 시기부터 아내가 정해둔 태명이었다.


내 별명은 리자몽이다. <포켓 몬스터>의 파이리 진화 버전.


어릴 적부터 주로 공룡류의 캐릭터가 별명이었다. 대표적으로 중학생 시절 즈음엔 ‘비기(Bigi)’라고 불렸다.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진 모르지만, 오래 전 KTF라는 통신사가 있었고 그 통신사의 모델이 비기라는 공룡 캐릭터였다. 대학 생활을 할 때쯤 KTF가 망했고, 비기 대신 리자몽이라는 별명이 생겼다. 그리고 리자몽이 그 뒤로 줄곧 내 닉네임이었다.


먼저 아이를 낳은 아내의 친구가 있다. 나도 알고 지내는 친구라 내 별명도 안다. 아내가 친구에게 아이를 갖기로 했다고 하자 곧장 아내의 친구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태명은 파이리로 하면 되겠다!"


파이리, 일단 평범하지 않아서 좋았다. 귀엽기도 했다. 태명에는 거센소리(ㅊ, ㅋ, ㅌ, ㅍ), 된소리(ㄲ, ㄸ, ㅃ, ㅆ, ㅉ) 같은 센소리가 들어가면 좋다고 한다. 센소리 발음을 아이가 더 잘 듣고, 더 잘 반응하기 때문이란다. 어디까지나 믿거나 말거나지만 좋다는 대로 해서 나쁠 건 없으니까. 파이리가 ‘ㅍ’자음으로 시작하는 것까지 완벽했다.


아빠는 리자몽, 자식은 파이리인 셈이다. 혈통을 좀 알아볼 겸 인터넷에서 포켓몬 도감을 찾아봤다. 놀랍게도 공식 웹페이지가 있었다.


공식 웹페이지에서는 파이리가 진화하는 일련의 과정을 볼 수 있었다. 파이리-리자드-리자몽-메가리자몽-거다이맥스 리자몽(?). 파이리의 성장 과정도 이런 모습일까. 뭔가 <포켓 몬스터>에서 그리는 생명체의 진화 과정이 상당히 현실적이라고 느꼈다.


포켓몬 도감엔 좀 다른 케이스의 진화 사례도 있었다. 흑화한 리자몽 정도로 생각했는데, 아내는 파이리가 성인이 됐을 때 노쇠한 내 모습이라고 한다. 듣고보니 그렇게 보이기도 한다.


늙는 게 싫게만 느껴져 슬프다고만 생각했는데, 파이리가 태어나고 자라고 나도 늙어가는 게 나쁘지만은 않은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처음 들었다.



*이미지 출처 : https://www.pokemonkorea.co.kr/pokede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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